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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100화 (1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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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보스몹

“네. 계속 얌전하게 지냈으니까요.”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몸캠 영상 사이트 죽돌이짓을 안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거기에서의 등급도 올라가지 않았고 내 신체 능력이 기이할 정도로 높아졌다는 걸 확인할 기회도 없었다.

힘쓸 일이 있어야 그런 것도 알 텐데 차 놔두고 뛰어다닐 일도 없고 사람을 두들겨 패고 다닐 일도 없으니 내 신체능력의 변화를 알아차릴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운동 같은 거 정기적으로 하나?”

“어떤 거요?”

“휘트니스 센터 같은 덴 안 다녀?”

“쉰지 오래 됐어요. 바빴거든요.”

“이상하거나 의문이 드는 일이 생기면 바로 얘기해야 된다. 알았지?”

과장님이 나를 보고 말했다.

“네.”

"그냥 대충 대답만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게 있으면 바로 연락해. 저번처럼 일이 커진 다음에 연락하지 말고. 그때는 그 사람이 먼저 쉬쉬 해야 되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냥 조용히 넘어간 거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어."

"네."

나는 좀 더 진지해 보이는 얼굴로 대답했다.

“일본에 가 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야.”

“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이상한 일요?”

“아니. 이상한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서 말하는 건 아니야.”

“네.”

과장님은 나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팔끔치를 책상 위에 올리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임정우. 나는 요즘에도 임정우 기록 자주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임정우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었어. 그런데 살아난 거야. 사람들은 그게 내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나는 알아.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는 걸. 나는 그냥 임정우 몸에 일어난 일을 지켜본 것 뿐이야. 임정우가 죽어가는걸 보고 사람들이 섣부르게 죽음을 선고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벌어준 것 밖에는 한 게 없어. 나머지는 전부 다 임정우가 스스로 한 거야. 임정우 몸이.”

과장님이 말했다.

너무 난해했고, 정말로 과장님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도 신기해. 알고 싶고.”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죽지 않고 버틸 거라는 걸요. 뭘 믿고 기다리신 거예요? 만약에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으면 선생님이 곤란해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던데요.”

나는 인턴 형에게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물었다.

“보였어. 임정우가 다시건강해지는 모습이.”

과장님이 말했다.

“네?”

“나는 영적인 거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야.”

“뭘 어떻게 보신 건데요?”

“그러게. 모르겠어. 나는 그것도 임정우가 한 일은 아닐까 생각했어. 아버지한테도 여쭤봤지. 혹시 정우의 미래를 보신 적이 있었냐고. 아버지가 놀라시더라.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했고 아버지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하셨어.”

나는 은 과장님과 아버지가 내 미래를 봤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제 미래가 어떻게 보였다고 하세요,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향해서 걸어왔대. 그 모습이 아버지가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임정우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 줬다고 하셨어.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거든. 건강한 모습으로 웃고 있는 임정우를 봤고, 그래서 나도 포기할 수가 없었어. 나을 것 같았거든.”

“…….”

"웃기지? 나는 원래 그런 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닌데. 그때 내가 했던 행동들은 지금도 이해가 잘 안 돼. 하지만 그때 만약에 내가 포기해 버렸으면 어쨌으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

효과가 없는 것 같은 일을, 보이지 않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밀어붙여야 했던 과장님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왜 생긴 건지 모르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그때까지 쌓아왔던 모든 명성을 걸었던 과장님에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과장님이 그때 나를 책임져 주기로 하지 않았다면 나는 죽었을 거라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약 먼저 받아 와. 문 닫기 전에."

나는 약을 받고 인사를 하러 다시 과장님을 찾았다.

“혹시 어머니가 연락 안 하니?”

은 과장님이 물었다.

“아뇨. 왜요?”

“…나를 찾아서 병원에 몇 번 왔어.”

은 과장님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엄…마가요?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아버지한테는 얘기 하셨어요?”

은 과장님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래서요? 혹시 돈 달라고 해요?”

“그랬는데 돈은 안 줬어.”

나는 과장님이 하는 말을 듣고 놀랐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뻔뻔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자존심이라는 것도 없는 건가.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어요?”

“병원에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래도 내키면 언제든지 또 다시 올 수 있는 거잖아요.”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겠더라. 아버지한테는 말하지 마. 임정우. 네가 아버지한테 말하면 다시는 이런 문제 너한테 상의 안 할 테니까.”

“제가 해결할게요.”

“어쩌려고.”

“신고해야죠.”

“엄만데 정말 그렇게까지 하려고? 후회하게 되지 않겠어?”

과장님이 말했다.

과장님이 걱정한 건 그거였던 모양이다.

정말로 그렇게까지 해 버리면 내가 힘들어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겨우 행복해지려고 하는 은 과장님과 아버지의 평안을 엄마가 다시 어지럽히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내가 지나치게 흥분한다고 생각했는지 내 어깨를 쓰다듬어주고 손등을 톡톡 두드려주면서 과장님이 말했다. 덕분에 나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평정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은 과장님은 나에게 일본 출장도 잘 다녀오고 약도 잘 챙겨먹으라고 당부를 하고 나를 놔주었다.

“회진 준비 해야 되니까 이제 가봐.”

“네. 올 때 선물 사 올 게요. 엄망.”

“뭐?!!”

은 과장님의 얼굴이 철쭉처럼 붉어졌다.

나는 언젠가는 꼭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던 호칭을 하고 가슴이 쿵쾅거려서 도망치듯이 후다다닥 나왔다.

차마 엄마라고 제대로 말은 못 하겠어서 엄망, 이라고 말해버렸더니 더 오글거렸다.

“넘어지지 말고 조심해서 가!”

뒤에서 은 과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엥.”

과장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갈 때였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한 사람이 내렸다.

그냥 잊어버리고 싶은데도 절대로 잊히지도 않는 얼굴.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렇게 될 수도 없는 사람.

엄마였다.

엄마는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걸어왔다.

나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은 과장님을 괴롭혀 줄 생각으로 희열에 들 뜬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멈칫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를 본 것은 아니었는데 혼자서만 지진을 감지한 사람처럼,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이 정신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는 듯했고 다시 걸음을 옮기다가 나를 발견했다.

엄마는 만만한 사냥감을 발견한 육식 동물처럼 천천히 나를 향해서 다가왔다.

“좋아보인다. 임정우?”

엄마가 말했다.

“엄마도. 근데 여긴 왜 왔어?”

“엄마도? 엄마도라고? 내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면서. 그러면서 그런 소릴 해? 내가 좋아보인다고?”

엄마는 엄마 옆에 있는 사람을 쪽팔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알았어. 미안. 정정할게. 엄마는 썩어 보이네.”

“뭐?”

“그만하고 가자고. 엄마가 뭘 하든 상관 안 하겠는데 여기에서 이러지는 마. 쪽팔려.”

“뭐라고?!!”

엄마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 엄마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잠깐동안이기는 했지만 호흡 곤란이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 아들. 귀엽게 노네.”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얼굴에 점점 더 큰 웃음이 피어 올랐다.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러는 건지알 수가 없었고 마음은 점점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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