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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섹?
“참나. 내가 어쩌다가 이런 것까지.”
“나한테 고마운 일 있잖아요! 나 아니었으면 이연우씨 큰일 날 뻔 했다는 거 몰라요?”
핫 걸은 고맙다는 말은 꼭 챙겨서 듣고 넘어가야 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정말로 정말로 고마운 일이었기에, 생각날 때마다 몇 번이라도 고맙다고 말해줄 의향이있었다.
“알았어요.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전화했어요. 우리 한 번 만나기는 해야 되잖아요.”
내가 말했다.
“그렇죠. 요즘 바빠요?”
“일본에 출장갈 일이 있어서요.”
“아. 맞다. 사흘 뒤죠?”
“……그걸 어떻게 압니까?”
“아. 음. 그래서 그. 하던 얘기 계속해 봐요.”
“내 뒤를 계속 캘 필요는 없잖아요.”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냥 쉽게 생각해요. 나는 임정우씨한테 관심이 많고 임정우씨는 바쁘고. 그러니까 임정우씨에 대해서 궁금한 걸 그냥 스스로 알아내는 것 뿐이예요. 잘 생각해 보면 그것도 나한테 고마워 해야 할 일인데. 귀찮게 하지 않잖아요.”
“그런 자리에 있다고 남의 사생활을 함부로 알아보면 안 되는 거잖아요.”
“네. 안되죠.”
“그런데 왜 그래요?”
“나는 임정우씨한테 관심이 많다니까요?”
저 여자를 누가 당하랴 하면서 나는 먼저 포기해 버렸다.
“그 얘기 계속해 달라니까요? 어. 임정우씨랑 나랑 나오는 드라마 시나리오처럼 말해줘요. 사람이 꽉꽉 밀린 지하철에서 임정우씨가 나를 더듬는 걸로. 임정우씨랑 나는 서로 모르는 사이고.”
“하! 진짜 미치겠네!”
“이건 호의로 해 달라는 게 아니라 내가 이연우씨 구해준 거에 대해서 보답할 기회를 주는 건데요? 나는 나중에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임정우씨한테서 값나가는 선물이나 돈을 받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이렇게 서로 좋아하는 걸로 해서 달래자고요.”
“그쪽만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에에에이. 괜히 그러시네.”
핫 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를 말라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요. 큼. 시작합니다. 그쪽은 부서 회식이 늦게 끝나서 새벽 세 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고 화장도 못 지우고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늦었다는 걸 알고 어제 입은 걸 그대로 다시 입으려다가 술 냄새가 쩔어 있어서 대충 다른 걸 골라요. 스타킹도 못 신고 팬티도 안 입어요. 그냥 플랫 슈즈에 발만 밀어 넣고 그때부터 계속 달려요. 짧은 스커트를 입었고요. 마을 버스가 정류장에 서 있는 걸 보고 저걸 놓치면 좆된다고 생각하면서 막 달려가죠. 다행히 마을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간당간당해요. 사람들이 다 타고 버스가 떠날 것 같죠. 그런데 마지막에 서 있던 사람이 일부러 천천히 움직여요. 버스에 오르지도 않고. 그쪽을 기다려주죠.”
“어머. 고마운 사람이네요.”
“얼굴도 잘 생겼어요.”
“구렛나루도 있어요?”
“어떻게 할까요? 있는 걸로 해요?”
“네. 네. 눈썹은 진하고 눈에는 쌍꺼풀이 없고 눈꼬리가 처져서, 웃으면 강아지처럼 귀엽다고 해 주세요. 그리고 콧날은 오똑하고 입술은 가늘고. 그래서 냉정하고 이지적으로 보이고 약간 킬러 삘이 나게.”
“네. 그렇게 생겼어요.”
“어떻게 생겼는지 임정우씨가 알려줘야죠.”
“다 알잖아요.”
“그래도 나레이터가 컨펌을 해 줘야죠.”
“하! 거참. 알았어요. 그 사람은 눈썹은 진하고 눈에는 쌍꺼풀이 없고 눈꼬리가 처져서 웃으면 강아지처럼 귀여워요. 그리고 콧날은 오똑하고 입술은 가늘고. 그래서 냉정하고 이지적으로 보이고 약간 킬러 삘이 나요.”
“하아아. 멋있다.”
핫 걸은 아빠 옆에 누워서 동화를 듣는 아이처럼 집중했다.
세상의 어떤 아빠도 아이한테 이런 야설 같은 얘기를 해 주지는 않겠지만.
“그쪽은 존나게 뛰어가죠. 팬티도 안 입고 스타킹도 안 신어서 뛰는 동안 거기가 계속 자극돼요. 허벅지 안쪽은 계속 부딪치고.”
“어머. 애액 나온다.”
“에?”
“지금 흐른다고요.”
“아, 진짜. 그런 건 얘기하지 마요.”
“넵!”
“그쪽은 어. 그래서 탔어요. 그 사람은 먼저 안으로 들어가요. 사람들은 화가 나서 그 사람을 노려봅니다. 다 지각할 위기에 몰린 거거든요. 그 남자랑 그쪽 때문에요.”
“어머. 그러게 일찍 일찍 좀 일어나지. 나는 회식하고 늦게 들어와서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핫 걸이 이야기속의 자신을 변호하며 말했다.
“그 사람들도 그래요. 회식하고 그 사람들은 새벽 네 시 반쯤에 들어왔어요. 그래도 그 사람들은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인간답게 다 출근 준비를 제대로 하고 버스에 타고 있었던 거죠."
"에에에이. 설마. 그냥 그 사람들은 칼퇴근하고 드라마보고 처 자다가 일어나서 나온 거라고 해 주세요."
"그럼 그럽시다. 어쨌든. 사람들이 불만스럽게 보는데도 그 남자는 신경도 안 씁니다.”
“내가 다가가서 고맙다고 해야 되지 않을까요?”
또 튀어나오는 핫 걸.
“아뇨. 그쪽은 예의라고는 쌈싸먹은 사람이라서 그딴 말은 죽어도 못 합니다.”
“어머. 아닌데.”
“그리고 지하철 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르르 내려요. 그 남자도 내리고요. 그쪽도 내리죠.”
“네.”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려갑니다. 지금부터는 진짜로 초치기거든요. 지하철을 놓치면 지각을 면하기 힘든 군상들이 마구 달려가요. 그쪽도 달려가고요. 정신없이 달려가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열차가 들어옵니다.”
“어머!!! 빨리 뛰어야죠.”
“네. 문이 닫히기 전에 탔어요. 타긴 탔는데 돌아서기도 힘들만큼 사람들이 많아요.”
“으으윽.”
“여기저기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으으윽. 으으으윽. 그런데도 다음 역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타요. 내리는 사람은 두 명?”
“으아악. 답답하겠다!”
“그쪽은 안으로 떠밀려 가버렸어요. 잡을 곳도 없고요. 발은 거의 떠 있는 것 같은 지경이 돼 버렸어요. 그런데 열차가 한 번 크게 흔들려요. 잡을 곳도 없지만 그렇다고 넘어질 리도 없죠. 사람들로 빽빽한 숲이 만들어진 것 같은 상황이라. 그쪽은 답답해서 팔이라도 올려보려고 하지만 팔을 올릴 수도 없어요. 그 정도로 밀리고 있거든요.”
“으악. 답답해. 폐쇄공포증 생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다리에 감촉이 있는 겁니다. 누군가 손으로 그쪽 다리를 스윽 쓰다듬는 겁니다.”
“어머.”
“움직임이 점점 대담해져요. 거리낄 것도 없고 주저하는 것도 없이 한 번에 그쪽 가운데 허벅지를 스윽 밀고 그대로 위로 올라와요. 그리고 거기가 이미 젖어있는 걸 알아채죠. 그쪽은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려고 하지만 고개가 돌아가는데는 한계가 있어요.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 그렇지만 고개를 최대한 돌렸을 때 그 남자가 입은 옷이 보이죠. 마을 버스를 타러 뛰어올 때 기다려 줬던 그 사람이예요.”
“어머! 키는 몇이예요?”
“몇으로 해요?”
“음. 백 칠십, 아니, 팔십 이?”
“네. 키는 182센티예요.”
“아니. 그냥 178.”
“네. 178입니다.”
“계속 해 보세요.”
“손이 안으로 들어와서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습니다. 그쪽은 흥분해요.”
“어머! 그래도 모르는 사람인데!”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일단. 어. 일단 나라고 하지는 말고 그냥 얘기 계속해 봐요.”
“네. 그 여자는 그쪽이 아닙니다. 그냥. 굉장히 예쁘고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자예요.”
“어머. 나네.”
“…….”
“알았어요. 계속 해 봐요.”
“갑자기 가슴으로 손이 들어와요. 여자는 깜짝 놀라죠. 다른 사람들이 볼 것 같고. 그런데 소리를 지를 거였으면 벌써 질렀어야 되는 거였는데 타이밍을 놓쳤죠. 그 남자는 여유를 부리면서 그쪽 가슴을 주물러요.
"나라고 하지 말라니까요?"
“아. 그렇지. 예쁘고 섹시하고 매력적인 여자지. 남자는, 처음에는 손을 안으로 가져가서 크게 손바닥을 벌려서 손바닥으로만 느끼다가 손가락으로 유두를 건듭니다. 아, 나도 서네.”
“그래서요?”
핫 걸은 이미 잠은 다 잔 듯이 쌩쌩한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