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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73화 (7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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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

화장실에서 혼자 엉엉 울고 있던 이연우에게 선배 하나가 다가왔다.

이연우가 갑자기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다, 학교에 나온 이연우가 강의실에는 들어오지 않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을 보고 나름대로 짚이는 것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너. 혹시."

"네?"

"혹시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니?”

고급 명품을 들고다닐 뿐만 아니라 신상품이 나오면 가격이 얼만지를 상관하지 않고 그걸 구해서 들고 다니는 선배였다. 어느날 학교에 나타난 그 선배를 보고 이연우의 친구가 한 말이 있었다.

저 선배가 지금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용하고 있는 걸 전부 다 사려면 정확히 7900만원이 든다고. 진로를 미리부터 그쪽으로 정하고 패션잡지를 정기 구독하면서 브랜드별 신상품을 달달 외우는 아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연우는 그 선배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돈 많은 늙은 물주라도 만났나보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없이 경멸했었다.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지, 만약에 하자고 들기만 했으면 연우도 그런 차림을 못할 것이 없었다. 삼촌에게 말만 하면 삼촌은 2천만원짜리 에르메스 버킨백 한정판이라도 고민도 없이 사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선배가 접근을 한 것이다.

“지낼 곳은 있는 거니?”

선배가 물었다.

뭔가를 알고 물은 것은 아니었고 그냥 짚어본 거였다.

그런데 이연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 그 선배의 팔을 금방 붙잡고 매달릴 것처럼 다가갔다.

"선배님!"

그 선배는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 이연우를 바라보았다.

이 얼굴에 이 몸이라면 단번에 에이스로 등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 필요해?”

“네. 선배님.”

“알아봐줘?”

“정말요? 힘이 들어도 많이 벌 수 있는 데여야돼요.”

연우가 말했다.

“한 달에 1600정도면 되겠어?”

“네?”

연우는 갑자기 멍해져서 되물었다.

선배는 자기가 가운데에서 챙길 걸 대충 떼고 연우에게 말했다.

“무슨… 일을 하는 덴데요?”

“너. 강의 들어갈 거 아니지? 나도 오늘 강의 다 끝났는데. 나랑 같이 집으로 갔다가 오늘 면접 볼래? 보고 나서 못 하겠으면 안 하면 되고.”

"네. 근데 무슨 일, 하는 덴지…."

"가 보면 알잖아. 싫어?"

“아뇨. 선배님. 그렇게 할게요. 정말 감사해요!”

그날의 모텔비가 굳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럼 준비하고 내려와. 차 가지고 밑에서 기다릴 테니까.”

선배가 그렇게 말하고 먼저 그곳을 나섰다.

연우는 자기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연우는 거울을 보고 심호흡을 했다. 어쨌든 살아야 했다.

스마트폰을 충전할 곳도 마땅치 않아 꺼두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연우는 스마트폰을 켰다. 혹시 삼촌에게서 연락이 왔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도 연우는, 자기가 정말로 기다리는 연락이 삼촌의 연락인지 자문했다.

임정우.

그 남자에게, 정말로 당신이 한 짓이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삼촌 같은 사람이 고작 20대 초반의 풋내기에게 그런 일을 당할 리는.

아니, 이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어쩌다 보니 우연히 일이 겹친 것 뿐이라고 연우는 생각했다.

삼촌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모르지만 재정적으로 큰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을, 임정우가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삼촌을 가만 놔두지 않겠다고 자기에게 야심차게 경고를 하기는 했지만 그 사람이 쥔 솜방망이같은 주먹으로 그 사람은 삼촌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삼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삼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면 그런 일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삼촌이 이렇게 돼버렸다는 걸 알면 그 사람은 좋아할까?

연우는 그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선배가 기다리겠다고 생각하며 연우는 달리기 시작했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선배는 연우를 차에 태워 집으로 향했다.

선배의 집에 도착하자 선배는 작은 방 하나를 내 주었다.

“서두르자. 오늘 사장님이 나오시는 날이거든.”

“네.”

“옷은 이걸 입어.”

선배가 옷을 건넸다.

받아들었을 때는 그냥 블랙 원피스라고 생각했는데 재촉을 받고 입어보니 가슴의 절반이 드러났고 타이트하게 조이며 몸매를 완전히 드러내는 스타일이었다.

이연우는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고 가슴을 가리느라고 급급했다.

“잘 어울리네.”

선배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나가자고 했다.

“이걸 입고요?”

“어차피 바로 차에 탈 거니까. 그리고 거기 지하 주차장에서 내릴 거고. 그 사이에 다른 사람 만날 일 없으니까 괜찮아.”

그러면서도 자기는 평범한 흰 색 셔츠에 블랙진을 받쳐 입었다.

연우도 선배가 제안한 일이 어떤 종류일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막상 그런 옷을 입고 보니 여간 겁이 나는 게 아니었다.

“선배님…. 저…. 저, 아무래도….”

“선입견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어. 가서 나랑 한 잔 하고 온다고 생각하고 가면 되지. 그냥 대충 분위기만 봐. 너무 안 맞을 것 같으면 그냥 오면 돼.”

“우선은 제 옷 입고 가서 갈아입으면 안 될까요? 면접 볼 때요.”

이연우가 말하자 선배도 어쩔 수 없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제 옷을 입었을 때에야 이연우는 마음을 놓았지만 선배는 코를 킁킁거렸다.

“이연우. 나. 아까부터 너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는 건가 했는데. 너. 이 옷 며칠이나 입은 거니?”

그 말에 연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죄송한데요. 선배님. 선배님 옷 한 벌만 빌릴 수 없을까요? 제가 곧 갚을게요. 새 걸로 사드릴게요.”

“고집은. 그냥 입으면 될 걸 가지고. 세탁비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니? 내가 가진 옷들은 다 좋은 거라서 세탁비만 해도 3만원에서 20만원씩 해. 너는 너한테 호의를 베푸는 사람한테 계속 너무 많은 걸 아무렇지 않게 요구하는 것 같다. 그거 굉장히 민폐라는 거 알아?”

그 말에 이연우는 할 말을 잃었다.

얼굴은 더할 나위없이 붉어졌고 얼굴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선배는 옷을 빌려주겠다고 말을 하지도 않았고 옷을 가지러 가지도 않았다.

할 수 없다는 듯, 연우는 선배가 처음 준 블랙 원피스를 다시 입었다.

선배의 말대로 차는 바로 건물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고 직원들이 이용하는 출구를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얘기가 미리 돼 있었는지 선배는 이연우의 손을 잡고 어느 방으로 직행했다.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리다가, 들어오라는 말을 듣고 문을 열고서 선배가 먼저 들어가 인사를 하더니 이연우의 손을 잡아 끌었다.

“아. 이 분이 후배라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물었다.

관리가 잘 된 몸이었고 20대와 같이 있는다고 해서 주눅들만한 사람이 아닌 듯했다.

“사장님이셔. 인사드려.”

선배의 말에 연우가 인사를 했고 사장은 연우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좋네. 청순해 보이는데 눈빛이 야릇해서 인기 많겠다. 얼굴도, 몸도 다 좋아보이고. 경 실장한테 데려가서 면접 보고 가르칠 것 가르쳐 주라고 해.”

사장한테 면접을 보는 게 아니었나 하면서 연우가 선배를 바라보자 선배가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면접은 이미 통과를 한 거고 실장에게 업무조건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이나 들으라는 얘기인 것이다.

20대 후반의 실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연우를 보았고 근무 조건에 대해서 말했다.

높은 수입이 보장되지만 면접을 통과하는 게 까다로웠는데 연우는 사장의 앞에 5초도 머물지 않고 통과가 되었다.

일단 실장은 연우가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고 제모는 미리미리 잘 해 두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로 자기가 어디에 들어온 건지 실감이 났다.

선배는 연우의 옆에 오래 있어주지 못했다.

룸에서 선배를 찾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대기실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봐가면서 배워. 초이스할 때는 너도 일단 같이 들어가.”

실장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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