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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62화 (6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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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플레이어

혹시 몸캠 영상 사이트가 나를 엿먹이려고 조작된 영상을 올려놓고 그 영상을 다운받게 하려고 별별 이벤트를 다 걸었던 건가 하는 생각에 나는 거의 식은땀이 흐를 뻔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람이 영상 속의 남자가 맞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졌다. 여자같은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영상을 유출당한 사람이 지을법한 표정을 지으면서 초조해하며 화를 냈던 것이다.

내가 놀란 얼굴로 바라보자 정은호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를 발견한 그 순간부터 내 얼굴을 눈빛으로 찢을 것처럼 노려 보았다.

“허!!”

같잖은 게 자기를 협박했다고 생각했는지 정은호가 기분 나빠하면서 의자를 요란하게 빼서 거칠게 앉았다.

"어우! 씨발. 좆만한 게!"

그 사람은 내가 생각보다 어리다는 것 때문에 굉장히 열이 받아 있었다. 나중에 나한테 해 줬던 얘기였다. 잔뜩 쫄아가지고 나왔는데 웬 새파란 게 앉아있어서 정말 짜증 났었다고.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그렇게 말을 하는데 저절로 긴장이 됐다.

속으로는, '아저씨는 좆이 이렇게 커요?' 라고 소심하게 말대꾸를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무서워서 그냥 닥치고 표정을 살필 뿐이었다.

“키가 몇이예요?”

한참 말없이 눈치만 보다가 내가 물었다.

“187이요. 왜. 그거 물어보려고 불러낸 거요? 몸무게도 궁금한가?”

“아뇨. 아뇨.”

나는 그동안 내내 걱정이 됐던 것을 물었다.

“혹시…. 게이세요?”

정은호는 미친 놈을 다 본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고요. 여자 보X에 환장하고요. 그냥 가끔 그러고 노는 것 뿐이예요. 에? 그리고 게이면 뭐. 고추 달고 있는 남자만 보면 눈 뒤집어져서 헥헥거리는 줄 아나? 댁은 이성애자라서 보X 달린 년들만 보면 눈이 확 돌아갑니까?”

“아니. 뭐. 그렇게 화낼 건 아니잖아요.”

“화낼 게 아니긴. 내가 크로스 드레서라는 거 알고 내 영상 본 순간부터 무슨 생각했을지 뻔한데. 그나저나 그거 어디에서 봤는지나 말해봐요. 그거 알려고 나온 거니까.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죠. 어떤 개씹창새끼들이 퍼날랐는지나 봐야겠네. 내가 그것들을 가만 놔두나 봐. 인생이 실전이라는 걸 진짜 뇌에 새기게 해 줘야지, 씨발 새끼들. 확 다리를 잡아서 모가지 밑에까지 찢어버려야지, 씨이발!”

“와우!”

내 눈 앞에 있는 이 남자가 털 밀고 스타킹 신고 화장하고 눈썹 붙이고…. 아…. 생각하지 말아야지.

정은호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는지 내 눈을 캐낼 듯이 손가락을 휘둘러댔다.

“아, 짜증나. 어쩌다 이런 거한테 걸려가지고. 아, 씨발! 거기는 꼭 인간들을 뽑아도 이런 것들만 뽑아. 굴욕감 느껴지게!! 키샨지 개샨지!!”

나는 쉽게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정은호를 겨우겨우 달래놓고 정은호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화내지 마시고요.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오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키샤 요원이 아니예요. 정은호씨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도움만 받겠다는 건 아니고 도움을 주시면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돌려드릴 겁니다. 어차피 지금은 운신이 어려우니까 아예 새 시장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잖아요."

"뭐라는 거야? 키샤가 아니라고? 그러면 나를 어떻게 알았어? 영상보고 어떻게 나에 대해서 다 알아낼 수가 있는 거지? 아니. 일단 그런 건 뭐 지난 일이고. 얘기나 계속 해 봐요."

나는 얘기를 계속했고 정은호는 내 얘기를 주의깊게 들었다.

정은호의 눈빛은 점점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 미친 듯이 날뛰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은호는 차분한 어조로, 오재광이 운영하는 업체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더니 자기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알아보았다.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다 말해봐요.”

나는 흥신소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정은호는 그 자리에서 뭘 좀 더 알아보더니 나가자고 말했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흡연구역을 찾아가 담배에 불을 붙인 정은호는 계속해서 뭔가를 계산했다.

“3대 7로 합시다.”

“예?”

“내가 3.”

“뭐의 3…요?”

“이 사람 통해서 흘러 들어올 돈요.”

“그게. 근데 가능하긴 하겠어요?”

“나에 대해서 모르고 나한테 연락한 거예요?”

정은호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내가 정말 모른다는 표정을 짓자 침을 튀어가면서 화를 냈다.

“아아놔, 진짜 그럼. 나를 그냥 어벙한 크로스 드레서라고만 생각하고 대충 협박해서 짤짤이 긁어오는 일이나 시키려고 나를 불렀다고?”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정은호는 나를 확 칠 것처럼 팔을 들었다가 내리더니 3대 7로 하는 거라고 말을 하고 그대로 걸어가 버렸다.

내가 정은호 입장이라고 해도 자기 약점을 잡아서 오라 가라 하는 게 기분 나쁠 것 같아서 참고는 있었지만. 그래. 뭐. 솔직하게 말해서. 참은 게 아니라 진짜 무서웠다.

그러나 정말로 무서워 해야 할 건 따로 있었다.

정은호는 사흘 뒤에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다.

웬 수더분한 정수기 코디 여자분의 사진이 전송돼서 이게 누군가 하고 보고 있었다.

'이 사람. 도촬 취미도 있나보네? 근데 이 분 사진을 왜 찍어?'

그 사진을 왜 찍었는지도, 그걸 왜 나한테 보냈는지도 알 수 없어서 갸웃거리고 있는데 톡이 들어왔다.

[침투 준비 완료.]

[에?]

[감쪽같죠?]

[이게. 헐! 그쪽 사진이라고요?]

[감쪽같다는 소리네.]

헐!!!!

나는 사진을 다시 보고서야 정은호가 코디 분장을 하고 서서 사진을 찍은 곳이 엄마의 집 앞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 진짜 제대로 걸린 것 같네. 이제 어쩔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코메디같은 그 상황에 왠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친절해 보이는 저 얼굴, 피부 밑에서 지금도 수염이 밀고 올라올 거라고 생각하니 납량특집이 따로 없었다.

오랜 경력의 크로스 드레서다보니 정은호는 여자와 남자로 자유롭게 신분을 바꿔가면서 엄마의 집에 드나들 수 있었고 우리가 계획한 일은 착착 진행되어갔다.

밑작업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정은호는 정말로 신중했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엄마의 집에 들어갔고 인터넷 기사로 분장을 하고 가서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원격 조종이 가능하도록 조작해 놓고 나오기도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할 때면 엄마가 옆에 붙어 있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걸 정은호도 알게 되었고, 일단 엄마가 방으로 들어간 후에는 그 집을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엄마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이 선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아느냐고, 엄마가 답을 알 수 없을만한 질문을 했다. 어차피 그 모습으로 우리 엄마를 다시 볼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정은호는,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들켜도 크게 당황하지도 않았고 여차하면 기절시키고 나간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

정은호가 그날 그날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해 줄 때면 나는 이상한 기분으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드디어 내가 원했던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이 기쁘고 흥분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주저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다 지난 일인데 엄마가 그냥 좀 탐욕스러운 사람이라서 그런 거였다고 이해하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라는 인간도 참 물렀다는 생각이 그럴 때마다 들었다.

마음이 흔들리면 나는 이연우를 찾아갔다.

내가 누리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이연우를 보면, 엄마가 나한테서 뭘 뺏어갔는지 기억해 내는 게 쉬웠다. 그러면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가 있었다.

나는 이연우가 빌라 옥탑방으로 오는 날에는 이연우의 뒤를 밟아 들어갔고 이연우가 샤워를 하는 동안 스마트폰을 열어 가족들과 나눈 대화를 확인했다.

정은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와 오재광은 집에 코디가 다녀갔다는 둥, 케이블 기사와 인터넷 기사가 다녀갔다는 둥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이연우에게 전부 늘어놓고 있었다. 정수기 코디와 케이블 기사, 인터넷 기사가 전부 다 동일인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 작품 후기 ============================

쿠폰과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어제는 추천이 막 늘어서 투베 상위권까지 올라가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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