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 ----------------------------------------------
새 주인공
나도 이렇게 헤픈 여자들 말고 이제 제대로 된 여자들을 만나야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빚에 깔려죽게 생긴 지금 그건 환상인 것 같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나는 오랜만에 밀린 집안 일을 하고 사이트에 접속했다.
새로 업데이트된 몸캠 영상이 많았다.
화장지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여섯 개 그대로다.
두 개가 왜 생겼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미친 것 같이 들리겠지만 혹시 내가 몸캠 영상에 나왔던 여자랑 섹스를 하면 하나씩 화장지가 다시 생기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수영과 섹스를 하고 화장지를 확인해봤지만 늘어나지 않았다.
혹시 한 사람에 한 번씩만 새로 생기는 건가 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미친 것처럼 느껴져서 혼자 웃어버렸었다.
새로 올라온 몸캠 영상을 빠르게 보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버렸다.
“미친! 말도 안 돼!”
***
준영의 어머니였다.
처음에는 설마설마 했는데 나중에는 확실히 알았다.
준영이의 어머니였다.
나는 캡쳐 사진을 전부 다 확인하고 영상의 주인공이 준영이 어머니라고 확신했다.
수영과는 그런 식으로 끝이 났다고 하지만 준영이와 준영의 부모님은 여전히 나에게 고마운 분들이었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 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화장지를 (아…. 이거 진짜 아까운데. 그리고 만약에 영상의 주인공과 섹스를 했을 때 화장지가 리필되는 거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화장지를 리필할 기회도 없는 거다. 바니 걸도 그랬는데. 그 아청아청을 어쩔.) 사용해서 파일을 다운받았다.
나는 제발 그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이 준영이의 아버지이기를 바랐다.
아마 비슷한 이유로 유출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혼자만 가지고 있는 걸 컴퓨터를 같이 사용하는 다른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접근해서 유출한 걸 수도 있고.
나는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서 준영이 아버지께 이 일을 빨리 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모든 게 바로잡힐 거라고 생각했다.
영상을 유포한 사람은 처벌받고 법적 조치를 하면 영상은 더 이상 유통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잘 아는 분의 나신을 보는 것은 굉장히 꺼려지고 불편한 일이었다.
내가 그 나이 여자의 나체를 볼 일이 언제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점점 거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죄책감은 점점 사라졌다.
나중에는 준영이의 어머니를 스스로 모욕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상대는 준영이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준영이의 어머니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로 자기 남편을 욕했다.
“없는 동안은 좀 살 것 같더니. 어제는 씻고 와서 당연히 할 걸로 생각을 하잖아. 장난해? 아. 나 이제 그 사람이랑 못해. 하면 막 짜증나. 다 자기 때문이잖아. 미쳤어!”
준영이의 어머니는 화면을 보고 웃어댔다.
처음에는 낯설었고 그 다음에는 화가 났다.
엄마가 떠올라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내가 우리 엄마 얘기를 했을 때 준영이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러웠을까?
준영이의 어머니는 가슴을 드러내고 팬티까지 벗으려고 하고 있었고 나는 화가 치밀어서 영상을 껐다.
한동안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한동안 스스로를 탓하셨다.
아버지 잘못이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미안해 하셨다.
편의점에 가서 담배를 사고 나는 피워본 적이 없던 담배를 처음으로 피웠다.
곧 후회하기는 했지만.
나는 준영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준영이와 준영이의 아버지를 위해서 이 일을 비밀로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엄마한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엄마가 차라리 그냥 사라져서 죽어버리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더러운 엄마에 대한 증오보다는 사라진 엄마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갖는 게 훨씬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준영이도 그럴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마음을 결정했다.
그것은 나 혼자만 아는 비밀로 하기로.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한동안 더 머뭇거렸다.
파일을 그대로 지워버려야 할지, 아니면 끝까지 보기는 해야 하는 건지.
그래도 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끝까지 보다보면 대화하는 걸 바탕으로 준영이 어머니랑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의 가정을 파탄낸 그 남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응징을 해 주고 싶었다.
준영이와 준영이의 아버지를 위한 복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한편으로 엄마를 향한 내 복수가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준영이의 어머니가 몸을 드러내는 장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오디오에만 집중을 하면서 영상을 보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수영과 휘트니스로 탄력을 유지하는 몸이었고 수영이나 머슬 퀸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요염한 관능미마저 풍겨났다.
고등학교 때까지 수영 선수였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나는 시선을 두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십대때 수영을 낳고 스무 살에 준영이를 낳았다고 했으니 우리 엄마보다 열 살 정도 차이가 났다.
그 나이 여자에게서 보일법한 흔한 뱃살도 없었고 가슴도 처지지 않았고 수술을 해서 고쳤는지 유두마저 옅은 빛이었다.
영상을 끝까지 봤지만 반전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몸캠 영상이 누구를 위해서 찍힌 건지 알게 됐다.
내일 수영장에서 보자는 둥, 오늘 새로 들어온 여자를 유난히 많이 만지더라는 둥, 자기 질투하게 하려고 그런 거 다 티가 났다는 둥 하는 말을 들어보면 같은 수영장에 다니는 수영강사인 듯했다.
대물을 가진 젊은 남자.
찍어대고 박아대서 준영이의 엄마를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한 남자.
영상을 끝까지 확인하고 나는 착잡한 기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오늘도 야근이라면서 아직 회사라고 하셨다.
“식사는 하셨고요?”
“그럼 지금까지 밥도 못 먹고 일하고 있을까봐 그러냐?”
“아버지.”
“왜. 임정우. 너. 무슨 일 있는 거야? 혹시 몸이 다시 아프냐?”
“아냐. 그런 거.”
“그럼 왜 그래. 응? 정우야.”
“아버지. 그냥.”
“그냥 뭔데?”
“보고 싶어. 고맙고요. 잘 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런 말을 왜 하는데. 응? 임정우. 무슨 일 있는 거구나. 그렇지?”
“아니야, 아버지.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녀석이 실없긴. 몸은 괜찮은 거지?”
“네.”
“그래. 건강하면 됐다. 건강하면 되는 거야. 돈은 벌면 되는 거고. 아빠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음달에 만기 돌아오는 적금도 있고. 그걸로 먼저 조금이라도 갚자. 중간에 깨면 해약 환급금이 너무 적어서 그동안 못 깼는데 그거 나오면 숨 좀 돌릴 수 있을 거다.”
“아버지 써요. 저는 알바하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졸업하면 그때부터 갚아가면 되고.”
이혼을 하면서 엄마는 아버지의 재산 반토막을 딱 잘라서 가져갔고 내가 아팠을 때는 찾아오지도, 도와주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나하고 같이 살던 아파트를 팔고 원룸으로 이사했다.
어차피 내가 서울에서 살고 있으니까 큰 집은 필요없다고 하셨지만 한 번씩 집에 내려갈 때마다 작은 원룸에 건조대가 펼쳐져 있고 젖은 빨래 때문에 방 안이 습해져 곰팡이가 생겨난 걸 보면 속이 상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더 열심히 살게, 아버지.”
“열심히 살고 있는 거 다 안다. 정우야. 너무 애쓰지 마. 그러다가 일찍 지쳐. 그냥 천천히 가도 돼. 아빠가 같이 가니까. 그러면 돼.”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커질수록 준영의 어머니에 대한 미움도 커졌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는.
어쩌면 품지 말았어야 했을 생각이 꿈틀거렸다.
준영의 부모는 부자다.
과외 선생이 피곤하지 않게 컨디션 조절 잘 하고 아들을 가르쳐 주기를 바란다고 과외 선생에게 오피스텔을 얻어주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