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65화 (6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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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타임

“왜요? 영업 끝났다고 하던가요?”

내가 물었더니 정은호가 오히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하고 나를 보더니 아니라고 말했다.

그 아저씨랑은 말이 참 안 통했다.

영업이 끝났다고 하더냐.그 말은, 왜 거기에 안 있고 차에 타느냐, 우리는 거기에서 보기로 하지 않았냐라는 뜻인 건데 그 아저씨는 '나는 영업이 끝났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근데 왜 나한테 그걸 묻냐. 혹시 저기 사장이랑 아는 사이냐.' 그런 식으로 되물어왔다.

나는 설명을 하려다가 괜히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지쳐버려서 고개를 저었다.

“어디로 가요?”

“야탑동 OO 마을 XXX-XX”

정은호의 말에 나는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전에 내가 잠깐 머물렀던 집인데 집 주인이 갑자기 망하면서 전세 보증금을 아직도 못 받고 있어요. 건물이 낡아서 누수에 균열이 있는 집이라 나중에도 사람이 들어오지 않고. 그래서 아직까지 비어있는 상태예요.”

“거기에 가도 되는 거예요?”

“집은 비어 있고 나한테는 열쇠가 있으니까요.”

“근데 왜 거기에 가야 되는데요?”

아직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내가 다시물었다.

“중요한 일을 할 거니까요.”

“근데 그걸 왜 하필 그런 곳에서 하냐고요.”

“하아, 거 참 말 많네!! 돈 안 받을 거예요?”

“돈을 받는다고요? 우리어머니한테요? 혹시 우리 어머니를 거기로 오라고 했어요?”

“누가 그렇대요? 그냥 입다물고 거기로 가기나 해요.”

정은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못한 채로 나는 정은호의 기사 노릇을 해 주었다.

정은호는 내 옆에 앉아서 나한테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전부 다 셀카였다.

“나. 코스프레에는 별로 재미를 못 들였는데 이번에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잖아요. 이런 거 재미있데. 제복 입고 하는 거. 제복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하여간 이런 거.”

무슨 말인가 하고 사진을 봤더니 가스 검침원 복장을 한 사진, 포교하려는 신도같이 긴 검은 치마를 입은 사진, 정수기 코디 복장을 한 사진(그건 전에 봤던 거고)에다 야쿠르트 아줌마로 변신한 사진도 있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왜요?"

"언제 집이 빌지 봐야 되니까요. 밖에서 오래 서 있다보면 의심을 받을 거고, 밖에 수상한 사람이 서서 그 집을 계속 보는 것 같다고 오지랖 넓은 이웃이 알려주기라도 하면 경찰이 출동할 수도 있는 거고."

"아아아."

사진을 보면 누가 뭐라고 해도 그냥 키큰 야쿠르트 아줌마가 서 있는 걸로 보일 뿐 그 사람이 남자라는 생각은 누구도, 꿈에도, 못할 것 같았다.

복장이 달라질 때마다 가발이랑 화장법도 완전히 달라져서 그 사람들이 전부 동일인이라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나는 그게 전부 정은호라는 것을 알고 보는 건데도 여전히 쉽게 믿기질 않았다.

“이 정도면 진짜 프로 수준인데요?”

“흐흐흐흐흐흥~”

정은호에게는 그게 가장 듣기좋은 칭찬인지, 나와 만난 이후로 가장 우호적인 리액션이 나왔다.

“근데 이런 옷들을 입고 뭐하신 거예요?”

“뭘 하긴요? 안에 들어가야 구조를 아니까 그렇죠.”

“이렇게 여러 번 들어갔는데도 우리 어머니는 문을 열어줬다고요?”

“그럼 어쩌겠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남자 모습을 한 사진도 보여주었는데 택배 기사, 우체부, 전자제품 A/S기사, 케이블 기사, 인터넷 기사등 다양했다. A/S 기사 복장을 한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집은 물건이 항상 고장난대요?”

나는 A/S기사로 변신한 사진이 많은 걸 보고 물었다.

“내가 검침원이라고 하고 들어가서 이것 저것 망가뜨리고 나왔으니까요. 보일러실이랑 베란다 같은 데 가서 슬쩍 손만 대면 고장나니까.”

“아아아….”

나한테 만들어준 EMP가 생각나서 나는 그 말이 쉽게 이해될 것도 같았다.

정은호는 자기 사진을흐뭇하게 들여다 보았다.

내가 이 사람을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하는 동안 우리는 정은호가 말한 곳에 이르렀다.

정은호는 케이블 기사인 것처럼 하고 가서 그 집 셋탑박스를 만져 세팅을 살짝 바꿨다고 설명을 했는데 내 반응이 신통치않은 걸 보고 설명을 멈췄다.

알아듣지 못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그래서’ 라는 말로 정은호의 설명은 갑자기 훅 훅 많은 세밀한 정보를 건너뛰고 이어졌다. 그러다가 결국 그런 설명마저도 포기를 했다.

“못 알아듣는 것 같네. 뭐. 이런 건 그냥 보면 아는 거니까 너무 낙심하지는 말고. 모를 수도 있지.”

정은호가 나를 위로했다. 그런 것도 못 알아듣는 머리로 세상 사느라고 고생이 많다는 듯이.

그곳에 도착한 후에는 정은호가 앞장을 서서 3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정은호는 가방 두 개를 양쪽 어깨에 교차해 들고 다른 두 개를 손에 들고 갔는데 내가 들어주겠다는 걸 한사코 거부했다.

정은호는 집 앞에 도착해서 남는 손이 없자 나한테 자기 주머니에서 키홀더를 꺼내게 하고 비어있는 집을 열게 했다.

문을 열자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채 방치된 곳 특유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그러나 정은호는 그런 걸 신경쓰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은호는 가방에서 두 대의 노트북을 꺼냈다. 부팅이 되는 동안 정은호는 두꺼운 겉옷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2, 3센티 정도의 두께로 먼지가 쌓인 곳에 그렇게 놓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방 좀 닦을까요? 라고 했더니 왜요? 라고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또 괜한 얘길했네요.”

그래놓고 나는 닥치고 조용히 나가서 화장실을 살폈다.

거기에 말라 비틀어진 걸레가있었다. 아직 물은 끊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전기도 들어왔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한테, 바로 들어와서 살기만 하면 된다는 걸 어필하려고 그런 모양인데 아직 아무한테도 먹히지는 않았는지 이집은 다른 주인을 찾지 못했다.

걸레를 빨아가지고 돌아와서 먼지가 날리지 않게 바닥을 닦으려는데 정은호가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해요?”

“먼지가너무 많아서요.”

정은호는 이해 안 가는 사람이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이상한가? 하고 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한 짓 하지 말고 이제부터 구경이나 해요. 쇼가 시작될 거니까."

정은호가 무슨 프로그램을 실행시켰고 몇 개의 키를 누르자 모니터 화면이 네 개로 분할되더니 특정한 장소의 장면이 나왔다.

나는 걸레를 든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게 뭐예요?”

“어디냐고 해야죠. 오재광 서재예요.”

“오재광 서재요? 거기에 어떻게 들어갔어요?”

“내가 코스프레하고 돌아다닌 게 놀러다닌 건 줄 알았어요?”

정은호가 말했다.

나는 정은호가 오재광의 서재에 침투해서 카메라를 설치한 걸 그제야 알았다.

셋탑박스 어쩌고 세팅 어쩌고 했던 말이 다 그런 말이었던가 보다.

“내가 양심없는 사람 같으면 그냥 혼자 꿀꺽하는 건데. 자. 이제부터 쇼 타임입니다.”

나는 그때까지도 정은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은호는 내 얼굴을 보고 내가 딱 그 상황이라는 걸 깨달은 듯 고개를 저었다.

정은호는 USB를 꼽고 공인인증서 암호를 넣었다.

나는 그게 오재광의 공인인증서라는 걸 알아보았다.

“저걸…. 어떻게 알아내셨어요?”

“아. 내가 코스프레하고 놀러다닌 건 줄 아냐고요. 이거 설치해서 암호 알아내고, 오재광이 집에 들어왔을 때는 세탁기 A/S 기사 복장하고 가서 베란다에서 잠깐 서재로 들어가서. 아니. 아니다. 그냥 이해하려고 하지 마요. 그냥 마법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게 편해요.”

이제 아예 대놓고 나를 저능아 취급이었지만 그 방면으로 이해가 딸리는 나한테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했다.

“자. 이제 시작합니다.”

“네?”

“이 사람 계좌. 각각의 하루 이체 한도가 얼마게요?”

내가 어떻게 아냐는 표정을 짓자 몰라도 된다는 얼굴로 한 번 바라보고 정은호는 이제부터 말 시키지 말라고 했다.

“아. 중요한 걸 까먹었네.”

정은호는 몇 개의 음란 사이트에 들어가서 글을 남겼다.

완전 직설적인 표현을 담아서 섹스하고 싶다는 글을 여기저기에 도배하다시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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