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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네. 했어!”
"솔직히 무시했지?"
내가 물었다.
"응. 꼴 같잖으니까. 지가 선배면 단가?"
정작 선배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 했을 거면서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는 수영이 귀여워서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
“아니이. 취직을 했으면 다니는 데나 잘 다니던가. 뭘 자꾸 가르치려고 들어. 꼰대같이!! 골때림의 절정이 뭔지 알아요? 그렇게 해서 커피 마시고 커피값 각자 냈다?”
“헐. 그건 좀 웃기네.”
“그지? 아. 빡쳐. 생색은 다 내고 선배라고 대우는 받고 싶어하고. 그랬으면 커피라도 사 주면서 그런 말을 하던가. 누가 마시고 싶다고 했나? 왜 강제로 시키게 하고 돈을 내래. 아. 짜증나. 그래서 그때부터 막 목이랑 어깨랑 굳은 것 같고 아프고 막 그래.”
“왜? 테이블 날라서?”
“내가 미쳤다고 그걸 해요? 내가 공손히 거기 직원분들한테 물어봤거든. 이거 제가 해야 되나요? 그랬더니 원래 있던 위치에 맞춰서 해야 되니까 자기들이 한다고 그냥 가라는 거지. 그게 맞는 거잖아.”
열받은 수영을 구경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고 나는 수영이 툴툴거리는 동안 수영의 어깨나 풀어주자고 뒤에 앉아서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서비스가 좋아요? 약속 펑크낸 것도 난데.”
“네가 그런 건 아니지.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그런 거잖아. 그런 걸로는 화 안 내.”
“오빠는 좀. 괜찮은 것 같아.”
“눈독 들이지마. 나도 내가 괜찮은 거 알거든?”
“흥. 칫!”
수영은 문자가 오는 소리에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가 그게 스팸문자인 걸 알고 한 번 더 격렬하게 화를 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게 그 여자야. 커피숍 인테리어가 좋길래 내 친구랑 사진 찍고 있는데 지가 와서 낀다? 짜증나. 대가리는 졸라 작어.”
나는 그 대목에서 빵 터져버렸다.
대가리 작은 여자가 사진 찍는데 낀 것 때문에 수영은 내내 기분이 안 좋았던 거였나보다.
다른 것도 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대가리도 작은 주제에 소두인증을 자기 머리 옆에서 했다는 게 결정적으로 수영을 빈정 상하게 만든 것 같았다.
수영도 비율이 예쁜 앤데 그 대선배라는 여자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건가 하고 사진을 보는 순간, 내 입에서는 하, 하는 비명 같은 게 나왔다.
“왜요? 아는 사람이예요?”
수영이 나를 보고 물었다.
“응? 응….”
“어떻게 알아요?”
“이 여자 나오는…. 동영상을 봤거든.”
“무슨 동영상요? 유명한 여자라더니 진짜 유명한가보네. 대학에서 강의도 한다던데. 강의 동영상요?”
“아니. 있어. 그런 거.”
몸캠 영상이라고 있어.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 십년치 놀랄 건 이미 다 놀라 놓은 것 같다고 할까.
수업을 끝내고 내 방으로 돌아왔을 때 문 소리가 들리더니 준영의 어머니가 들어와서 자기방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영이도 들어왔다.
준영이는 집에 오자마자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아아앙.”
준영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침대 위에 풀썩 쓰러졌다.
마약이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나는 의자를 뒤로 돌려 준영이를 바라보았다.
“어땠어? 어떻게 됐어?”
“누나가 집 앞까지 데려다 줬어요.”
“그래? 재미있었어?”
“아, 진짜. 어른들에 대한 배신감에 몸부림을 쳤죠.”
준영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웃었다.
“진짜 좋았어요. 자기들은 지금까지 이런 걸 하면서 애들한테는 못 하게 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막 분노가 폭발하려고 했어요.”
준영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킥킥킥 웃어댔다.
머슬 퀸이 작정을 하고 끝까지 갔으면 얘가 이러는 것도 이해가 됐다.
“또 만나기로 했어?”
“네, 열심히 공부하다가 보고 싶어지면 연락하래요.”
“네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귀엽대요.”
준영이는 비실비실 웃었다.
“이제 해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 같아?”
“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누나가 보고 싶을 때 보라고 가슴 사진도 찍어줬어요. 대신 공부 열심히 해야 된대요.”
“그래서. 또 만날 거야?”
“너무 자주는 안 되겠지만 가끔은 보고 싶어요.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 정도? 누나도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대요.”
“어디까지 갔냐?”
“그건 비밀이예요. 누나도 말해주지 말라고 했어요.”
“왜?”
“궁금해 죽으라고 내버려두래요.”
크크큭 거리면서 준영이가 웃었다.
딱 머슬 퀸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 진짜. 그 누나 너무 대단해요. 예쁜 것도 예쁜 거지만 몸도 너무 좋고. 하아아아.”
준영이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고민인 듯했다.
“다행이네. 일주일동안 참을 수는 있을 것 같아?”
“네. 전화 통화는 자주 하재요. 그런 누나 소개해 주셔서 고마워요, 선생님.”
“뭐. 좋았다니 다행이네.”
“그리고 나중에 해미. 고등학교 졸업하면 해미도 한 번 만나보세요, 선생님. 해미가 선생님 좋아해요.”
“나를?”
웬 깽뚱한 소리냐 하면서 내가 물었다.
“네. 해미가 저하고 있을 때는 거의 선생님 얘기만 해요. 선생님이 무슨 얘기 하셨는지 그런 거 물어보고요.”
“그래?”
“네.”
“그래도 지금은 너무 어리잖아.”
“그러니까 학교 졸업하면 만나보시라고요. 저희도 선생님 학교에 들어가고 싶은데 지금 점수로는 어렵겠죠?”
“아직 일 년 남았으니까 열심히 하면 되지. 그리고 선생님이 워낙 뛰어나잖아. 불가능한 일이 뭐가 있겠냐.”
“맞아요. 선생님. 선생님은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 진짜 해미 문제로 미치는 줄 알았거든요. 나같은 건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에 인간 쓰레기같다는 생각에 별별 생각 다 했었는데 지금은 해미 생각이 전혀 안 나요. 대신에 그 누나 생각이 나기는 하지만 그 누나는 제가 만나자고 하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요.”
나를 숭배하는 인간 1호.
“잘 됐네.”
“누나가요. 오래 참다가 연락하면 더 세게 놀아준대요.”
“뭐? 세게?”
“아. 아니다. 그건 말하지 말라고 했다. 저 갈게요. 선생님.”
준영이는 뒤늦게 경고를 깨달은 듯이 그때부터는 딱 입을 닫았다.
“그래. 오늘 잘 놀았으니까 내일부터는 다시 힘 내는 거다.”
“네에.”
너무 궁금해서 머슬 퀸에게 톡을 보냈다.
도대체 내 제자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머슬 퀸은,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되기에 코멘트를 할 수 없슴을 이해해주기 바람.’ 이라고 보내왔다.
“했네. 했어!”
나는 톡을 보자마자 혼잣말을 했다.
어떤 의미로, 대단한 머슬 퀸이었다.
***
그 후로 지루한 시간이 얼마 정도 지나고 어느 날 수영이 술에 취한 채 전화를 걸었다.
자기를 데리러 와 달라는 말에 나는 준영 어머니의 차를 가지고 수영을 데리러 갔다.
준영 어머니도 같이 가겠다는 걸 내가 말렸다.
아무 옷이나 입으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영이가 전에 말했던 과잠을 챙겨입고 내가 갔을 때 수영이는 술집 앞에 있는 나무에 기대 앉아 울고 있었다.
그 주위에서 몇 명이 멀찍이 서서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고 있었다.
진상도 저런 진상이 없다면서 수군거리는 애들이 보였다.
수영이가 잘 들어가는지 봐 주려고 서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 사건이 생기기를 기대하는 호기심 어린 눈처럼 보여서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내가 수영의 앞에서 차를 멈추고 내리자 삐딱한 자세로 서 있던 여자들이 갑자기 허리를 곧게 펴고 서더니 하나 둘씩 수영과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수영아. 많이 마셨어?”
올 때의 계획은, 수영을 보자마자 욕을 퍼부어주는 거였지만 수영이 무슨 상황인지 가늠도 안 되고 수영이 다른 여자애들의 따돌림을 받는 것 같은 상황에서 그럴 수가 없었다.
“오빠. 흑흑흑흑.”
수영은 서럽게 흐느껴 울었다.
“왜 그러는데. 속 상한 일 있었어?”
“오빠. 흑흑흑흑.”
이거야 원.
나한테 정말 안 어울리는 시츄에이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