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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금
은 과장님이 환자를 대하면서 놀라는 표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침착하고 차분한 과장님이었다.
그래서 내 상황이 궁지에 몰렸을 때도 과장님에게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안심하며 믿어왔다. 은 과장님은 모든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고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희망을 품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장님을 보고 있으면 믿을 수 있었고 안심할 수 있었다. 나를 치료하는 사람마저 겁에 질린 채 허둥댔더라면 나도 내 병을 이겨내는 동안 그렇게 의연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전화를 받고 과장님은 분명히 흔들렸다.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고 말을 더듬었고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물었다.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보였던 반응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과장님이 도착한 것은 15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그 시간의 교통 상황을 생각했을 때 가능한 속도가 아니었다. 경광등이라도 달고 폭주족처럼 달린 건지.
과장님은 도중에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 어떻게 처치를 하라고 알려주었고 혹시 그 전에 내 몸에 이상한 느낌이 있었던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나는 없었다고 말을 하려다가, 흥신소에서 원목 탁자가 패인 것이 잠깐 떠올랐지만 그게 정말 나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아서 머뭇거렸다.
“있는 거구나.”
“그게…. 제가 그런 건지는 확실치 않고요. 원래 거기에 그런 자국이 있었는지도 모르기는 하는데 제가 두꺼운 원목 탁자를 치고 그게 움푹 패이긴 했어요.”
말을 하면서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님은 거의 다 와 간다면서 도착하고나서 얘기를 하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과장님이 안으로 들어왔을 때 과장님이 데려온 사람들이 수영 강사를 데리고 나갔다.
사람들이 와서 문을 두드리기 전에 나는 수영 강사에게 말했었다.
한쪽 손은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으니까 지금부터 천천히 이체를 시작하라고.
수영 강사는 뭉칫돈을 이체했다.
그러다가 그렇게 많은 돈이 움직이는 건 당국에 파악이 된다고 하면서 자기한테 시간을 주면 돈을 빼놨다가 현금으로 넘겨주겠다고 말했다. 그때 이체한 돈이 이미 3억이었다. 그런 말을 할 거였으면 진작 하든가.
가끔가다보면 진짜 이상한 놈이다.
나는 5일을 주었고 지연이자를 20프로로 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차용증에 추가로 쓰게 하고, 3억이 이체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 준영의 어머니를 먼저 집으로 돌려 보냈다.
3억이 움직였으니 이미 그것도 파악이 되기는 했을 것이지만 그걸 어떻게 해명할지는 나중에 따로 생각을 하기로 했다.
“나 별로 안 보고 싶지? 그럼 부지런히 갚으라고.”
들것에 실려나가는 수영 강사의 귀에 대고 그렇게 속삭여 주었다.
은 과장님은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혼자 뒤에 남았다.
은 과장님은 나를 바라보더니 환자를 진료하는 것처럼 여기저기를 살폈다.
“일단 나랑 가자.”
“어디에요? 준영이 데리러 가야 되는데요?”
“오늘은 준영이네 엄마한테 데려오라고 하면 되잖아.”
“…네.”
과장님은 병원으로 나를 데려갔고 나를 여기저기로 데리고 다니면서 각종 검사를 했다.
그러면서 무슨 검사를 하는지,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해주었다.
피까지 뽑고 한참을 실컷 데리고 다니더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왜요? 혹시 재발하거나 그런 거예요?”
내가 물었을 때 과장님은 고개를 저었을 뿐이었다.
“별 이상은 없는 것 같다. 혹시라도 이상한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해. 약은 잘 먹었던 것 같네. 온 김에 약 더 받아가. 약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와서 받아가고.”
“네. 저 정말 괜찮은 거죠?”
“약 때문에 나타난 일시적인 증상 같기는 한데.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해. 119에 먼저 연락하지 말고 나한테 먼저 전화하고. 너한테 일이 생겨도 그렇고 사고를 쳐도 그렇고.”
“사고 친 거 아니예요. 진짜 제가 조금만 늦게 깨어났으면 강간당할 뻔 했다니까요?!!”
“거기도 검사해 줄까?”
“어디요? 고추요? 아. 아니예요. 무슨! 아, 진짜! 엄마가 될지도 모르면서 자꾸 제 고추 보려고 하지 마시고요!”
“정신차리고 살아. 어?”
뒤통수를 촤악 갈기면서 과장님이 말했다.
“차 안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전기 충격기 같은 걸로 뒷목을 지져버리는데 어떻게 해요. 준영이네 엄마랑 차를 가끔 같이 쓰니까 오늘 일은 저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요. 준영이네 엄마가 그 남자한테 문을 열어 주고 미리 들어가 있게 한 것 같은데. 제가 기절한 다음에 약을 먹인 모양이고요. 마시라고 줬으면 절대 안 마셨을 텐데.”
과장님은 내 얘기를 들으면서 내 뒷목을 살펴보고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그래. 잘 했다. 앞으론 조금 더 조심하고.”
“그 사람은 괜찮겠죠?”
“누구? 너한테 얻어터진 사람? 죽으라고 때린 거 아냐? 그렇게 때렸으면서 이제 와서 뭘 걱정해?”
“에이. 그런 거 아니예요. 그때는 진짜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무슨 일을 꾸민 건지 알게 된 순간 꼭지가 돌아서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준영이 엄마랑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라고요. 준영이가 저를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데요. 그런데 준영이를 실망시킬 수는 없잖아요.”
내 말에 과장님이 웃었다.
“사람 잘 안 죽는다. 안 죽을 거니까 걱정마.”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버지한테는 잘 각색해서 말씀드려. 너무 걱정하실 수도 있으니까 구체적으로 다 말하지는 말고. 전기 충격기니 강간이니 약물이니 그런 건 빼고 내가 히어로처럼 짜잔 하고 나타나서 현장을 지휘하고 혼돈에 빠져서 멍 때리고 있는 너를 구해준 걸 중심으로 해서 잘 말씀드려. 그 부분만 고딕체 굵은 글씨로 보이게 효과를 잘 집어 넣어서.”
“네.”
내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과장님은 내 어깨를 톡, 톡 두 번 두드려 주었다.
과장님이 그렇게 해 주면 뭔가 굉장히 인정받은 느낌이 들고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 몸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어서 그것 때문에도 좋았고 3억을 받은 것 때문에도 좋았고 곧 돈이 더 생길 거라는 것 때문에도 좋았다.
그 일이 있은지 닷새만에 나는 수영 강사의 연락을 받고 수영 강사가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갔다.
수영 강사는 2억이 들어있는 가방을 주면서 차용증을 회수해 찢었다.
참 갈갈이 야무지게도 찢었다.
“그래. 회복 잘 해라.”
나는 수영 강사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의사들이 한땀, 한땀 조각을 찾아내 맞췄을 그 부위였다.
수영 강사는 비명을 질렀고 나는 병실을 나왔다.
병원에 온 김에 은 과장님과 같이 밥을 먹을까 하고 찾아갔다가, 수술실에서 지금 네 시간째 수술 중이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나는 아버지가 새로 다니게 된 회사로 찾아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아버지를 끌고 나왔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차를 보러 갔고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
그 다음에는 정장 여러 벌을 샀다.
아버지는 어안이벙벙한 표정이면서도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중요한 자리에서 중요한 일을 맡다보면 거기에 맞는 차림이 요구될 거라는 걸 나도 모르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그런 것들이 필요했기에 나를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시계는 어떤 스타일 좋아하세요?”
내가 묻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어디서 난 돈이냐.”
“나쁜 짓 해서 번 거 아니예요. 쉽게 설명하자면 교통사고 당해서 합의금 받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누가 저를 공격했는데 제가 잡았거든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경찰에 넘기지 말아달라고 합의금을 줬어요.”
그 말을 듣고 아버지는 거의 기절할 듯이 놀랐고 내가 다치지 않았는지 그때부터 아예 내 얼굴부터 시작해서 내 몸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저는 괜찮아요. 아버지.”
겨우 아버지를 달래 놓았다.
아버지는 내 눈까지 뒤집어 보았다.
그렇게 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없을 거면서.
나는 넋 놓고 웃고 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맞고 다니지말고 정신 차리고 살아!"
아아아, 왜애애애요. 내가 뭘 잘못 했다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