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 ----------------------------------------------
바니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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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영이가 말했던 아이, 그러니까 나한테 과외를 받고 싶어한다는 준영이의 사촌을 보게 될 기회가 생겼다.
과외가 끝나고 나오는 길이었는데 준영이가 밖에 나갈 일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같이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준영이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이름을 불렀다.
“손해미. 손해미. 야, 손해미이이이이이이이.”
그러나 손해미라고 불린 아이는 준영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버스에 올랐다.
아는 척도 안 하는 애를 자꾸 불러대는 통에 준영이의 옆에 서 있는 나까지 창피해질 지경이었는데 준영이는 꿋꿋했다. 아예 버스가 있는 데까지 달려가면서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댄 것이다.
준영이가 끈질기게 이름을 부르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창문이 열리더니 머리 하나가 나왔다.
‘헉!’
손해미…라는 그 아이는 바니 걸이었다.
“에이. 아깝다. 그냥 가네.”
준영이가 말했다.
손해미는 뒤늦게 손을 흔들어보이기는 했지만 버스에서 내리지는 않았다.
“선생님, 새로 과외하기로 했던 애예요. 지금 하고 있던 과외 선생님이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되겠냐고 하더래요. 그래서 제가 안 된다고 했어요. 선생님한테 이미 말씀드렸다고. 근데 해미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나봐요. 그래도 아마 할 거예요. 보셨어요. 선생님? 귀엽게 생겼죠?”
"어? 어."
나는 준영이가 말한 사촌이 남자일 거라고 혼자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준영이가 그 아이가 남자라고 말한 적은 없었짐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전부 다 남자아이였고 여자 아이는 내가 먼저 피해 왔었다.
여자 아이라면 곤란하다고 미리 말을 해 둔 것도 아니었고 그 사촌이라는 애가 남자애냐고 여자애냐고 묻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내 멋대로 그 사촌이 남자아이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자애네?"
"네. 여자예요."
무슨 말이 그러냐는 것처럼 준영이가 웃으며 말했다.
머리를 내린 상태라서 처음에는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커다란 눈이라든지 짧은 턱과 같은 얼굴의 두드러진 인상으로 보아 확실했다.
나는 내가 머슬 퀸을 엘리베이터에서 놓쳤던 일을 생각했다.
그때는 머슬 퀸의 영상을 다운받기 전이었다.
파일을 완전히 다운받지 못하면 영상 속의 여자를 제대로 만날 수가 없는 건가?
그냥 이렇게 스치면서 지나갈 운명이 되는 거라고?
나는 그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도 정말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건 모두 우연일 뿐이라고 그렇게 확고하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트에 다른 기기로 접속을 하려고 하면 접속이 되지 않고 웹 페이지가 만료됐다는 문구가 뜨고 메일로도 파일이 보내지지 않는 등 이상한 일들이 계속 생기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몸캠을 보면 그 여자를 만나게 된다는 건 너무 이상했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받아들이기가 그나마 쉬운 쪽으로 받아들이려고 애썼던 것이다.
내가 멍한 표정으로 있는 것을 보고 준영이가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어? 어어.”
“선생님. 아빠한테 엄마가 선생님 자랑을 엄청 많이 했어요. 아빠는 아빠가 안 계신 동안 혹시 집에서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선생님이 같이 있어줬다고 했더니 엄청 고마워했고요. 선생님이 옆에 있어서 제가 마음 놓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했거든요. 모르는 게 있으면 그때마다 여쭤봤다고 하니까 아빠가 돈을 더 드려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야.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드려. 전에도 너무 많이 주셔서 죄송했는데."
"주신다는 건 받으세요, 선생님. 아빠는 정말 고마워서 그러시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걸로 저한테 맛있는 거 사주시면 되죠."
“그래? 그럼 그럴까? 근데 네가 나한테 뭘 물어봤는데?”
내가 물었다.
“성교육요. 시청각 자료도 주셨고요. 히히힛.”
준영이가 말했다.
“앞으로도 선생님이 시간 될 때는 종종 와서 같이 자면서 머물러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지방에 지사가 생기면서 아빠가 지방에 자주 내려가셔야 된대요.”
“시간 있을 때는 그래도 상관 없겠지. 번역 일 할 때도 옆에서 같이 하면서 준영이 네가 모르는 건 바로바로 알려주면서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건 어려워하지 말고 부탁해. 내가 복학하고 바빠지기 전에는 해 줄 테니까.”
물론 나에게는 수영을 볼 수 있고 수영의 몸을 탐할 수 있다는 사리사욕이 있어서 그렇게 말을 한 거였지만 그런 사실을 알리없는 준영이는 감격한 얼굴을 했다.
“우와. 진짜요? 선생님은 다른 애들한테도 이렇게 잘 해 주세요?”
“아니? 다른 애들한테도 이렇게 잘해주면 너한테 써 줄 시간이 이렇게 많겠냐?”
“그렇죠? 그러니까요. 제가 제일 성적 많이 올랐죠?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애들 중에서요.”
“그렇지.”
“다른 애들은 다 공부 잘 해요?”
“응.”
“아아.”
준영이가 실망한 모습을 보여서 웃으면서 준영이의 머리를 헝클어 주었다.
“그래도 네가 제일 열심히 해. 머리도 좋고. 공부 방법을 몰라서 그랬던 것 뿐이지 잘 하고 있잖아. 조금 있으면 네가 그 애들보다 더 잘 하게 될 수도 있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응.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준영이는 내 말을 듣고 엄청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선생님. 복학 하시고 나서도 저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만약에 가능하다고만 하면 선생님 강의 끝나는 시간 맞춰서 엄마나 누나가 차 가지고 가서 모셔올 수도 있을 텐데.”
“어?”
준영이는 고2다.
나는 준영이가 그 정도로 나한테 의지를 하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복학을 하면 내 학업에만 전념을 할 생각이었기에 준영이가 한 말에 대한 대답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
“그건. 어. 일단은 생각해보자.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었거든.”
“선생님이 바뀌는 것 보다는 그게 저한테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고3이 돼서도 과외는 계속해야 될 것 같고. 저는 혼자서 공부하는 건 잘 못해서요.”
확실히 준영이한테는 그런 문제가 있었다.
자기 하나만 바라보고 케어를 해 주면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체크해 주지 않으면 느슨해지고 방만해지는 스타일이었다.
“좋아. 되는 방향으로 생각해 보자. 다른 애들 정리하고 너 하나만 가르치는 거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아빠한테도 살짝 미리 말을 해 놓기는 했는데 선생님이 된다고만 하시면 학교랑 집 사이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실 수도 있다고 했어요.”
부담스럽게 뭘 이렇게까지?
이 집 식구들이 아무래도 나를 너무 믿는 것 같은데 이러다가 준영이가 재수를 하는 상항이라도 생기면 그때는 완전히 서로 원수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영이도 눈치가 빤해서 내 표정을 보고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먼저 달랬다.
“제가 떨어진다고 선생님 원망하고 그러지는 않을 거니까요.”
헤헤헤 거리면서 웃던 준영이는 자기가 타고 갈 차가 와서 먼저 갔고 나는 해미와, 몸캠 싸이트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오랜만에 헬스장에 가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머슬 퀸에게 전화를 걸었고 머슬 퀸은 적당히 시간을 두다가 전화를 받았다.
“오늘 휘트니스 센터 갈 건데 오늘도 운동하러 나와요?”
내가 묻자 오후 늦게나 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아.”
“그쪽은요? 그때는 시간 안 돼요?”
아무래도 오늘은 못 보겠다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그 말이 먼저 나왔다.
“정확히 몇 시쯤에 올 건데요?”
“정확히 몇 시라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먼저 도착하면 운동하고 있어요. 맞춰서 갈 수 있게 노력은 해 볼게요.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머슬 퀸이 말했다.
그곳에서 보기로 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 내가 맡아 두었던 일들에 속도를 냈다.
일찌감치 일을 마무리 지어놓고 사이트에 접속을 했다.
혹시 화장지가 다시 생겨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역시나라고 해야할지 화장지는 생겨나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손해미의 영상을 다운받을지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결국 다운을 받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