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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
그러다가 사장의 연락을 받고 돌아오더니, 연우에게 사흘 정도는 룸에 들어가지 말고 대기실에서 분위기를 익히라고 말했다.
사흘 후에 고위 공무원의 접대가 예정되어 있으니 손 타지 않은 연우를 그때 들여보내주면 좋아할 거라는 사장의 생각 때문에 연우는 사흘동안 대기상태였다.
그리고 그 날이 되었을 때, 연우는 룸에 들어가지 말고 대기하고 있으라는 말에 대기실에 머물렀다.
대기실에 한 사람도 남지 않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날이었다.
혼자 남겨졌을 때 연우는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화장이 번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울음은 점점 크게 터져 나왔고, 연우를 데리러 왔던 실장은 화를 내면서 연우의 뺨을 때렸다.
고개가 휙 돌아갈 정도였고 몸은 벽으로 밀려갔다.
“멍청한 년이! 예약돼 있는 거 알았어, 몰랐어. 어?!! 일정 변경 때문에 예약 취소한다는 전화가 왔으니 망정이지 어쩔뻔 했냐고! 너 따위 때문에 우리가 신용을 잃어야 돼? 어?!!”
더 이상 손찌검을 하지는 않았지만 연우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꼬라지가 그래가지고 대기하고 있어봤자 오늘은 일 못하니까 들어가! 내일 일찍 나오고!”
연우는 혼자서 선배의 집으로 향했다.
늘 선배와 함께 갔기에 따로 차비를 챙겨오지도 않았다.
연우는 선배의 집까지 걸어갔다.
걸어서 40분이 되는 거리였지만 그러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연우는 정우의 전화번호를 생각해 보려고 했다.
정우의 전화번호가 실수로 지워졌는지 유독 그 번호만 사라져버렸다.
연우는 자기 기억이 맞기를 바라면서 전화를 걸었지만 정우의 전화가 아니었다.
맨 마지막 두 자리의 번호를 서로 바꿨으면 통화가 됐을 텐데 연우는 끝내 제대로 된 번호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다리는 퉁퉁 부어 있었고 실장에게 맞은 뺨은 손바닥 모양으로 부풀어 올랐다.
새벽 늦게 돌아온 선배는 연우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연우는 룸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연우는 몇 번이나 초이스 준비를 하고 룸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날 울고 뺨에 따귀까지 맞아 얼굴 한쪽이 알록달록하게 부풀어오르고 거의 한 시간을 걸어서 집에가는 바람에 다리까지 퉁퉁 부어버려선지 연우는 초이스를 받지 못했다.
맞은 자국을 가리려고 화장을 두껍게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화장까지 잘 먹질 않아서 연우는 그야말로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처음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이래서 어떻게 먹고 사나 하는 현실적인 걱정이 들었다.
대기실을 지키는 사람이 별로 없다가 자정이 지나 손님들이 어느 정도 돌아가고 대기실이 다시 찼다.
“초이스 준비해.”
실장이 문을 열고 고개만 들이밀고서 말했다.
연우와 눈이 마주치자 사납게 노려보고는 혼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우는 모멸감을 느꼈지만 지금 자기가 세상에서 기댈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라는 생각에 버텼다.
실장이 문을 열자 비범한 미모를 갖춘 늘씬한 여자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남자는 모자를 눌러쓰고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연우는 얼굴이 조금이라도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차가운 손으로 얼굴을 꾹꾹 누르며 밖에서 기다렸다.
먼저 들어갔던 여자들이 나가고 연우의 조가 들어갔다.
연우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소파 위의 남자를 알아보았다.
인사를 하고 자기 소개를 해야했지만 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실장은 또다시 말썽이라고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손으로 살짝 자기 이마를 짚고는 손님에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신입인데 들어온지 얼마 안 돼서 떨리나봅니다. 제가 대신 소개하겠습니다.”
“됐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연우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 같았다.
임정우였다. 목소리로 더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길 알고 온 건가 하는 생각에 연우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
이연우였다.
정말로 그곳에 이연우가 있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핫 걸이 알려준대로라면 이연우는 아직 룸에 들어가서 손님을 접대하지는 않았지만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서 매번 초이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연우가 매번 초이스를 받지 못했다는 말이 오히려 이상했는데 이렇게 이연우를 보고 있으려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이연우는 밤새도록 울었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내 얼굴에는 그게 보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연우가 갖고 있는 원래의 미모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연우한테는 천운이었다.
그리고 나한테도.
만약에 이연우가 여기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2차를 나가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에 이연우를 찾게 됐다면 나는 큰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알았던 이연우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에 슬퍼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연우를 바라보는 동안 이연우의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자기 소개를 했다.
나는 연우를 선택했고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보시죠.”
연우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걸 보고 실장이 손님 곁에 가서 앉으라고 말했다.
연우는 잘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다른 여자들을 쉽게 초이스 하지 못하고, B급만 보여주는 거 아니냐고 실장에게 말했다.
실장은 얼굴이 붉어진 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오늘은 룸마다 먼저 차서….”
“에이스는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말이라도 해 주지. 다른 데로 가게. 실컷 손님받아놓고 B급으로만 보여주면. 에이. 아닙니다. 이런 데에 다시 올 것도 아닌데 말을 해서 뭐 하겠습니까. 됐으니까 나가시죠. 나머지는 아까 주문한대로 가져다 주시고.”
“예.”
실장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말하며 나갔다.
나는 핫 걸의 연락을 받고 곧바로 뛰어 나오느라고 옷이 젖어있었다.
차에서 내린 후에도 핫 걸이 알려준 장소를 찾을 때까지 계속 달렸다.
헉헉거리면서 내가 그곳에 들어왔을 때, 얼굴에서 땀을 흘리고 거친 호흡을 하면서 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은 흡사 오래 굶주린 짐승 같이 보였을 것이다.
늦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혹시나 연우가 그 사이에 다른 룸에 초이스 돼서 들어간 건 아닌지 새로운 걱정이 시작됐다.
들어오는 여자들의 얼굴을 보면서 연우의 얼굴만 찾았다.
그리고 연우를 발견했을 때 나는 하마터면 안도의 숨소리를 크게 낼뻔했다.
옆에 와서 앉은 연우는 눈을 내리뜬 채 바닥만 보고 있었다.
가슴과 허벅지가 드러나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연우를 보고 나는 가디건을 벗어 연우에게 건넸다.
연우가 받으려고 하지 않아 내가 어깨에 걸쳐 주었다.
연우는 원망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체념한 듯 한숨을 쉬고 내 커다란 가디건에 팔을 넣고 단추를 채웠다.
“왜 여기에 있어.”
고저없는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그쪽이 그런 거…. 아니죠?”
연우가 물었다.
“학교는 왜 안 나가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집에 다른 사람들이 살더라.”
“가 봤어요?”
“어.”
“왜요?”
네가 그 일을 당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거기에 서 있다는 이유로 너무 큰 해일에 휩쓸려 버리게 한 것 같아서.
내 마음도 복잡했다.
연우를 사랑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영과 준영이를 아끼는 것보다 연우를 생각하는 마음은 훨씬 덜 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 때문에 연우가 아주 벼랑으로 떨어져버리게까지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우가 누리던 것들을 전부 다 막아버리면 연우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연우가 업소로 흘러들어온 것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
나때문에 연우가 남자들에게 웃음과 몸을 파는 여자가 되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뒤늦게 연우의 얼굴에 난 손자국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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