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56화 (56/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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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시작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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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사무실에 들러서 나는 키샤에 대해서 들었다.

선배의 의뢰인이 키샤의 무분별한 정보 수집으로 피해를 입어 소송을 의뢰한 일이 있어 선배도 그때 키샤의 실체에 대해 처음 알게 됐지만 의뢰인이 도중에 소송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선배는 그때 마치 자기가 투명한 괴물을 상대로 싸우는 것 같았었다고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는 기관과 싸우는 건 정말로 살 떨리는 일이라고 하면서.

그러면서 선배는 내가 키샤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됐는지, 그리고 왜 키샤에대해 묻는지를 물었다.

나는 내가 알게 된 한 여자가 키샤 소속인 것 같다고 말해주었고 그 여자 도움을 받으면 오재광의 비밀스런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선배는 거기에 대해서 선뜻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만약에 선배가 내 입장이라면. 시도해 보고 싶지 않겠어요?”

내가 물었다.

선배한테서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으려면, 법 제도적인 조언말고 그냥 선배가 나라고 생각하고 말해달라고 까놓고 말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근데 그 여자가 호락호락 시인을 할까? 자기가 키샤 요원이라는 걸. 그게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너한테 협조를 하려고 할 이유가 있겠어?”

선배가 하는 말이야말로 당연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네. 협조할 이유가 있어요.”

내가 씨익 웃자 선배가 같이 좀 알자고 말했다.

“알면 다쳐요, 선배.”

나는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선배의사무실을 나왔다.

핫 걸에게 다시 연락을 하자 핫 걸은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전화를 하는 거냐고 죽는 소리를 했다.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데가 없고 걷지도 못 하겠고 거기가 다 헐어버린 것 같고 아무래도 내일은 회사도 못 나갈 것 같다면서.

나는 어려운 부탁에 응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다음에 좋은 곳에서 식사 대접이라도 하고 싶으니 시간과 컨디션이 괜찮은 날로 잡아 알려달라고 말했다.

핫 걸은 자기도 즐거웠다고 말하고 전화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분위기는 일단 화기애애해졌고.

핫 걸과 통화를 끝낸 후에 나는 이연우의 하루 일과와 동선에 대해서 기록해 둔 것을 찾았다.

지금은 강의가 전부 끝나서 미술 학원에 갔을 시간이었다.

이연우가 다니는 학원은 이십 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소나기가 지나갈 거라는 예보가 있기는 했다.

나는 갑작스런 소나기라는 우연이 우리의 첫 만남을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해 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버스 안에서 나는 연신 웃음을 지었다.

통통한 배를 드러내놓고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생쥐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톡톡 건들며 짓궂게 웃는 고양이처럼 나는 기분이 좋았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까지만 해도 비는 오지 않았다.

이연우가 아직 학원에 있는지, 아니면 벌써 떠났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학원으로 들어가 알아보는 것보다는 밖에서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연우를 놓쳤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나는 알고 있었다.

오재광은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사업을 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손 대는 사업들마다 잘 된 편이었다.

음식점 프랜차이즈도 했는데 오재광이 들어갔을 때는 잘 됐다가 털고 나온 후에는 거의 망했다. 그런 걸 보면 오재광은 치고 빠지는데 귀재였다.

그 외에도 오재광은 전국에 여러 채의 건물을 사서 리모델링을 해 새로 입주자를 받으며 돈을 불렸다. 리모델링 디자이너를 데리고 다니면서 조명과 마감재등을 신경쓰며 돈을 아끼지 않고 다른 곳보다 시설을 잘 해서 리모델링을 해 놓으면 연봉 높은 외국인들이 선호해서 몇 년 후의 입주까지 예약이 다 찰 정도였다.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은 후임에게 그곳을 다시 소개해 주어 공실이 없었다.

여러 사업으로 쏠쏠하게 돈을 벌었지만 그놈의 욕심이 문제였다.

오재광은 되지도 않을 선거에 끊임없이 돈을 처들였다.

오재광은 풍랑을 향해 노를 저어가는 사람과 비슷했다.

중간에 그렇게 곁눈질만 하지 않았으면 지금쯤은 준재벌 수준의 생활은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생활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한 번도 그 사람들은 극한에 몰려본 적이 없었다.

다만, 전에 누리던 생활을 향유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버지의 숨통을 졸랐다.

그런 것들이 전부 흥신소를 통해서 알아내게 된 사실들이었다.

아버지가 잠시 쉴 틈도 없이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이연우와 오재광과 엄마는 네일 아트와 피부관리와 맛사지를 받고 다니고 골프와 드라이브와 크루즈 여행을 즐기면서 일행의 비용까지 같이 계산해 주곤 했다.

‘훗. 재밌는 사람들이야.’

나는 미술 학원이 있는 건물을 보면서 생각했다.

여기에서 4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빌라가 있었다.

오재광이 초기에 사 둔 곳이었고 오재광이 갖고 있는 다른 곳들에 비해서 그다지 좋은 시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연우가 다니는 학교와 가까워서 이연우는 일주일 중 이틀을 그곳 옥탑방에서 지냈다.

옥탑방이라고 해도 호화롭게 잘 꾸며져 있어서 옥탑방이라는 편견을 갖고 볼 것이 아니라고 흥신소 직원이 설명을 해 주었다.

위치는 딱 거기가 좋았는데 다들 오래 계약해 왔던 사람들이라 방을 비우기가 쉽지 않아 오재광이 옥탑방을 최고 수준으로 꾸며놓고 이연우에게 그곳에 머물게 해줬다는 것이다.

시간을 보니 이제 슬슬 나올 시간이 돼 가는 것 같았다.

지금 나오지 않는다면 이연우는 내내 그곳에 없었을 것이다.

천천히 빗방울이 떨어졌다.

몇 사람이 하늘을 보면서 손바닥을 펼쳤다.

비가 오나? 라고 생각하면서 하늘을 보다가 낭패라는 표정을 짓고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처음부터 굵었다.

나는 조금 더 기다릴지, 아니면 오늘은 이대로 그냥 후퇴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엇다.

바로 그때 건물에서 이연우가 나왔다.

영상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영상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나는 이연우를 향해 달려갔다.

비가 오고 있었기에 나한테는내 행동을 설명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연우는 우산이 없었고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늘만 바라보았다.

잠깐 내린 비에 홀딱 젖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뛰어 들어왔다.

곧 처마 아래는 북적거렸다.

나는 사람들에게 밀리며 이연우의 옆으로 다가갔다.

팔이 서로 닿았다.

이연우는 옆으로 옮겨갔고 그때 내 옆으로 다른 사람이 하나 더 뛰어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이연우의 옆으로 한 번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내가 감성 충만한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이연우랑 팔이 닿는 게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연우가 그 상황을 당혹스러워하는 게 좋을 뿐이었다.

이연우는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빗속을 뚫고 가 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빗줄기가 갈수록 거세지자 마음이 자꾸 약해지는 모양이다.

3분에서 5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비를 피하려고 들어왔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빗속으로 다시 달려갔다.

쉽게 그칠 비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이연우도 결국 빗속으로 달려나갔다.

무릎 위로 십 오 센티는 올라오는 것 같은 경쾌한 하얀 색 원피스는 비에 젖은 채 그 안에 입은 검은 색 속옷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빗줄기는 갈수록 거세졌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어려울 정도여서 나는 손을 이마에 갖다 붙이고 앞을 봐야했다.

누군가 통에 물을 담아서 끼얹어 버린 것처럼, 그 물을 뒤집어 써 버린 것처럼 이연우는 홀딱 젖어버렸다.

젖은 원피스가 몸에 달라붙었다.

저절로 욕이 나왔다.

내 몸은 벌써 심각할 정도로 반응을 드러냈다.

다행인 것은 그 미친 듯한 비 때문에 사람들이 남의 앞섶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우산이 있는 사람들은 우산속에 숨은 채 걸었고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려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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