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95화 (95/402)

0095 ----------------------------------------------

오니

연우는 자기 손을 잡아 일으켜주려는 삼촌의 손을 피해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연우. 뭐하는 거야!”

오재광의 손은 겨우 몇 센티 차이로 연우를 놓쳤다.

연우는 겁에 질린 나머지 다리가 풀려버렸고 화장실 문을 열기 직전에 한 번 주저앉을 뻔 했다.

삼촌의 손이 제 등을 휙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연우는 심장이 떨어져버릴 정도로 공포를 느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지만 오재광이 무서운 힘으로 문을 열었다.

연우는 문에 매달렸고 오재광이 손잡이를 제대로 잡으려고 잠시 힘을 뺀 그 순간에 문을 잡아당겨 안에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빨리 와 달라며 연우는 삼촌이 집에 와 있다고 말했다.

나는 놀랐지만 연우에게 왜 그 사람을 집에 들인 거냐고 따질 여유가 없었다.

주차장으로 달려가면서 나는 핫 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핫 걸은 뭘 준비하면 되느냐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으며 전화를 받았다.

내가 자기에게 전화를 건 이유가 데이트를 하자고 하려는 건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핫 걸을 실망시킨게 미안했지만 우선은 부탁해야 할 것이 있었다.

나는 핫 걸에게, 지명수배중인 오재광이 조카의 집에 무단침입해서 집기를 부수고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알려주었다.

연우가 화장실에 숨어서 전화를 했다는 얘기를 해 주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자 핫 걸은 나에게 그곳의 정확한 주소를 묻고 집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었다. 내가 비밀번호를 알려주자 핫 걸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은호 형도 그랬지만, 사람이 어떤 성적 취향을 가졌는지와 실제 생활에서 그 사람이 어떤지는 완전히 다른 경우가 빈번했다. 자기 일을 할 때의 핫 걸은 믿음직스러웠다.

내가 연우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집 앞에는 두 대의 검은 밴이 와 있었다.

내가 차에서 막 내렸을 때 핫 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한테 대개 고맙겠어요.”

핫 걸이 말했다.

무슨 말이냐고 하기도 전에 검은 밴이 내 앞을 스치며 지나갔다.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핫 걸의 얼굴이 잠깐 보였다.

하얀 웃음이 지어졌다가 곧 사라졌다.

“은혜는 확실히 갚는 사람이라는 거 아니까 이번에도 기대할게요. 실망시키지 마요.”

옆에 다른 사람들이 없는지, 핫 걸은 대담하게도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또 연락하겠다고 하고서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연우를 찾았다.

연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이연우. 안에 있어? 나야, 정우!”

“오…빠?”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끌리며 가까워졌다.

그리고 손잡이가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연우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나에게 매달렸다.

"오빠!"

연우는 펑펑 울었다.

진정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오재광 때문에 무서운 것도 있었겠지만 갑자기 사람들이 들어와서 삼촌을 때리고 제압하고 끌고 간 것 같다면서 연우는 거의 패닉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경찰이야. 수배중이었잖아. 내가 말해줬어."

나는 연우가 이해하기 쉽도록 대충 그렇게 설명했다.

연우는 나를 바라보았지만 원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날 오재광이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서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연우는 오재광에 대해서 제대로 알 기회도 없이 막연한 죄책감과 애증을 갖고 오랫동안 괴로워했을 것이다.

알고 나서도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런 감정을 완전히 떨쳐내기는 어려웠겠지만.

그 날 연우는 나에게 사과했다.

자기 삼촌 때문에 고통받았던 내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그리고 연우는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 말했다.

자기에게는 학교를 계속 다니는 게 의미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삼촌이 나와서 다시 자기를 찾게 될까봐 겁이 난다고도 했다.

연우는 취직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아버지나 정은호 아저씨의 회사에 소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우는 두 곳 중에 아버지의 회사를 더 마음에 들어했다.

그나마 인간구실을 하려면 그쪽이 자기 전공과 조금이라도 비슷해서 거기가 나을 것 같다고 했던 것이다.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오재광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법적으로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을 사회로 돌아오지 못했다.

나한테 혼자 생색을 다 냈지만 핫 걸도 오재광을 체포한 것으로-키샤가 독자적으로 체포권한까지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핫 걸이 합법적인 절차를 가장해서 나를 체포하고 감금해서 변태적인 성욕을 충족시키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건 뭐였을까- 핫 걸도 키샤에서 인정을 받게 된 것 같았다.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동안은 키샤 내에서 핫 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했던 핫 걸이, 나의 정보 제공 덕분에 처음으로 인간 구실을 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혼자서 흐뭇해 했다.

“이연우 회사 가면 이제 돈도 잘 벌 테고 인기도 많겠네. 남자친구는 금방 생기겠네.”

나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띄워보겠답시고 말했다.

“나한테 이제 관심 없으니까 알아서 떨어지라는 뜻이예요?”

연우가 말했다.

“아니. 절대로 그런 뜻일 리는 없지. 나는…. 나는 그냥. 내가 그런 성격이 못 돼서 말이야. 내가 비겁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사람한테 올인하지도 못하고 금방 감정이 식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나를 잡을 수 없다고요?”

“그런 거지.”

“언젠가 변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불확실한 사실에 청춘을 걸어 보려고? 그러지마.”

연우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규칙을 하나 정할까? 남자 친구가 생기면 문 앞에 표시를 하는 걸로 하자.”

“문을 떼버릴까요?”

“그것도 좋겠네.”

연우는 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 목에 팔을 감았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있었던 것 같다.

연우는 혼자 있는 게 무섭다고 했다.

그럴만도 했다.

나는 연우가 살던 집을 정리하고 새 집을 얻어주었다.

이제는 회사에 출근을 해야 했기에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얻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잠정적인 평화를 누렸다.

아무 걱정 없는 신혼부부처럼 사랑하면서.

연우는 오재광의 일을 생각보다 빨리 받아들였다.

어쩌면 머리로만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고 다른 모든 기관은 그 일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연우는 회사에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했고 나는 회사에 다녀봤던 경험으로 연우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연우에게 처음 집을 얻어주었던 그때처럼 다시 한 번 그런 생활이 시작됐다.

달라진 건, 연우가 이제 나를 완전히 믿게 됐다는 거였다.

나 자신조차 나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흔들릴 때 연우를 바라보면, 연우는 나를 안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주곤 했다.

그리고 또 달라진 것은.

우리 연우가 이제 제법 요리를 잘 하게 됐다는 것이다.

국이랑 찌개도, 나물 종류도, 볶음 종류도 잘 했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재료는 연우도 싫어하게 됐고 내가 좋아하는 재료를 사용한 요리 방법은 수 십 가지씩을 알았다.

“여자한테는 좋아하는 야채가 하나씩은 있대요.”

어느 날 저녁 준비를 하면서 연우가 말했다.

“그래? 네가 좋아하는 건 뭔데?”

“나는 모르겠어요. 싫어하는 건 확실히 생겼는데.”

“싫어하는 게 뭔데?”

연우는 기다릴 것도 없이 줄줄 읊어댔다.

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하게 되고, 내가 싫어하는 걸 같이 싫어하게 되는 게 혹시 사랑은 아닐까 하면서 나는 연우의 뒤로 다가갔다.

뒤에서 연우를 안은 채 연우의 목에 얼굴을 얹자 연우가 간지럽다면서 웃었다.

"그래? 또 뭘 좋아해? 혹시 말캉하고 축축하고 부드러운 것도 좋아해?"

말을 하고 나서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혀를 밀어 넣었다.

============================ 작품 후기 ============================

굿잠요. 아. 급졸.

쿠폰.추천.코멘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