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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네?”
“해미 좋아하지? 솔직하게 말해도 돼. 다른 사람한테는 말 안 해. 그리고. 그건 당연한 거기도 하고.”
“당연한 건 아니죠. 친척인데.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준영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 뜻이 아니라. 네 나이 때 이성에 관심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고. 여자 사귀어 본 적 없지?”
나는 어른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나도 총각 딱지를 뗀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네.”
“막 흥분되냐?”
“네. 여자애들이 앞으로 몸 숙이고 있는 거 보면. 등이 팽팽하게 조여지는 게 옷 위로 드러나면 발기가 돼서 미치겠어요. 가슴도 막 주무르고 싶고.”
“해미는 네가 가장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애고. 그렇지?”
“네.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이. 좋은 누나 한 사람 소개시켜 줄까?”
“네?”
“뭔가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정신력을 엄청나게 소모시키거든. 그 생각을 떨칠 수 있으면 상관없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태라면 그 생각 때문에 엄청나게 피로해 질 거야. 절제도 소모성 자원이라고 하잖아. 코카콜라를 마시는 백곰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으면, 평소에는 그런 걸 생각할 일이 없었어도 그 생각이 떠오르는 걸 막기 위해서 에너지가 소모돼.”
“그래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막기 위해서 여자를 소개해 주시겠다고요?”
준영이가 물었다.
“이해해 줄 수 있을만한 사람이야. 어느 정도 진한 스킨십은 허락해 줄 거고.”
“…….”
“꼭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은 내일 선생님이랑 같이 한 번 만나보자. 바람도 쐴 겸. 지금 상태로는 아무 것도 안 된다는 거. 준영이 너도 알지? 책상 앞에 한 시간 동안 앉아 있으면서 두 문제 풀 거면. 그것도 이렇게 쉬운 문제를.”
내가 준영이의 책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준영이 한숨을 쉬었다.
“해미한테는 내가 말할게. 같이 할 수 없는 걸로. 그냥 나 때문에 그러는 걸로 하자. 여학생을 가르쳐 본 적이 없어서 여학생을 가르치는 게 불편하다고 할게. 나는 남자애들 가르치는 거에 익숙해서 말도 심하게 하고 때리기도 하는데 여학생한테 욕하고 때리는 건 거리껴져서 어쩔 수가 없겠다고.”
“…네.”
준영이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준영이의 방에서 나오려다가 나는 준영이를 바라보았다.
“왜…요, 선생님?”
“준영아. 혹시.”
“네?”
“이런 거 묻기 좀 그렇긴 한데. 내가. 무슨 영상을 하나 봤거든.”
“네? 좋은 거예요?”
준영이 이내 짓궂게 웃으면서 물었다.
“이런 거 물어서 미안한데. 해미 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일 것 같아서.”
“네?”
준영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가늠을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준영아. 혹시. 해미 몸캠 본 적 있어?”
준영이는 엄청난 얘기를 들은 것처럼 충격에 빠진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서두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걸…. 보셨다고요? 그건 불가능해요. 제 컴퓨터에만 있는데요?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았고 그냥 저만 가지고 있는 건데.”
“유통을 안 시켰다고?”
“네.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
어쨌거나 해미의 몸캠을 본 사람이 준영이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자백이 나왔다.
나는 해미의 다른 몸캠 영상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준영이는 내가 봤다는 영상이 해미의 영상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본 영상 속에서 그 애가 어떤 행동들을 했는지 물었다.
나는 해미의 몸캠 영상에 대해서 말했다.
내 말을 듣는 준영이의 얼굴은 점점 흑빛이 되어갔다.
“그건…. 맞는 것 같은데…. 혹시 누가 해킹을 한 걸까요? 원격 조종 같은 걸 해서 제 컴퓨터에 있는 걸 가져간 걸까요?”
“정말로 컴퓨터에만 있어?”
“네. 아. 그리고 스마트폰에도요.”
“…….”
우리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갖고 계신 걸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준영이 물었다.
“어, 그게. 지금은 그 사이트가 폐쇄돼서.”
내가 그 영상을 봤다는 사이트가 없는 것으로 나오면 나만 이상해질 거라고 생각해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이트라는 사실에 나는 어느덧 익숙해졌던 것이다.
“네가 갖고 있는 걸 보여줘봐.”
내가 말하자 준영이는 해미의 몸캠 영상을 자기 스마트폰에서 찾아 보여주었다.
내가 봤던 것과 같은 게 분명했다.
“이걸 인터넷에 올린 적이 없다는 거지?”
“네.”
준영이는 완전히 혼란스러운 문제에 직면해서 자기가 마땅히 느꼈어야 할 죄책감이나 자괴감 같은 것으로부터는 정작 자유로워진 상태였다.
그걸 누가 올린 건지, 자기가 해킹을 당한 건지, 아니면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자기 스마트폰을 만진 건지 그런 생각들을 하느라고 준영이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일단 알았다고 말하고 나는 준영이에게 일찍 자라고 말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영상을 가진 사람이 올리지 않았는데 그 사이트에는 올라와 있다?
다른 사람이 준영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만져서 거기에 있던 파일을 올린 걸까?
준영이 컴퓨터를 만져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준영의 가족뿐일 텐데.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은 학교 친구나, 준영이가 접촉한 사람들로 그 범위가 더 넓어질 거고.
나는 늦게까지 잠을 못 이루다가 머슬 퀸에게 톡을 보내놨다.
이사를 하게 될 것 같아 더 이상 그쪽 휘트니스 센터에 갈 수 없을 것 같은데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남기자 그 늦은 시간까지 자지 않고 있었는지 좋다고 바로 답변이 왔다.
나는 아예 준영이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내가 가르치는 애랑 같이 나갈 건데, 라고 시작을 해서 머슬 퀸이 대충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해 주었다.
머슬 퀸은 엄청나게 흥분했고 이모티콘 폭탄을 날렸다.
시간을 당길 수만 있다면 온 힘을 다해서 시간을 끌어 당기고 싶은 것 같았다.
다음날 준영이와 밖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나는 짐을 빼러 집으로 갔다.
수영이의 학교에 입고 갈 과잠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옷장 앞에 붙여둔 옷걸이에 걸어두고 출동 명령을 기다리면서 짐을 싸는데 수영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교에 갑자기 대선배가 찾아와서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수영은 내가 자기 연락만 기다리면서 아무 일도 못하고 대기만 타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엄청 미안해 했다.
나는, 그럼 다음에 가는 걸로 하자고 하면서 수영을 안심시켜 주었고 수영은 빚진 마음으로 계속 미안해 했다.
"그럼 오늘 과외는 어떻게 될 것 같아?"
"그 시간에는 맞춰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점심먹고 다들 한 시까지 커피숍으로 나오라잖아요. 전공 강의있는데 막무가내예요. 그 사람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짜증나게. 웬 커피야."
툴툴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좋았다.
그 학교에 다시 갈 생각을 하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약속을 한 거니까 어쩔 수 없이 가긴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영 귀찮아서 죽을 뻔 했는데, 그 대선배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나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개운한 마음으로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몸캠녀가 아닌 일반 여자를 만나서 뭔가를 해 볼 생각이라면 지금 여기에서 시도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이사를 가고 나면 마주칠 일도 없을 테니 그러는 게 깔끔할 것 같았다.
나는 내 이웃들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면접을 시작했다.
문을 두드려서 사람이 나오면, 이사를 가게 돼서 짐을 정리하는 중인데 혹시 십자 드라이버가 있으면 빌려달라고 말을 하기로 대충 짜놓고 라인을 돌기 시작했다.
세 군데는 사람이 없는지 끝까지 대답이 없었고 네 번째는 문이 열렸지만 남자가 나오는 바람에 정말로 십자 드라이버만 빌려가지고 나왔다.
십 분쯤이 지났을 때 내 바지 뒷주머니에는 드라이버가 두 개나 꽂혀 있었다.
이렇게 운이 없나 하면서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다시 문을 두드렸을 때 한동안 대답이 없더니 내가 돌아서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