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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75화 (7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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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

화장으로 가린다고 가렸어도 가까이에 앉아서 보니 그것이 드러났다.

유난히 민감한 피부라서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직 가라앉지 못한 자국이 있었다.

“얼굴 왜 그래? 혹시 룸에 들어갔었어? 남자들한테 맞은 거야?”

아직 룸에는 들어가지 않은 것 같다고 핫 걸이 말했는데 핫 걸이 잘못 안 거였던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늦게 와서 그 사이에 들어갔었던 건가.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갑자기 화를 내듯 말하자 연우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네? 아. 아아.”

연우는 나중에야 자기 얼굴이 어떻다는 걸 깨닫고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그게 어떻게 해서 생긴 거냐고 내가 계속해서 묻자 연우는, 내가 상상하는 일이 일어났던 게 아니라고 설명을 하느라고 실장이 그런 거라고 말했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여기 와서 룸에 들어간 적 있어?”

내가 물었다. 연우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연우가 룸에 들어가서 손님 접대를 했다거나 2차를 나갔다고 하더라도 내가 연우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죄책감을 벗고 싶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들어간 적은 있지만 초이스를 못 받았어요.”

연우가 말했다.

말을 해 놓고 웃었다.

그 웃음에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연우가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있는 것만 아니었으면, '아, 자존심 상해!' 라고 말했을지도 모를 것 같았다.

"다행이다."

나는 연우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연우는 나에게 손을 잡힌 채 가만히 있었다.

나는 연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무 일도 당하지 않고 무사해줘서 고마웠다.

"잘 참아줘서 고마워. 잘 버텨줘서."

연우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왜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일인지, 내가 왜 고맙다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일단 가자. 학교 옆에 방 하나 얻어줄게. 지금까지 살던 데처럼 좋은 걸로는 못 얻어주겠지만. 등록금도 대 주고 매달 생활비도 줄게.”

연우가 나를 바라보았다.

"왜요?"

"응?"

“그리고 그럴 돈이 어디 있어서요? 전에 나한테, 힘들게 살아왔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알바를 하면서 모아둔 돈이 있다고 말했다.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가 그럴 돈이 어딨냐고 추궁을 당하는 일이 요즘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연우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대 주겠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우는 자기 삼촌의 몰락에 내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믿지 않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연우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아버지가 새로 시작한 사업이 잘 되고 있고 아버지에게 도와 달라고 말하면 조금은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설명을 해도 연우의 표정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럼 내 스폰서가 되는 거예요?”

연우가 물었다.

“내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고 싶어? 여기 오는 사람들한테 웃음 팔고 몸 대주면서?”

내 돌직구에 연우는 제대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는…. 뭘 하면 되는데요?”

연우가 물었다.

“살아야지.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이연우의 삶을 살아야지.”

“바라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연우를 바라보았다.

"애인이 돼 달라는 조건은 아니야. 돈 안 써도 애인은 만들 수 있으니까. 가끔 섹스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 그것도 네가 원하지 않으면 안 할 거야. 돈을 주고 너를 사겠다는 뜻은 아니야."

연우는 다시 바닥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일단 가자. 차 가져왔어. 그래서 술 마시면 안 돼.”

연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실장이 들어와서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손님, 정말 죄송하지만. 예약하셨던 분이 먼저 다현이를 초이스 하셨는데 예약을 취소하셨다가 다시 오셔서 다현이를 찾으셔서요.”

다현이라. 걸그룹 가수 이름을 따서 급히 지은 이름인 모양이었다.

실장은 어지간하게 친하게 지내는 단골이 아니고는 건넬 수 없을 말을, 거의 죽음을 각오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 도도한 여자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대단한 사람이 온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예.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마침 다른 룸에서 나온 에이스가 있으니까 그 애를 들여보내 드릴게요. 다현이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거니까.”

“…네?”

실장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대충 그렇게 말을 하면 들어줄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가라고요.”

“저…. 손님. 그 분이 예약을 하면서 다현이를 먼저 초이스를 한 상태라서요….”

“그리고 취소했다면서요. 그럼 끝난 거지. 우길 일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쪽도 힘들게 말하는 것 같은데."

"손님. 어떻게 안 될까요? 에이스들로 바로 들여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네. 그 에이스들을 그 방으로 들여보내요."

"네?"

"일처리를 지저분하게 하시네. 다현씨를 데려가겠다고 말해 놓고 온 모양이죠? 그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해결을 해야지. 나한테 부탁할 게 아니라. 기분이 풀릴 때까지 따귀를 때리라고 하든지.”

내가 말하자 실장이 놀란 표정으로 연우를 바라보았다.

연우는 습관적으로 실장의 시선을 피하려고 했고 나는 그런 연우의 손을 잡아서 내 쪽으로 이끌었다.

“내 말도 좀 전해주면 좋겠네요. 취소할 때는 신중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뭐. 지들 인생이니까 꼴리는 대로 살겠다고 해도 할 말 없는 거겠지만.”

“저…. 손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실장이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네. 어떻게 안 되겠다고 방금 말 한 건데요? 왜요. 귓구멍에 좆이라도 박았습니까? 안 들려요? 여기는 장사를 이런 식으로 합니까? 유니크하긴 하네. 실장님 맞죠? 실장이 나서서 손님을 쫓아내나? 이보세요. 나 여기 들어와서 아직 한 잔도 안 마셨어요. 알았어요?”

“손님…. 정말.”

“앞으로 한 마디만 더 해라.”

실장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한 마디만 더 하라고 했다. 그 방, 내가 찾아가서 다 엎어버릴 테니까. 얼마나 대단한 새끼가 온 건데 앞뒤 못 가리고 이렇게 짜증나게 굴어? 응?”

“아닙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나가는 줄 알았던 실장은 몇 분 후에 사장과 같이 들어왔다.

사장은 나를 설득하려고 다가왔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일어섰다.

사장은 내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떠나주니 잘 됐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연우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다현씨는 내일부터 여기에 안 나올 거니까 찾지 마세요. 하고 싶은 말이 남았으면 내가 변호사 하나 선임해서 보내줄 테니까 그 사람이랑 말하고.”

연우는 나한테 손을 잡힌 채 내 뒤로 몸을 숨겼다.

사장과 실장은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연우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들의 앞을 걸어나갔다.

그리고 연우의 손을 잡고서 어두운 복도를 걸어갔다.

수동적으로 잡혀있기만 했던 연우의 손에서 힘이 느껴졌다.

연우가 내 손을 단단하게 잡아왔다.

연우를 바라보았다. 긴장된 얼굴이 붉었다.

연우는 아직 겁에 질린 듯, 정말 이렇게 가는 걸로 전부 다 끝낼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종종 걸음으로 나를 따라왔다.

나는 연우를 보고 웃어주었다.

연우는 차마 같이 웃어주지는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를 믿는다는 의미인 건지 애매했지만 나는 연우의 손을 다시 한 번 힘주어 잡고 발걸음을 빨리 했다.

주차장에서 차에 오르고 차를 출발시켰을 때에야 두 사람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있었다.

“아…. 계산 안 하고 나왔다.”

내가 말했다.

"먹은 것도 없잖아요."

먹은 게 없으니, 계산 안 하고 나온 것도 그리 큰 잘못은 아니라는 듯이 연우가 말했다. 나는 연우의 머리를 헝클었고 연우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한 번 더 연우의 머리를 헝클고 차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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