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87화 (87/402)

0087 ----------------------------------------------

큐피드

“그런 것 같아요. 특히 하관이 짧아서 그런 것 같아요. 나이보다 어려보이죠? 대대장이면 마흔은 된 거 아니예요? 그런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잖아요. 코 끝이 둥글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대대장이면 아무리 적어도 마흔은 됐을 걸? 우리 은수보다는 나이가 많겠지? 그래도 요즘에는 연상 연하 커플도 많잖아."

그러다 은호 형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았다.

“너는 어디까지 본 거야?”

“…….”

“솔직히 말해봐.”

“그런 걸 왜 물어요? 민망하게.”

“야, 근데. 그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진 거면 우리 대대장. 위험할 수도 있는거 아냐? 그런 영상을 유출한 놈은 아작을 내놔야지.”

우리 대대장?

“생각해보니까 대대장이랑 우리 은수가 잘 되기만 하면 은수 진급은 따논 당상이잖아. 우리 은수도 아직까지 결혼도 안 했고.”

“따논 당상까지는 아니죠. 평가를 대대장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도움은 될 거 아냐. 자기랑 친한 사람들한테 압력을 넣을 수도 있을 거고. 잘만 되면 진수가 단단한 줄 하나를 잡는 건데. 정우야. 두 사람을 잘 엮어줄 방법이 없을까?"

"은수 형님은 대대장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요?"

"저 놈 마음이 어떤지 뭔 상관이야. 어차피 저 자식도 지금까지 결혼 못했으면 앞으로도 결혼하기 힘들 거고. 만나는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매일 자정 다 돼서 퇴근을 하는데 다른 여자 만날 시간은 있겠냐? 대대장이 여자인 게 어디야. 그랬으면 됐지."

"에에?"

"은수 퇴근 못하게 계속 일거리 주는 게 그런 수작인 건지도 모르겠다. 여자 만날 시간 없게 하려고.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지?"

"대대장이요?"

"응."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은데요?"

"아. 몰라. 한 번 추진해보자. 저 자식은 꼭 결혼시켜야 돼. 우리 어머니 돌아가실 때 나한테서 약속 받아내셨단 말이야. 은수 결혼은 나보고 잘 시키라고."

"그래서 그러겠다고 하셨어요?"

"응. 대답 안 하면 못 돌아가실 것 같아서."

"그래서 돌아가시라고 대답하셨어요?"

"돌아가시라고 그런 게 아니라 편히 눈 감으시라고 그런 거지. 이 자식은 말을 이상하게 하네. 헛소리는 이제 그만하고. 그래서. 방법이 있겠어, 없겠어?"

화장실에 들어갔던 은수 형은 들어간 김에 샤워까지 하고 나오려는지 물 소리가 들리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대대장이 2시 10분에서 20분 사이에 자위를 해요. 제가 하는 말이 영 안 믿기면 딜도를 어디다 넣어 놓는지 말씀드릴 수 있어요.”

“…어디다 놓는데?”

은호 형은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물었다.

“항상 대대장실 안에 있는 작은 방 침대 메트리스 아래에서 꺼내요.”

“…….”

“…….”

"그리고 그걸로 자위를 한다는 말이지? 우리 은수를 부르면서?"

"네."

"뭐라고 부르는데? 은수씨, 그래?"

"작전과장이라고 부르세요."

"불러서 무슨 말을 하는데?"

"꼭 아셔야 되겠어요?"

"왜? 뭐라고 하는데 그래?"

"딜도를 입에 막 쑤시면서,"

그때 우리 앞으로 그림자가 나타났다.

은수 형의 스마트폰을 가운데 두고 머리를 나란히 붙이고 소곤거리던 우리는 우리 앞에 나타나서 얼굴을 구기고 있는 은수 형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186센티의 키에 82킬로그램의 체격을 가지고(정보 제공-은호 형) 끊임없는 훈련으로 단련된 단단한 육체를 가진 사람이 우리 앞에 딱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저절로 오금이 저려왔다.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딜도? 딜도가 뭐? 대대장실 안에 작은 방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아? 형. 이 사람 누구야? 뭐하는 놈이냐고. 지금 우리 대대장님에 대해서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냐고. 어? 우리 대대장님. 여자지만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진짜 군인이고 부하들 존경받는 분이야. 근데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를 놈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 거야? 어?!”

나와 은호 형은 놀라서 서로 눈을 꿈벅거리면서 바라볼 뿐이었다.

둘이 잘 되면 진급은 문제 없겠다고 말하기는 했어도, 당사자 입장에서는 허구헌날 기합을 주고 야근을 시키고 업무 능력을 인정해주지도 않고 트집만 잡는 대대장에 대해서 좋은 마음을 갖고 있을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 그, 그게요….”

나는 뭐든 말을 해야 될 것 같았지만 뭐라고 말할지 몰라서 꾸물거리기만 했다.

“동영상이 돈대. 너희대대장이 찍힌 거. 거기에 너도 찍혔대. 대대장한테 기합받는 거. 거기에 그게 나온대. 딜도로 자위하는 게.”

은호 형이 즉석에서 브리핑을 했다.

“우, 우리…. 대대장님이?”

은수 형은 적잖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대…, 대대장님…이, 그….”

은수 형은 제대로 말을 하지도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조치를 취하려면 대대장한테 알려 줘야 되는 거 아니겠냐? 대대장이 직접 나서야 일이 쉽겠지. 자기 동영상이고 대대장이 피해자니까 영상 내려달라고 요청하기도 쉽고.”

“어디에서 봤는데, 그걸?”

내가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나왔다.

내가 뭐라고 말을 하더라도 그 사이트는 '웹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문구만 오리발처럼 내놓을 것이 뻔했다.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 안 나요. 근데 제가 그걸 봤다는 건 정말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물어보고 확인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은수 형은 설마 하면서도 작전과가 어떤 구조로 돼 있는지부터 대대장실 구조와 책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책상에 뭐가 어떻게 놓여있는지 대대참모들이 어떻게 생겼는지까지 물었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서 다 대답을 해 주고 대대장의 말투를 흉내내서, 작전과에서 대대장이 어떻게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는지도 말해 주었다.

은수 형은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정말로 그런 영상이 돌고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 대대장님을 뵈어야겠어.”

“그러지마시고요, 형.”

내가 은수 형을 말렸다.

“이렇게 하면 어떠시겠어요? 제가 잘 아는 변호사 선배가 있는데 그 일은 제가 저희 선배랑 처리를 할게요. 대대장님도, 그래도 여잔데 그런 동영상이 인터넷에 돈다는 걸 알게 되면 충격 받을 거고,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작전과장님한테서 그런 얘기 들으면 죽고 싶지 않겠어요?”

인터넷에 그런 영상이 돌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나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게 될 것 같아서 겁이 났다.

“…믿어도 되겠어? 확실히 처리해 줄 수 있는 거야?”

“네. 은호 형 동생분 일인데 당연히 책임지고 해 드려야죠.”

“그런 일은 내가 해도 되는데.”

은호 형이 말했다.

나는 은호 형이 그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답답했다.

그 영상은 검색도 안 되고 나만 볼 수 있는 것 같고 인터넷에 유포되지도 않았는데 은호 형이 무슨 수로 조치를 취하겠는가.

"정은수."

은호 형이 갑자기 은수 형을 불렀다.

"너. 대대장 좋아하냐?"

"어?"

"대대장. 좋아하냐고."

"존, 경하지."

"여자로 생각되지는 않고? 그런 매력은 없어?"

"왜애. 우리 대대장님이야 매력이 넘치는 분이지. 근데 나같은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어.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도 않고. 항상 지적만 당하는데."

은수 형의 말을 들으면서 은호 형과 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제대로 고백은 못하고 괜히 트집을 잡으면서 관심을 나타낸 거란 걸 은수 형은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혹시 대대장님이 신경 쓰이면요. 형이 직접 고백을 해도 되지 않을까요?”

은수 형에게 내가 말했다.

“뭐?”

“막상 형이 그런 말을 하면 자존심 때문에 부인할지모르니까 현장에 가서 현장에서 말을 하는 거예요. 대대장님은 자위할 때 작전과장님을 부르면서 하니까요. 그러니까 형이 당번병은 다른데 보내놓고 그 시간에 조용히 들어가서.”

“그만해라. 대대장님은 그럴 분이 아니시다. 비겁한 자들의 음해야. 우리 대대장님이 여자라고 그런 헛소문을 만든 거라고. 대대참모라면 그런 건 전부 다 알 수 있어. 대대참모가 그런 소설을 지어서 인터넷에 올린 모양이지!”

은수 형은 시뻘겋게 달궈진 얼굴로 화를 내며 말했다.

아... 새삼스럽게 큐피드가 불쌍해졌다. 너도 그 짓하는 거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