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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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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있던 번역 일의 독촉을 받고 한동안 정신없는 시간이 계속 되었다.
라인업이 바뀌어 빨리 해 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듣고 밤낮없이 번역을 한 결과 결국 시간에 늦지 않고 원고를 보낼 수가 있었다.
담당자는 내가 자기를 살려준 거라면서 좋은 와인을 선물했다.
준영이는 성적이 많이 올랐다면서 자랑을 했다.
금일봉을 하사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나한테 넌지시 알려주기도 했다.
기쁘기도 했고, 나는 그걸 받을만했다.
내가 마지막에 꼭 보고 시험을 보라고 정리해 주었던 프린트에서 70퍼센트가 넘는 문제가 나왔고 나머지 문제도 시험 전날 내가 강조를 하면서 알려주었던 부분에서 나왔던 것이다. 운이 좋은 거였고 나와 준영이 모두 기분이 좋았다.
내가 맡은 다른 아이들도 조금씩 성적이 올랐다.
전교 성적이 6등에서 9등 정도였고 준영이는 거의 30등이 올랐다.
준영이가 걸쳐있는 구역이 경쟁이 심해서 한 문제 차이로 석차 변화가 컸다.
토요일에 우리는 일인당 22만원씩 하는 한정식집에 갔다.
준영이는 바람을 잡고 내가 수영과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했다.
준영의 부모님은 모두 친절했다.
좋은 분들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도 나하고 부딪친 일은 없었고 과외비를 늦게 준 적도 없었다.
준영이 성적이 오르면 금일봉을 주는 때도 있었다.
준영이가 내 복덩어리인 셈이다.
식사는 즐거웠다.
준영이는 나에 대한 얘기를 자꾸 꺼냈다.
내가 우리 학교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을 했다는 얘기나 그런 소소한, 별 쓰잘데 없는 얘기들이었는데 그게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의 흥미를 돋운 모양이었다.
“정말이예요? 그것까지는 몰랐는데. 그런 얘기 했으면 과외비 책정할 때 감안했을 텐데 왜 얘길 안 했어요?”
준영의 어머니가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많이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는 좀 놀랍고 황당했다.
“지금이라도 소급해서 더 주시면 되지 뭐가 문제예요?”
준영이 말하자 수영이 나섰다.
“얘가 소급한다는 말도 쓰네. 엄마. 선생님한테 더 드리기는 해야 되겠네. 저 돌머리 입에서 소급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 걸 보면.”
수영이 말하자 준영은 발끈하면서도 수영이 아군이라는 생각에 화를 참았다.
“아. 우리 선생님 학교 다닐 때 그것도 했어. 그 뭐지? 뭐였죠, 선생님? 무슨 공사에서 하는 경진대회에 나가서 상 탔다고 했잖아요. 소프트 웨어를 이용해서 뭘 미리 알아내는 그거요.”
“아. 그만해.”
나는 괜히 부담스러워져서 준영의 입을 막았다.
“그게 뭔데요? 오빠 진짜 대단하다. 우리 동아리 선배 중에도 그런 비슷한 거 2년째 준비하는 선배 있는데. 거기서 우승하면 공사에 입사할 수 있다고.”
“뭘 2년씩이나? 우리 선생님은 2개월 준비해서 우승했는데. 맞죠. 선생님?”
준영은 그게 자기 업적이라도 된 듯이 얘기했고 나는 시선이 나한테만 쏠리는 그 상황이 부담스러워서 준영의 입을 어떻게라도 다물게 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우리 준영이 과외 선생님이 대단한 인재였구만?”
과묵함의 표본처럼 보이던 준영의 아버지까지 나서서 그렇게 말하는 통에 나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우리 선생님이 몸이 안 좋아서 수술 받느라고 학업이 중단돼서 그렇지 계속 잘만 했으면 진짜 다 쓸어버리는 거였다고.”
준영이 말했다.
“아. 그렇다고 했지. 이제 치료는 다 끝난 거예요? 완치된 거죠?”
준영의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나는 나한테 집중된 화제를 어떻게든 다른 데로 돌리고 싶어서 애를 썼고 준영의 부모님은 일어나면서 셋이서 재미있게 놀다가 들어오라며 수영에게 카드를 주었다.
준영이 이 자식은 바람직하게도 도중에 일찍 빠져 주었고 나는 수영과 남았다.
처음에는 나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던 수영이었는데 준영이가 밑밥을 깔아준 덕에 나에게 이것 저것 묻고 진로 상담도 해 오면서 말을 많이 걸었다.
“어디 갈까요?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어…. 글쎄요. 잘 안 돌아다녀봐서.”
내숭은.
할 것 다 하고 돌아다니는 걸 내가 다 아는데.
그래도 이럴 때는 이렇게 나와주는 게 고맙지.
“맥주나 한 잔 할래요?”
“술 잘 못 하는데.”
“그래요? 그럼 DVD 방 갈래요?”
너무 직접적인 말로 들렸나?
수영이 나를 바라보더니 뭔가 실망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내 실수를 깨닫지도 못했고, 직접 말해주지 않는 이상 그런 표정을 언어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능숙하지도 않았다.
“왜요?”
“저를 굉장히 쉽게 보신 것 같네요.”
뜨헉. 이건 무슨 소리일까.
우리는 말없이 조금 걸었고 나는 수영이 나랑 계속 같이 있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도 가늠이 어려워서 멍을 때리고 있었다.
“커피 마시러 갈까요?”
내가 물었다.
“네.”
이미 배에 다른 게 더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이 먹고 움직이는 중이었는데 그게 정답이었다니.
역시 데이트는 힘든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커피숍에 가서 앉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자 남자가 같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는 두 사람이 각자 자기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고 있다가 궁금했던 걸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요?”
“왜요?”
아. 그냥 바로 대답을 좀 해 주면 안 되나? 너한테 관심 있어서 그런다는 말을 해 줄 생각은 없는데 기대하는 말이 그 말인 것 같았다.
“사귀는 사람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말하자 수영이 피식 웃었다.
“없어요.”
수영이 말했다.
사실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몸캠을 찍으면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오빠라고 부르는 걸 봤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SNS 자주 해요?”
내가 물었다.
“뭐. 남들 하는 정도로요.”
“사진도 잘 찍고요?”
“그것도 그냥. 남들 하는 정도로요.”
“동영상 찍는 것도 좋아해요?”
“그것도 그냥 보통인 것 같은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몸캠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조심하고 지금 돌고 있는 게 더 이상 유통되지 않게 조치를 취하라고 말을 해 줘야 할 것 같기도 한데 그 말을 어떻게 꺼내느냐 하는 게 문제였다.
그 말을 하면 얘는 분명히 나한테 그걸 어디에서 봤냐고 물을 거고, 그 다음에는 자기 몸을 봤냐고 물을 텐데.
그러면 나를 보는 게 어색해질 테고 그렇게 되면 자기 부모님을 설득해서 준영이 과외 선생을 바꾸자고 말을 할지도 모르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아무 것도 제대로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준영이 어머님한테 말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영상이 유통되는 것도 모른 채 놔두면 그걸 보는 사람은 계속해서 늘어날 거고 그러면 수영의 안전은 점점 더 위협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아끼는 제자 누난데.
고민을 거듭하다가 내가 한 말은, 남자는 다 늑대니까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앞에서 잘해주고 착하게 굴어도 늘 의심을 해야 돼요. 뒤에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르니까요. 이건 우리만 아는 일이라고 하면서 뭔가를 하려고 해도 그 말을 믿으면 안 돼요.”
수영은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결국 제대로 말을 해 주지 못하고 수영과 헤어졌다.
헤어질 때 수영은 굉장히 화가 난 모습이었지만 나는 달래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남자한테 넣어 달라고 말하면서 다리를 벌리고 몸캠을 찍는 여자한테 내가 무슨 정성을 더 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내 제자 누나라서 걱정이 돼서 충고를 해 줄 수는 있지만 오지랖은 그 정도 떨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을 대충 정리를 하고 나는 거의 자석에 끌리는 것처럼 수영의 몸캠 영상을 다시 보았다.
이제는 영상 속의 수영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훨씬 더 흥분이 되었다.
수영을 데려다가 직접 내 눈 앞에서 다리를 벌리게 하고 거기에 박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내 밥줄 끊기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릴 거라는 것도 알았다.
당분간은 수영의 영상을 보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나는 내가 보다가 말았던 머슬 퀸의 영상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