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83화 (8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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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중령의 자기 위로

게다가 지금 하는 번역은, 아오오, 정말 나랑 사고방식 자체가 안 맞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는 거라 재미도 없고 열만 받아서 그냥 대충 후다다닥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수영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왠지 수영이 나를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런 목적을 위해서는.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의 몸에 기대감을 가지고 만나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은 예감.

수영은 나를 바라보았다.

“전에 말했던 오빠가 사귀고 싶다는데. 내일 그러자고 대답하려고요.”

“그래? 잘 됐네.”

나는 수영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근데 왜 이렇게 얼굴이 어두워?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그냥 사귀기로 하는 거야?”

“내 동기 중에 이제 애인 없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이러다가 영영 안 팔릴까봐 걱정도 되고. 조금이라도 어릴 때 사람을 만나야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수영은 자기가 가진 무기가 '어린 나이'밖에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수영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내 인생도 아닌데 이래라 저래라 조언을 해 주기가 어려웠다.

내가 책임져 줄 것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고 알려주려고 온 거예요.”

수영이말했다.

“초야권 같은 건가?”

나도 말을 한 직후부터 멍청한 농담이었다고 생각했다.

수영도 웃지않았다.

수영은 나를 원망했다.

자기를 실컷 길들여 놓고, 한 군데도 남김없이 자신의 모든 곳에 스며들어 버려놓고, 그러면서도 절대로 자기를 진지하게는 받아주지는 않겠다는 거냐면서 나한테 화를 냈다.

자기는 안 되는 거냐고, 정말로 안 되는 거냐고 했다.

아마도.

그게 내 대답이었는데, 수영은 더 나올 얘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계속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하고 만난 거잖아. 깊은 관계에는 관심없어. 네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니까 괜히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칼로 찌르고, 몸에 들어간 칼을 돌려서 비틀고 있으면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네요.”

수영이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수영인데도 자꾸 내가 미안해지는 매직.

“말싸움은 안 하고 싶은데.”

수영은 더 화를 내려고 하다가 갑자기 무기력해진 표정을 지었다.

“오빠. 오빠는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고. 오빠가 오빠를 너무 학대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조금은 더, 사람들한테 마음을 넓게 열면 좋겠고 다른 사람이 오빠한테 다가갈 기회도 줘 봐요. 이상한 사람이네요, 오빠는. 미워 죽겠는데도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이더 크네요.”

“얼마 못 가서 헤어지면 또 놀러와.”

2구째 헛스윙.

수영이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움찔한 채 시선을 피했다.

수영이 생각보다 일찍 돌아가서 나는 오랜만에 여유를 가지고 사이트에 접속했다.

시간이 촉박하고 정신이 사나울 때 사이트에 접속하면 괜히 이상한 파일을 충동적으로 다운받고 화장지 고갈 사태를 맞게 된다는 것을 지난 번의 처절한 경험으로 깨달았다.

다운받은 것들이 어째 죄다 폭탄이어서 영상을 보면서 하품을 한 적도 있었고, 도저히 볼품이 없는 몸을 보는 게 서로 민망해서 여자의 헤어 스타일이나 악세사리만 보다가 파일을 삭제한 적도 있었다.

이놈의 사이트가 이제 캡쳐 사진에 뽀샵질까지 하는 건가.

캡쳐 사진 속 인물과 영상 속 인물이 동일인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과한 보정이 이루어진 사진이 턱턱 걸리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사이트가 뭔가 나한테 심사가 뒤틀려있는 것 같다는 괴상한 생각도 들고.

어쨌거나 나는 남아있는 화장지 네 개를 정말로 알차게 써야 했기 때문에 새로 올라온 영상을 신중하게 살폈다.

캡쳐 사진들을 쭈우우욱 훑어보다가 나는 군복을 입은 여자를 발견하고 즉시 호기심이 발동해서 클릭질을 했다.

[열받은 대대장. 폭풍자위. 저 딜도가 처음부터 저렇게 가는 것이 아니었다!]

웬 싸구려 삼류 카핀가 하면서도 대대장이라는 문구에서 눈이 떠나질 않았다.

'딜도가 처음부터 저렇게 가는 것이 아니었다면. 처음에는 굵었는데 대대장이 자기 보X를 쑤셔대서 저렇게 된 거라고?'

이 사이트가 이제 허위 과장 광고는 밥먹듯이 한다.

그래도 대대장 영상에 대한 호기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아서 나는 면밀한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

대대장이면 40세 전후 정도 될 텐데 이력이 색다르긴 하지만 내가 아주머니 몸을 봐야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결국 캡쳐 사진을 보기도 했다.

뜨악!

옆에서 대가리 박고 있는 사람, 잔뜩 얼어버린 채 눈만 말똥말똥 굴리고 있는 사람들 중에 한 아주머니께서 (대대장이라고 하니까 나이가 있을 거다 라고 예상을 해서 아주머니라고 한 거지 하관이 유난히 짧은 핵동안인데다 작은 얼굴과 다부진 몸이 좋은 비율을 이뤘고 일반인들이 흉내도 낼 수 없는 카리스마는 압도적이었다)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진이었다. 대대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남자였다. 혈기왕성해 보이는 남자들.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은 나가고 대대장이 혼자서 몸을 더듬는 사진이 있었다.

왜 위화감이 없는 거냐. 나이 차이가 엄청난 사람의 몸을 보고 있는 건데도 특수한 신분 때문인지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사진은 대대장이 딜도를 보고 있는 장면까지만 있었다.

이 사이트.

나날이 지능화되는 느낌이다.

이런 건 볼 수밖에 없잖아.

나는 당장 다운을 받았다.

화장지 두 개가 아니라 네 개, 40개가 필요하다고 해도 보고 싶었다.

없으면 구해오면 되지.

프리 존은 아직도 매번 성황인 모양인데.

영상을 다운받자마자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티슈를 앞에 가져다 두고 츄리닝을 벗고 드로즈를 무릎까지 내리고서 영상을 보기시작했다.

그러다가 30초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영상을 보면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하하하. 이번엔 아니겠지. 내가 저 분을 보게 될 일이 뭐가 있다고. 다시 군대에 끌려가길 하겠어, 뭘 어쩌겠어.’

그러면서도 계속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영상 속의 대대장은 아무리 많이 쳐 줘봐야 30대 후반 정도로나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무런 정보없이 이 사람이 몇 살처럼 보이냐고 물으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대답이 나올 것 같았다.

하관이 짧은 건 정말 대단한 축복인 듯. 괴상하게 짧으면 그건 또 괴상하지만.

게다가 코끝이 동글고 입술이 작고 도톰했다.

아. 그러고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영화배우 임수정이랑 비슷하다.

얼굴은 동안에 순둥순둥하니 귀엽게 생겼는데 거기에서 거친 카리스마가 강하게 뿜어져나오니 그 이질감은 대단했다.

영상은 상황보고 시간에 찍힌 것 같았다.

대대참모들은 대대장의 노성에 말을 못하고 있었다.

영상의 처음부터 대가리를 박고 있던 사람은 작전과장이었다.

“다시 작성해서 보고하는데 금일 16시까지 한다. 그때도 시정되지 않으면 전부 군장돌릴 테니까 제대로 해 와!”

유격 훈련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이제 죽었다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화면은 거기에서 바뀌었다.

그 다음은 대대장실이었다.

대대장실 안에 작은 휴식공간이 있었는데 대대장은 그곳의 간이 침대 위에서 하의를 전부 벗고 상의는 단추만 푼 채로 가슴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몸은 그냥 20대였다. 혹독한 자기 관리로 다져진 근육질의 탄력넘치는 쌔끈한 몸. 머슬 퀸하고는 또다른 매력이지만 머슬 퀸한테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얼굴과 몸을 분리해서 선택할 수 있게 한다면 당장 내 하렘 인벤토리에 넣는데 손색이 없을 정도다.

대대장실에서 영상이 시작되는 걸 보고 나는, 작전과에서 그 영상을 찍은 건 누구였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설마 대대장이 그렇게 화를 낼 상황에서 미리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카리스마 연기력을 폭발시킨 거?

정말로 그랬다면 사이코패스 수준이 아닌가?

작전과장을 대가리 박게 한 건 혹시 화면 구도를 생각한 미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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