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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보스몹
“정우야. 너는 참 희한한 게 말이야. 네 아빠가 네 친 아빠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서 너는 왜 한 번도 네 친 아빠가 누군지 궁금해 하지 않았니?”
엄마가 물었다.
“그런 거 상관없으니까. 나한테 전혀 안 중요하니까.”
“그래?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네 친 아빠가 누군지 알아볼 생각을 했으면 네 사촌이랑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뭐라고?”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촌?”
엄마가 웃었다.
“너. 연우랑 잤니?”
“연……!”
“어머. 얘. 이미 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혹시 걔가 임신했다고 하면 애는 확실히 지워라. 근친끼리 애 낳으면 애가 잘못돼서 나올 확률이 높다잖아.”
엄마는 즐거운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내 손자라지만. 으응. 애가 정상이 아니면 싫을 것 같다."
나는 그 자리에서 구역질을 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가 바닥에 주저 앉았다.
혼자서 비틀거리면서,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몸부림을 치더니 비명을 질렀다.
충격적인 얘기를 듣고 고통받는 건 난데 엄마가 갑자기 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동정심도, 조금도 들지 않았다. 엄마가 갑자기 미쳐버리거나 환상이라도 보는 거라면, 아주 무서운 악몽같은 환상에 갇혀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진지하게 나는 그것을 원하고 바랐다. 악몽같은 환상 속에 엄마를 가둬버리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지옥이 엄마의 눈 앞에는 끝없이 펼쳐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비명이 날카롭게 울렸다.
정말 짧은 시간 동안이었다.
하지만 그 소리에 과장님이 달려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과장님이 나에게 달려와서 나를 부축했다.
“임정우. 왜 이래. 무슨 일이니. 어디 아픈 거니? 몸이 안 좋아?”
과장님은 내 얼굴을 보면서 물었다.
나는 내 얼굴에 토사물이 묻은 게 신경 쓰였다.
그래서 고개를돌리려고 했지만 과장님은 그런 건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으로 토사물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가운 소매로 얼굴을 전부 닦아 주고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선생님….”
과장님은, 지금 그곳에 있는 두 사람 중 엄마의 상태가 더 이상하다는 걸 알았을 거면서도 눈 앞에 나만 보이는 것처럼 나에게만 신경을 썼다.
“말해봐. 정우야.”
그러다가 과장님은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을 둘러보고 그 무리에 서 있는 의사들에게 사람들을 흩으라고 지시했다.
복도에는 나와 과장님, 그리고 엄마만 남아 있었다.
“연우가…. 제 사촌이래요. 오재광이 제 아빠였나봐요.”
나는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말했다.
그때는 엄마도 두리번거리며 비명지르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나를 안아주는 과장님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과장님은 그대로 나를 놔두고 일어섰다.
그리고 엄마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엄마의 얼굴을 때렸다. 한 두 대를 때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밀어붙이면서 엄마가 벽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해서 때렸다.
그만하시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극도의 흥분상태가 아니라고 했더라도 아마 나는 과장님을 말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과장님은 엄마보다 키가 거의 십 센티 가까이 컸다.
엄마는 과장님에게 주먹을 맞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과장님은 그 자리에서 병원 경비 요원을 부르고 경찰에 신고했다.
엄마는 그제야 상황을 판단하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경비 요원들은 과장님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 엄마를 단단히 붙잡아두었다.
엄마가 출동한 경찰에게 연행되는 걸 보면서 나는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과장님이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선생님….”
나는 연우의 일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연우를 안았던 모든 순간들을 전부 부정하고 싶었다.
그 기억을 지우지 않고는, 앞으로는 살아갈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임정우. 내 눈 똑바로 봐. 너희 엄마가 한 말. 거짓말이야. 내가 증명할 수 있어. 너랑 이연우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연우가 아버지 회사에 입사하면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았어. 나도 전부터 혹시나 하는생각이 있긴 했었어. 오재광씨가 네 친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 검사를 해봤어. 두 사람 사이에 혈연 관계가 없는지. 혹시라도 그런 문제가 있으면 너한테 미리 경고하고 싶었으니까. 감정이 생기기 전에 알아두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너하고 이연우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너희는 혈연 관계가 아니야.”
과장님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럼, 엄마가. 엄마가 왜요?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한 거예요?"
"검사를 해 봐야겠지만 신경정신과쪽으로 큰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을 괴롭히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상대가 남편이 됐건 아들이 됐건."
너무 갑자기 긴장이 풀어져 버려서였는지.
나는 주변이 흔들리면서 바닥이 요동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내가 쓰러져있던 시간은 채 20분이 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어느새 아버지가 옆에 와 있었다.
과장님도 옆에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엄마가 나를 괴롭히려고 나한테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알고 엄마에게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았고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때려부술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깨어난 걸 알고 나에게 다가왔다.
아버지는 충혈된 눈을 하고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미안하다. 너한테 이런 일을 겪게 해서….”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나는 과장님에게, 내가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오늘밤만이라도 여기에 있어. 정우야.”
과장님이 말했다.
“집으로 가고 싶어요.”
“…….”
“선생님. 그건 정말 확실한 거죠? 저랑 연우요.”
과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혈액검사는 혈연관계가 있다는 걸 확인하는 목적이 아니라 혈연관계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수단인데 혈액검사 결과만으로도 두 사람이 혈연 관계가 없다는 건 간단하게 증명이 돼. 너하고 연우가 사촌이었다면 나는 너한테 두 사람이 피임을 얼마나 확실히해 왔는지 물었을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님이라면 분명히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깐 정우랑 둘이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과장님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물었다.
아버지는 놀란 얼굴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주었다.
과장님은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지금 많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말해줘야 될 것 같다. 정우야. 아까 너랑 네 엄마가 복도에 서 있었을 때 네 엄마가 서 있던 복도가 수렁같이 바닥으로 꺼지는 것처럼 보였어. 그러다가 소용돌이가 생겨난 강으로 바뀌었고.”
과장님이 말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내 앞에서 비틀거리던 엄마를 봤었기에 나는 과장님을 바라보았다.
"내 생각에는 그게 네 엄마한테도 보였던 것 같다. 네 엄마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람처럼 거기에서 빠져나오려는 듯이 허우적거리는 모습이었고 비명을 질렀어."
“어떻게 된 거예요? 왜 그러는 거예요, 선생님?”
“아직은 모르겠어. 그런 환경 속에 있다고 네가 네 엄마한테 강력한 암시를 준 건지 그 생각도 해 봤지만 아직 확실한 건 없어. 그랬다면 나한테는 그게 안 보였을 거야.”
“머리가 아파요. 선생님. 집에 가고 싶어요. 여기서는 제대로 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집에 같이 가도 될까? 네가 쉬는 동안 같이 있어줄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과장님과 같이 갈 수는 없었다.
사실은 집으로 갈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릴 방법이 필요했다.
============================ 작품 후기 ============================
이번 에피소드는 하나의 결말이 되겠습니다~
100화까지 쿠폰, 추천, 코멘트로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0화까지도 같이 달려주시죠.ㅎㅎ
주적이 엄마라, 복수의 수위 때문에 고민이 많네요.
그래도 엄만데..라는 말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대충 용서한다는 건 주인공 성미상 아닌 것 같고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