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6 ----------------------------------------------
연우
***
그 시간에 연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방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은 연우가 누군지도 몰랐다.
접대를 하는 본부장도, 접대받으러 온 공단 이사장도.
대단한 미인이 새로 들어왔는데 아직 교육만 받고 있고 다른 사람 손을 탄 적이 없으니 꼭 한 번 들러달라는 말을 듣고 이사장과 온 건데 본부장의 꼴이 우습게 된 것이다.
사업자로 선정되기만 하면 연매출 14조에 순이익만 5800억 정도가 예상되는 사업을 따내기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해 치열한 로비를 벌이던 끝에, 사소한 문제가 조금 불거져 그 문제를 불식시키려고 공단 이사장을 어렵게 설득해서 마련한 자리였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단 이사장은 자기가 사업자 선정 과정 중에 이런 접대를 받는 것이 좋아보이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여러 번 사양했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건, '사람들 눈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잘 알아봐서 연락해라.' 라는 뜻이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마련한 자린데.
게다가 이사장은 잔뜩 기대를 하고 온 것 같은데.
본부장은 실장에게서, 룸에 있던 손님이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가버렸다는 말을 듣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이사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
하지만 본부장이 빈 잔에 술을 따라주려고 하자 거칠게 손을 내저었다.
“재미있게 대접 잘 받고 갑니다.”
이사장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 옆에는 업소의 실장과 사장이 죄인처럼 서 있었다.
본부장과 이사장이 룸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이었고 중요한 얘기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사장님!”
본부장은 이마며 등골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처음부터 그 여자가 다른 방에 들어갔다고 말을 하고 받아들였으면 일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본부장이 괜히 이사장에게 딸랑거리면서, 이사장님이 찾으시는데 당장 여기로 와야지 무슨 소리냐고 큰소리를 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됐다. 그 말을 안 했으면 거기에 그렇게까지 의미를 두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인데 그 말 때문에 오히려 이사장의 꼴이우스워졌던 것이다.
“아. 본부장님.”
밖으로 나가던 이사장이 갑자기 돌아서며 본부장을 불렀다.
“예.”
본부장이 이사장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여기 CCTV 같은 게 있으면 그 사람 얼굴이나 구경 좀 해 봅시다. 재미있는 사람 같은데.”
“그… 사람요?”
“아가씨 데리고 나갔다는 사람말입니다. 일처리 느슨한 양반이 말귀도 이렇게 못 알아 먹으면 어떻게 일을 하겠다는 건지.”
이사장은 웬만하면 끝까지 안 좋은 소리를 안 하고 그냥 나가려고 했지만 본부장의 어벙하게 구는 것 때문에 결국 짜증이 치밀었다.
“아…. 예…. 바로 찾아서 파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은 찾아서 뭘 하시게요? 라는 질문을 할만큼 무모하지는 않았다.
이사장은 그 대답을 듣고 걸어나가 버렸다.
"사람을 이렇게 우습게 만드나? 어?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거야?!!"
화가 난 본부장의 불똥은 사장과 실장에게 튀었다.
"나 말이야. 이 일 제대로 성사 안 되면 여기 가만히 안 놔둘 거야. 계속 장사할 수 있게 놔두는지 한 번 보라고. 어?!!"
그러게 왜 애초에 예약을 했다가 취소를 했다가 그렇게 변덕을 부린 거냐고 따지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두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조아렸다.
잠시 후에 실장은 CCTV에 찍힌 정우의 얼굴을 캡쳐해 공단 이사장에게 파일로 보내고 있었다.
파일을 받은 이사장은 입술 끝을 비뚜름하게 말아 올렸다.
‘애 새끼가 뭘 좀 알고 깝칠 일이지.'
그런 일이 있는 줄 모르는 정우는 연우를 데리고 호텔로 향했다.
다른 뜻이 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연우에게는 갈 곳이 없었고 연우를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 들이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
호텔에 가서도 연우는 한동안 긴장을 풀지 못했다.
“어떻게 할까? 쉬고 싶으면 나는 돌아가고. 내일 로비로 와서 기다릴까?”
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같이 있으면 좋겠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연우.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면서도 가끔 그렇게 솔직하게 자기 욕망을 드러내 주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욕조에 물 받아서 씻을까?”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가 욕실로 가려고 했다.
“그냥 있어. 내가 하고 부를게. 긴장되고 겁났겠다. 쉬고 있어.”
가운을 가져다가 침대 위에 놔 주고 욕실로 가서 물을 받았다.
물이 받아지는 동안 연우의 학교 근처에 매물 나온 게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려고 나왔을 때 연우는 벌써 자고 있었다.
긴장이 많이 됐던 것 같아 안쓰러웠다.
집을 떠나야 했던 순간 이후로, 이렇게 제대로 된 공간에서 눈을 붙여본 게 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 다가가 옆에 걸터 앉자 연우가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더 자. 아직 다 안 받아졌어.”
연우는 다시 천천히 몸을 눕혔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다시 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연우는 눈을 뜨고 자기 눈 앞에 있는 내 무릎과 다리를 보다가 그 위에 대충 짚어져 있는 내 손을 잡았다. 그렇게 내 손가락 두 개를 한데 잡고야 연우는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얼굴을 괴고 연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어 연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투명한 유리 같아서 더럽히고 싶고 깨뜨리고 싶어지는 아이. 연우를 그렇게까지 몰아세우고 나서 이제는 그 아이의 구원자로 나선 나 자신에 대해, 내가 뭘 하고 싶어하는 건지, 나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연우의 잘못이라면 해일이 불어올 때 바다 끝에 서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같이 그 해일에 떠밀려 버린 것이다. 내가 일으킨 해일로 멸망시키고 싶었던 사람은 연우가 아니었지만 연우는 그 재난을 피하지못했다.
나는 기진한 채로 물가로 떠밀려 올라온 이 가녀린 새를 바라보면서 욕망을 느꼈다. 내 혀는 어느새 연우의 입술을 벌리고 들어가서 연우의몰캉한 혀를 더듬고 있었다.
연우가 눈을 떴다.
“너랑 하고 싶어.”
연우가 두 손을 들어 내 목을 감쌌다. 연우의 입에서 나온 더운 열기가 내 몸을 덥혔다.
부드럽게 휘감기는 혀가 입 안을 가득 적셨다. 나는 탐욕스럽게 연우의 모든 것을 욕망했다. 연우의 타액을 빨고 삼켰다.
내가 잠시 멈추었을 때 연우는 내가 뜨거운 눈으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연우의 머리를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허겁지겁 키스했고 연우의 옷을 벗겼다.
“아. 옷은? 가지러 가야 되나?”
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집에서 옷도 못 가지고 나왔어요. 선배 집에 있을 때는 선배 옷을 빌려서 입었는데. 세탁비도 주긴 해야 되는데….”
연우가 말했다.
“그럼 짐이 아무 것도 없어? 그냥 이 상태에 가방. 그게 다야?”
연우는 의기소침해진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네. 우선 집을 구하고 옷도 사고 새 집에 필요한 물건들도 사야 될 테니까.”
나는 괜히 들떠서 말했다.
“꼭 갚을게요.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갚을게요. 그리고. 고마워요.”
연우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연우가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우리 사이가 그걸로 인해 위태로워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연우가 사실을 알게될 때쯤에는 이미 내 마음속에는 연우가 남아있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 대신 또 다른 수 많은 여자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마음을 차지하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연우의 몸을 탐하려다가 도중에 포기했다.
화장한 얼굴을 빨고 싶지 않았다.
“씻고 하자. 화장 지우고. 넌 맨 얼굴이 더 예뻐. 너답고.”
“…….”
실장년이 연우의 얼굴에 남긴 손자국은 이제 거의 가라앉은 것 같았지만 분노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욕실에 갔을 때는 거의 넘칠 정도로 물이 받아져 있었다.
“씻어. 적당히 따뜻한데 이 온도가 맞을지 모르겠다.”
연우에게 말했다.
“같이…. 안 씻어요?”
“그래도 돼?”
끄덕끄덕.
“내가 먼저 들어가?”
끄덕끄덕.
나는 옷을 벗어서 밖에 던져두고 욕조로 들어갔다.
내가 기다리는 동안 연우가 천천히 옷을 벗고 그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