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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35화 (3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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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

하지만 반박할 구석이 없었다.

지금 은 과장님이 나랑 마주보고 서서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냥 시시껄렁한 사람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은 과장님의 얘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잔뜩 귀를 기울였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이 얘기가 나온 거지? 하다가, 좋아하는 사람 얘기를 하는 중이었지 하면서 자체적으로 요점 정리까지 해 가면서.

과장님은 벽에 등을 기대고 희미한 웃음까지 지었다.

“아버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더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걸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놔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 봤어. 아픈 자식 앞에서 정말 숭고한 사랑을 보이는 부모는 많지만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람한테 그러는 건….”

“…….”

과장님이 하는 얘기를 분명하게 다 들었다.

그리고 이해를 하는데도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내 머리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라도 물었어야 했을 것 같은데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숱한 조직검사와 피검사를 하면서 수혈도 받았고 이식수술에 대한 얘기도 나오면서 아버지가 같이 검사를 받은 것도 알고 있었다.

결국 이식수술을 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소용도 없게 된 일을 위해서 아버지는 나를 위해서 고단한 검사를 참 많이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 검사 결과를 통해 은 과장님은 그 사실을 알게 된 듯했다.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는 그 사실을.

“…….”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과장님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한 게 분명했다.

과장님이 그런 실수를 했다는 것 자체도 이상하기는 했다. 남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자신의 실수에는 더욱 더 혹독한 과장님이, 내가 그 사실을 모를 수도 있을 거라는 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했다.

“아버지도…. 아세요?”

“응?”

“제가 아버지 아들이 아니라는 거요.”

“응.”

가끔 그런 얘기를 듣기는 했다.

천재는 말이 좋아 천재지 그렇게 멍청하기도 힘들다는 말.

과장님은 내 속에 풍파를 일으켜놓고 자기가 한 실수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나한테 더 도움이 됐던 것 같기도 했다.

한참 후에, 커피를 다 마시고 빈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쉭 던지며 (그것도 못 맞춰서 어이없는 곳에 떨어뜨려 내가 다시 주워 담아야 했는데 실망스럽지도 않고 그냥 딱 내가 예상한 결과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과장님이 한 마디를 했다.

“임정우도 알았잖아.”

이 무슨 기승전결도 없고 사고를 진행시키는 근거도 없는 막돼먹은 추론이란 말인지.

“몰랐고요. 상처받았고요. 과장님한테 실망했고요. 과장님은 지금 굉장히 중요한 업무 수칙 같은 걸 위반한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내가 앞으로 몇 문장은 더 하면서 비난을 하려고 했지만 과장님은 시끄럽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이제 알았잖아. 좋은 분이니까 잘 하라고. 그동안에도 잘 했으면 앞으론 더 잘 하고. 우리 아버지가 그런 분이었으면 나는 너처럼 썩은 표정을 짓고 다니지는 않겠다. 항상 웃고 다니고 세상 사람들 모두한테 친절했을 거야.”

아니. 나한테 그런 엄청난 실수를 해 놓고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가 있는 거지?

나는 내가 받은 충격을 마주볼 중요한 시간을 다 날려버렸다.

그게 과장님의 의도였는지 뭐였는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그제야 이해되는 것들이 있었다.

엄마가 그렇게 이상하게 굴었을 때 아버지가 왜 법적인 대응을 포기하고 돈을 주면서 일방적으로 끌려 다녔는지.

아버지하고 나 사이에는 친자 관계가 없었고 엄마가 혹시라도 법원에서 친자관계 부존재 확인의 소로 다투기라도 한다면 아버지는 나를 잃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 그리고 엄마를 향한 뜨거운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임정우.”

과장님이 나를 불렀다.

늦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사과를 할 생각이 드는 건가 하고 과장님을 바라보았다.

“약 잘 먹어. 그냥 하는 말 아니다. 어렵게 살려 놓은 거니까 잘 관리하라고.”

“……예방차원, 이잖아요.”

“그래서 안 먹겠다고?”

“그건 아닌데. 너무 겁 주시니까요.”

“따로 약 먹는 건 없지?”

“네.”

“지금 복용하는 약 때문에 다른 약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어. 약효가 나타나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수가 있을 거고. 다른 약들의 약효를 상쇄시킬 거야. 서로 충돌해서 몸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자체적으로 몸을 보호하려는 수단이야. 그러니까 약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연락하고 병원으로 와.”

“…네.”

“그리고 한 가지 할 말이 더 있는데.”

드디어 사과를 받아보나보다. 그거 진짜 오래 걸리네.

“아버님 속 좀 썩게 해 봐. 장기 입원하시게 할 수는 없을까?”

“네?”

“아니. 뭐. 꼭 그 방법은 아니더라도. 내가 먼저 연락하면 매력 없어 보이려나?”

“아버지를. 좋아하세요?”

어이가 없고 황당하고 기가 차서 정말 멍청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세상에 누가 그런 식으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계략을 짤까.

“임정우한테 해 오신 것만 봐도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잖아. 얼굴이랑 외모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고.”

“아버지 엄청 가난한데요?”

나는 혹시라도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미리 설명을 했다.

“돈이야 뭐. 나한테 많으니까.”

과장님이 말했다.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좋으세요?”

“나는 배신당하고 싶지는 않거든. 그런데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근데 적어도 임정우 아버님 같은 분이라면 믿고 달려가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려워하면서 내가 낭비한 세월이 몇 년이냐. 이번에는 용기 내 보고 싶어.”

약을 핑계로 나를 갑자기 부른 것도 그 이유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아버지도 과장님 엄청 좋아해요. 아버지한테 제가 바로 말씀드릴게요.”

“그래줄래? 그리고 그거 정말이야? 혹시 임정우한테 그런 말씀을 직접 하신 적 있어? 나를 좋아하신다고?”

“네. 딸이 있으면 저렇게 키우고 싶다고도 하셨었고, 너는 결혼하게 되면 저런 사람 만나라, 그런 말씀도 하셨고요. 회진돌고 과장님이 나가시면 한동안 과장님 뒷모습 보시고, 과장님이 회진 도실 시간 되면 샤워하고 거울보고 향수 뿌리고 막 그러셨었는데. 왜 그러시냐고 하면 저한테서 나는 악취를 희석시켜 주려고 그러신다고 하시고.”

"나를 보신 게 아닐 수도 있잖아."

"과장님이 같이 들어오시지 않는 회진 때는 간이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않으셨어요. 머리라도 좀 빗고 계시라고 해도 간병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회진 때마다 꽃단장까지 하고 있어야 되는 거냐고 막 화를 내셨고요."

과장님은 정말이냐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나는 아버지가 그랬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어느새 웃고 있었다.

“혹시. 아버지 요즘 뭐하시니?”

“여기 저기서 알바처럼 하시나봐요.”

“그래? 왜?”

나는 내가 들었던 얘기를 해 주었다.

과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아버님이라면 그러실만한 분이지.”

“근데 그건 왜요, 선생님?”

“아아. 우리 집안이 원래 다들 이쪽에서 일들을 해 온 사람인데 최근에 의료기기 사업을 시작해 보자는 말이 자꾸 나와서. 근데 그런 쪽으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없고 친척들 중에도 믿을만한 사람이 없고.”

“그쪽이면 아버지가 도움이 될 거예요. 한 3년간은 그쪽 일을 거의 전문적으로 하셨거든요. 그때 그 나라 말도 새로 배우시면서 엄청 열정적이셨는데.”

“그래? 그럼 우선 그 얘기를 해 보고 싶다고 하고 만나뵈었으면 한다고 해볼까?”

“네. 선생님. 완전 괜찮을 것 같아요.”

나는 흥분한 채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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