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1화 (3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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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된 거

어쨌거나 그렇게 하고서 수영이 다니는 단과대학 앞에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수영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내 질문을 받은 여자들은 일단 수영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내가 수영을 찾아온 것에 대해서는 신기해 하면서 자기들끼리, 김수영 만나러 왔대, 라고 열심히 소문을 퍼뜨렸다.

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하면서 전화를 걸어볼까 하며 엄청 많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계단 위에 등나무로 덮인 벤치가 보였다.

철이 철이니만큼 잎이 무성했고 녹음이 그야말로 풍성했다.

거기에 여자 하나가 앉아있고 남자가 여자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있는 게 보였다.

그 장면을 보고 첫 소감은, 못 생긴 것들이 꼴값들 떨고 있다 라는 거였다.

그러다가.

아놔.

그 그림을 보고 실족하고 있는 한 영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수영이 건물 안에서 그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까지 쪽팔리게 쟤는 또 왜 저러는 거야, 하다가 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영이 전화를 받는 모습이 보였다.

“내려와. 밥 사줄게. 땡땡이치고 밥 먹으러 가자.”

“강의있는데요? 어디예요?”

“네 앞.”

“앞요?”

나는 손을 흔들었다.

쪽팔리게 수영은 나를 바로 발견하지도 못해서 나는 한참동안이나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근처에 있던 이상한 애가, 내가 오랫동안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혹시 저한테 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는지 나한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야! 여기! 김수영!”

나는 전화를 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건물과 계단 사이는 40미터쯤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수영이 나를 발견했다.

나를 발견한 것은 수영뿐만이 아니라 강의를 기다리던 30여명의 학생도 함께였다.

그 순간의 쪽팔림이란.

게다가 나는 정장까지 입고 있고.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쩔 거야. 안 올 거야? 그냥 가?”

“오빠. 전화라도 미리 하고 오지. 이 강의는 빠지면 안 되는 강의란 말이예요.”

그렇다는데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괜히 깜짝 쇼를 하려다가 헛물켠 셈이었다.

“미안해요, 오빠.”

수영이 말하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강의실에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던 애들은 이제 창가에 나와서 나를 구경했다.

수영이 나오자마자 나는 차로 돌아갔다.

수영의 강의가 곧 시작될 터여서 차에 타지는 않고 그 앞에서 얘기를 했다.

“옷까지 쫙 빼 입고 왔네? 멋있다. 오빠.”

“내가 안 멋있을 때가 있었냐?”

“아, 진짜. 뻔뻔하기까지.”

수영이 웃었다.

나는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서 수영을 바라보았다.

“너. 오늘 늦어?”

“아뇨?”

“그럼. 어…. 나. 아버지한테 좀 갔다와도 될까? 오늘 내가 좀 괜찮아 보여서. 아버지가 보시면 좋아할 것 같아서. 오반가?”

“아뇨. 아뇨. 진짜 잘 생각했다. 그렇게 해요. 오빠. 오늘은 준영이 과외도 없잖아요. 그쵸?”

“응. 아. 아니다. 준영이 데리러 가야되는구나?”

“아니. 그건 상관하지 말고 갔다와요. 오빠. 하룻밤 같이 자고 와요. 아버님이랑. 내일 준영이 데려다주는 것도 걱정하지 말고요.”

“아니. 어차피 가도 잘 데가 없긴 해. 아버지 혼자 누우시면 누울 자리도 없는 원룸이라.”

“어…. 몰랐어요. 오빠.”

“이혼하면서 돈 뺏기고, 그 다음에는 내가 아파서 병원비 때문에 그동안 모은 돈도 다 날리고 그러고 계시는 건데. 이제 나도 몸 다 나았고 이렇게라도 버니까 아버지 집 좀 옮겨드리고 싶어서. 그 문제를 상의하고 싶었는데 내려갈 시간이 없었잖아. 근데. 차가 생겨서 한 번 갔다와 볼까 하고. 괜찮겠냐?”

“당연히 괜찮죠, 오빠.”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해. 그 집에 노예가 없어도 되겠냐고.”

“칫. 웃기고 있어. 갔다와요. 오빠. 용돈 드릴 건 준비했어요?”

“어. 번역료도 마침 나왔고.”

“우와. 의젓하네. 우리 오빠. 그냥 또라이 쌩변탠줄 알았더니. 근사하다. 진짜 좋아하시겠다.”

화낼 타이밍을 못 잡고 있는 나를 보면서 수영은 내 양복을 손날로 탁탁 털어서 정리를 해 주고 넥타이까지 바로 잡아 주었다.

“진짜 멋지다. 누구네 집 노예가 이렇게 잘 생겼냐.”

“이게 죽을라고!”

아웅다웅하고 있는데 계단 위에서 두 사람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벤치에 앉았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가야겠어요. 지각만 해도 엄청 엄하게 구시는 교수님이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계단 쪽으로 돌아서던 수영이 그대로 다시 턴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계단을 내려오는 두 사람이 수영을 울게 만들었던 선배들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별 같잖은 것들을 무서워해서 피하냐? 나랑 같이 가. 강의실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괜찮은데.”

“나도 괜찮아.”

나는 수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수영의 책을 받아서 들어주고 수영과 나란히 걸어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허벅지를 베고 서로 깨가 쏟아지고 좋아죽던 두 사람의 사이가 갑자기 냉랭해진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의 시선은 나와, 내가 타고 온 차를 스캔하느라고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를 스쳐 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말했다.

“우리 수영이 선배님들이시면 수영이 잘 좀 부탁드려요. 우리 수영이가 아직 철이 없죠? 선배님들이 잘 보살펴주세요. 괜히 때리고 깡패같은 짓 하지 말고. 확 탈골시켜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온화하게 웃으면서 내가 말을 하자 그쪽 사람들 뿐만 아니라 수영의 얼굴까지 창백하게 변했다.

“선배가 뭐가 대단한 벼슬이라고 애를 갖고 놀아요. 에? 한 번만 말합니다. 한 번만.”

나는 수영의 어깨를 더 꽉 안고 걸음을 옮겼다.

멋있어 보이려고 너무 과욕을 부리다가 수영이의 앞날만 좆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뒤늦게 조금 들기는 했지만 수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나에게 눈을 흘기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런 깡은 어디서 나와요?”

“저것들이 네 선배지 내 선배냐? 나한테 뭘 어쩌겠어. 확 때릴 수도 있었는데 봐준 거야.”

“나 때문에요?”

“아니. 양복에 주름 갈까봐서.”

“으이구!! 오빠. 같이 안 올라가도 되니까 빨리 가요. 서두르지 말고 조심해서 안전 운전하고.”

“응.”

“가서 전화해요. 맛있는 거 사드리고요.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시라고 전해드리고요.”

“오케이.”

수영에게 손을 흔들어보이고 계단을 내려가 차에 올랐다.

건물을 돌아보니 모두들 수업을 받으러 들어갔는지 창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막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내려보니 그곳에 그 여자가 서 있었다.

내가 다운받고, 너무 오래 잊고 있던 그 여자. so so so so sexy한 핫 걸이.

“김수영 오빠세요?”

여자가 물었다.

“남친인데 왜요?”

내가 말했다.

“어머. 그래요? 전 수영이 선밴데 나가는 길이면 좀 태워다 줄 수 있으세요?”

안 될 건 없고, 나는 내가 핫 걸을 만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차에 타라고 해 주었다.

핫 걸은 차에 타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만나서 반갑네요.”

내가 먼저 말했다.

“어디까지 가세요?”

핫 걸이 물었다.

“교문 앞까지밖에 못 태워다 드릴 것 같은데요? 바쁜 일로 가는 중이라.”

“아. 네. 거기까지면 충분해요. 거기부터는 택시 많이 다니니까.”

충분하다고 여기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말은 그렇게 나왔다.

“네. 수영이 선배님이신데 가는 길까지 바래다 드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뭐. 기회가 되겠죠.”

수영이한테서 안 좋은 얘기를 들어서 나는 어떻게든 수영이 편에 서서 이 여자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예쁜 여자는 다 그냥 착한 것 같고 막, 막말을 하고 무뇌아처럼 굴어도 거기에도 다 깊은 뜻이 있을 것 같고 그러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어쨌거나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호감이 갔다.

그 호감이라는 것은 장기적으로 이 여자랑 잘 되고 싶다는 생각과는 전혀 관계없는, 빨리 먹어보고 싶다는 방향의 호감이었지만.

우리는 교문 앞에서 헤어졌다.

여자는 아쉬워하는 눈빛을 보이면서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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