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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피드
“아무 일도 없었다, 작전과장. 강 일병은 내 몸에 손 대지못했어.”
대대장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은수의 말에 이지도가 그를 바라보았다.
뭘 안다는 건지,어떻게 안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은수는 잠시 이지도를 떼어놓고 천장과 벽을 수색했고 몰딩의 이음새 부분에 박혀있던 초소형 카메라를 찾아냈다.
“이걸로 생중계가 되고 있었고 정우가 이걸 봤다고 합니다. 정우가 알려줘서 늦지 않게 올 수가 있었습니다.”
은수는 사납게 선을 떼냈다.
이지도의 얼굴은 그때부터 사색이 되었다.
“그……. 그게…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건가…!”
은수는 이지도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은수가 이지도에게 다가가서 이지도의 어깨를감쌌다.
“정우가 영상 유포를 막아주기로 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작…전과장…. 혹시 작전과장도….”
은수도 그걸 봤는지 물어보려는 것 같았다.
불덩이가 따로 없을 정도로 이지도의 얼굴이 붉어졌다.
혼란스러움과 수치심, 그리고 두려움에 잠식된 이지도의 눈이 흔들렸다.
은수가 지도를 안았다.
“저를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제가 대대장님을 좋아해도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만 대대장님이 저를 좋게 봐 주신 걸 알게 된 후로는 저도 용기가 생겼습니다. 대대장님도 저를 포기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대대장님 좋아합니다.”
“……정 대위.”
은수가 이지도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이지도는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호 일병은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렸구나.”
“그렇습니다. 대대장님께서 강 일병에게 기회를 주시고 당번병으로 거두어 주셨는데도 강 일병은 결국 이렇게 대대장님을 배신한 겁니다."
이지도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대장님. 강 일병이 그 영상을 어딘가에 저장해 놓고 있다면 그걸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 그렇구나. 그게 발견되면. 곤란해지겠지.”
이지도는 다시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방법이 있을 겁니다. 미리 너무 낙심하지는 마십시요."
은수가 이지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은수의 손은 따뜻하고 굳셌다.
이지도는 자신의 손을 잡은 은수의 손을 바라보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여러 가지로. 정 대위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뻔했다. 고맙다. 정 대위."
"제가 더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무사하셔서요. 그럼 저는 강 일병을 찾으러 가 보겠습니다.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저하고 마주쳤을 때도 서두르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강 일병이 아마 그 영상을 가지고 있기는 할 겁니다. 그래서 그걸 믿고 느긋하게 구는 걸 겁니다. 잘 이용하면 그게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이 일은 우선 작전과장이 맡아줘라."
"예, 대대장님."
강민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영상을 꽤나 믿고 있었기에 은수가 강민호를 찾아낼 때까지 다른 데로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고 창고 옆에서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봤을 때는 은수도 질려버렸다.
친구를 때리다가 걸렸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긴장한 모습을 보여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작전과장님. 대대장님한테 또 옴팡 깨지셨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대장실 문을 박살내 버리신 겁니까? 얌전하신 줄만 알았는데 작전과장님도 쌓인 게 많았나봅니다. 그 정도 깡은 없는 분인줄 알았는데 다시봤습니다. 멋지십니다. 작전과장님.”
강민호가 아예 엄지까지 척 올려보이며 말했다.
“대대장님께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안다. 강일병.”
“설마요. 대대장님 원래 그 방에서 그런 식으로 놀아요. 대대장님이 원해서 해 준 거예요. 묶어 달라고 해서 묶어준 것 뿐이고요. 쭉 그러고 놀아왔어요. 거기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 둘만 알 거라고 그랬거든요. 저도 재미 좀 봤죠. 귀엽게 생겼잖아요.”
강민호가 킥킥거리면서 말했다.
은수는 소름이 끼쳤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미리 알지 못하고 들었다면 강민호가 하는 말을 다 믿었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강민호의 말을 듣는다면 그대로 믿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안 믿기죠? 믿기 어려우실 거예요. 근데 사실이예요. 제가 확인시켜 드릴 수도 있어요. 평소에 대대장님이 거기에서 뭘 하는지 모르시죠? 자위해요. 딜도를 가지고. 작전 과장님 부르면서요. 보X 쑤시면서. 그것도 얘기했어요? 대대장님이 작전 과장님한테? 설마. 그런 얘기까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강민호는 충격받은 은수의 얼굴을 제대로 구경하고 싶었는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대대장님이 하는 얘기. 전부 믿을 건 못 돼요. 얼마나 응큼한대요. 진짜 웃기는 사람이예요. 겉으로는 고상한 척 하고 지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강 일병.”
은수는 속으로 마른 침을 삼키면서도, 강민호가 정말 그 영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를 구슬렸다.
강민호는 음흉하게 웃더니 스마트폰을 꺼냈다.
대대장의 당번병이라서 특별히 소지가 허락된 물건이었는데 그걸 그런 식으로 사용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바였다.
강민호는 그때까지 여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기 스마트폰에, 자기 목숨을 살려줄 영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임정우의 스마트폰에서 영상파일이 삭제되는 순간, 그 영상의 근원이었던 것까지 같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강민호가 알 방법은 전혀 없었다.
"이, 이게 뭐야. 이게 왜 이래. 이거 뭐야!!"
강민호가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강민호의 주위로 사람들이 달려왔다.
"작전과장님!"
강민호에게 폭행의 전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지시를 기다리며 작전과장의 곁으로 와서 섰다.
폭주한 강민호는 스마트폰을 뒤지며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이게 어디로 갔냐고!!"
그러나 사라진 동영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고 나는 은수 형과 대대장이 사귀기로 했다는 얘기를 은호 형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은호 형은 내가 대대장의 영상 유포 문제를 잘 해결했는지 알고 싶어했고, 나는 잘 처리했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은수 형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나는 은수 형에게, 강민호 일병이 스마트폰이나 다른 저장장치에 영상을 숨겼을지 모르니 잘 찾아보라고 말했고 은수 형은 헌병대에서 강도 높은 수사가 이루어졌지만 발견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은수 형은, 영상이 발견되지 않는 것 때문에 강민호가 오히려 더 당황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강민호는 분명히 자기 스마트폰에 동영상이 있다고 했어. 대대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줄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야. 아무래도 정우 네가 말한 영상을 강민호가 갖고 있다가 유출한 게 분명한 것 같아. 강민호는 자기가 그 영상을 갖고 있는 한은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자기가 더 적극적으로 영상을 찾아내려고 했는데 찾아내지 못한 모양이야. 영상을 갖고 있었다는 게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그게 갑자기 왜 사라진 건지는 모르겠어. 다른 사람이 강민호 스마트폰을 보고 그걸 삭제한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그래요? 정말 희한하네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사이트에 있던 대대장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 영상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핫 걸과 머슬 퀸, 수영의 영상들을 찾아봤지만 그 영상들은 아직 그대로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내가 지운 영상은 원본까지도 다 사라지는 것 같다는 가설을 세울 수만 있었을 뿐 확신할 방법은 없었다.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은수 형은 언제 한 번 꼭 다시 놀러오라고 했다.
대대장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다.
대대장의 옆에서 머리를 박고 있었던 작전과장이 지금은 사진 속에서 대대장의 허리를 뒤에서 꼭 안은 채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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