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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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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걸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아아아. 네. 안녕하세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청산해야 할 것이 우리 사이에 남아있다는 생각과 함께 막연한 부담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아아아아라고요?”
핫 걸이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하품하느라고 그랬어요. 하품하느라고.”
“그렇겠죠. 내가 전화하면 반가워 죽을까봐 그동안 전화하고 싶어도 전화도 못 하고 있었던 건데.”
핫 걸이 말했다.
하여간 말은 청산유수다.
어디 이상한 곳에 가서 작전을 수행하고 귀국한 건지, 한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드디어 전화를 해서 독촉을 하려는 모양이다.
“재미있는 걸 내가 알아냈는데.”
핫 걸이 말했다.
“뭔데요?”
그러면서도 핫 걸이 재미있어 하는 거야 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핫 걸은 전화 통화로 말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라고 말했다.
“만나서 얘기하죠?”
핫 걸은 바로 약속을 잡았고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약속 장소에 나갔다.
언젠가 핫 걸에게 해 줘야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수치플을 알아보면서 내 멘탈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부서져 버렸다.
그러나 핫 걸은 내 순수하고 불쌍한 영혼이 겪는 고뇌는 아랑곳하지 않고 엉뚱한 얘기를 꺼내 나를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이 한 건(件) 한 것 같던데. 맞죠?”
“…네?”
두 사람이라는 패키지에 나하고 같이 들어간 사람이 누굴까 하면서 핫 걸을 바라보았다.
“누구요?”
“정은호요.”
“아… 네? 그런데 웬 한 건요?”
나는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왜 이러세요. 나까지 속이려고 그래요?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거 몰라요?”
나는 잠시 핫 걸의 눈을 바라보았다.
핫 걸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증거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정황상 일이 어떻게 된 거다라는 걸 추측하는 것 뿐이긴 하지만 그것들이 전부 다 너무 딱 들어맞아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오재광과 엄마에게 복수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정은호를 소개해준 사람이 핫 걸이었는데 핫 걸이 나에게 정은호를 소개해준 이후에 오재광과 엄마가 갑작스런 몰락의 길을 걷게 됐고 나와 정은호의 생활이 폈으니.
아마 정은호는 이제 더 이상 지하 경제활동은 하지 않을 테고 핫 걸의 정보력이라면 우리 계좌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예치돼 있다는걸 알게됐을 수도 있었다.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이 초고속으로 지나가자 나는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만들어서 웃어보였다.
“뭘 원해요?”
내가 물었다.
“뭘 줄 건데요?”
“원하는 건 다 해 줘야겠죠.”
“그래요?”
“상식에 반하는 선이라면 어렵겠지만요. 그리고 나를 움직이려는 방법이 협박처럼 들리면 기분이 나쁠 거고요.”
"기분이 나쁘면 어쩔 건데요?"
"온 힘을 다해서 참겠죠."
별 수 있나.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내가 부처님한테 뭘 하겠는가.
“그럼 성의표시만 하세요.”
핫 걸이 말했다.
“그러죠. 어떻게 해 줄까요? 집에 인테리어 한 번 싹 해 줄까요? 고급 휴양지로 휴가 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제대로 돈 처발라서 바꿔줄 수 있는데.”
“코딱지만한 집에 그런 짓을 해서 뭘 하게요? 됐어요. 코딱지는 금칠해도 코딱지지. 코딱지가 금이면 코딱지가 아닌가?”
하여간 비유를 해도 더럽게!!
핫 걸이 말하고는 바닥에 남은 음료수를 쭈우우욱 빨고 고개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저렴하고 더러운 소리가 났고,사람들은 전부 우리 테이블을 바라 보면서 역겨운 표정을 지었다.
핫 걸은 이미 입을 빨대에서 뗀 후였고 사람들은 두 사람 중에 그런 짓을 했을만한 사람은 당연히 나일 거라고 생각하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아놔. 내가 한 거…. 아, 진짜!”
이 여자가 그런 거라고 쩨쩨하게 이를 수도 없고.
핫 걸은 씨익 웃었다.
“가끔 이렇게 같이 놀아주기나 해요. 나도 공직잔데 그런 돈 잘못 받아먹으면 탈나요. 혹시 나중에 내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데 열렬한 지지를 받다가 이 스캔들이 터져서 대통령도 못해먹고 죽게 되면 억울하잖아요.”
“그쪽이 대통령되면 유흥 문화는 엄청 육성되겠네요.”
“에에이. 설마 그러겠어요? 그래도 균형은 맞춰서 발전시켜야죠.”
볼수록 반전매력이 있는 여자다.
나는 갑자기 생각난 걸 물었다.
“근데 그 영상 찍어준 사람은 누구예요?그 사람도 여자같던데.”
"누구요?"
핫 걸은 감도 안 잡힌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새벽에 같이 나가서 찍어준 여자 있잖아요. 트렌치 코트 입고 공원 갔을 때."
“나도 정말 궁금한 게있는데. 그쪽한테 신기(神氣)있다는 거 거짓말이죠.”
“왜요?”
“다른 건 제대로 알아내는 게 없잖아요. 그 영상. 진짜 어디에서 본 거예요?”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요? 대답해 주기 싫어서 피하는 거예요?”
핫 걸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았다.
자기 눈을 똑바로 보고는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처럼.
나는 그 눈을 똑바로 보고, 내가 물은 질문에 빨리 대답해 달라고 말했다.
“에이. 안 넘어가네. 그냥 동호회에서 만난 애예요. 성향 비슷하고. 나머지는 노 코멘트. 나하고만 관련된 일도 아니니까. 그 애도 찍혔어요?”
“아뇨. 그냥 목소리만 들리던데.”
“아. 다행이네.”
“왜요?”
“뭐가 왜예요? 걔까지 얼굴 팔려서 좋을 게 뭐가있어요?”
“친한가보네요? 엄청 걱정해 주는 것 같은데.”
“나는 모든 사람 일을 내 일처럼 걱정해 주는데요?”
누가 봐도 거짓말인게 분명한 얘기를 하고 핫 걸은 다시 빨대에 입을 가져갔다.
나는 웃음이 터져서 웃기 시작했고 바닥에 남은 음료에 빨대를 대고 쪽쪽 빨아대고 입술을 뗀 핫 걸에게 시선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핫 걸을 바라보았다.
그 소리가 나기 전부터 내가 웃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핫 걸은, 이번 작전은 실패라는 걸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잔뜩 창피해진 지금, 핫 걸은 성적으로 흥분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 배고픈데. 밥 먹으러 가죠. 햄버거 좋아해요?”
핫 걸이 갑자기 말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 상관없어요. 햄버거 먹으러 갈래요?”
“네.”
멀지 않은 곳이었다.
핫 걸은 걸음을 빨리했다.
“왜 그렇게 서둘러요? 그렇게 배고팠어요?”
“아뇨?”
핫 걸은 뛰는 것처럼 걸으면서 서두르더니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2인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당연히 그 맞은 편에 내가 앉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다가가는데 핫 걸은 그 자리에 자기 가방을 내려놓았다.
도대체 뭐하자는 걸까요, 하고 있는데 핫 걸이 건너편에 있는, 벽에 붙은 자리를 가리켰다.
“나 혼자 저기에 앉으라고요?”
핫 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문을 모르고 앉아있는데 핫 걸이 먼저 주문을 하고 돌아왔다.
“그쪽 것도 같이 시켰어요.”
무슨 꿍꿍인가 하고 있다가 주문한 음식을 받아들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핫 걸이 테이블 아래에서 다리를 벌렸다.
‘헐!!’
우리 사이에는 장애물이 없었다.
그때는 맞은 편에 놓았던 가방도 치워져 있었다.
잠시 후에 햄버거가 나왔다.
핫 걸은 햄버거를 집은 손을 아래로 가져가 벌린 다리사이를 훑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빨았다.
손가락을 빠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장소는 아니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잔뜩 발기가 돼서 위험해졌다.
핫 걸은 잔뜩 느끼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아랫입술을 음란하게 짓씹었다.
애초에 팬티 따위는 안 입고 온 게 분명했다.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공개된 장소였고 이른 시간이었다.
사람이 오는 것 같으면 핫걸은 스커트를 내려 허벅지를 가렸다.
하지만 사람이 사라지면 다시 스커트를 끌어 올려 허벅지를 드러냈다.
허벅지 뿐만 아니라 수북한 음모와 그아래의 은밀한 곳까지도.
나는 당장 핫 걸을 쓰러뜨리고 그곳을 핥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받아온 음식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핫 걸에게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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