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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102화 (1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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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보스몹

내 영혼을 지옥 속에 가두고 싶다는 그 하나의 의지만을 가지고 나한테 끔찍한 거짓말을 한 엄마 때문에, 이대로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과장님은 결국 나를 보내주었다.

아버지가 나를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아버지는 끝내 나를 안고 울었다.

"미안하다. 정우야. 나 때문이야."

"아냐. 아빠. 나는 어차피 엄마한테서 태어날 거였잖아. 아빠가 아니었으면 나는 더 끔찍했을 거야. 아빠가 미안해 할 일은 조금도 없어. 아빠한테 고마워. 아빠가 아니었으면 나는 여기까지 오기 전에 벌써 엉멍이 됐을 거야."

"정우야."

“아빠. 이제 괜찮아. 이제야말로 다 끝난 거야.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우리는 아마 계속 약하게 굴면서 엄마를 동정했을 거야. 차라리 잘 된 거야.”

내 말에 아버지도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집밖으로 나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라. 꼭 그렇게 해야 된다, 정우야.”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차가 사라지는 걸 보고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지금 이 상태로는 사고를 칠 것 같았다. 나와 상관없는 아무에게라도 시비를 걸고 때리고 싶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고 이대로 가만 있다가는 미칠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제자리를 맴돌면서 주먹을 물어뜯었다.

그러던 내 걸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내가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나와의 사이에 청산할 빚이 남아있는 사람.

쓸데없이 나한테 관심을 가진 사람.

나는 핫 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러다 정 들겠는데요? 벌써 또 보고 싶어진 거예요?”

핫 걸이 웃으면서 말했다.

“공단 이사장. 주소 좀 알려줬으면 해서요.”

“…왜요?”

“그쪽은 알고 있을 것 같아서요.”

“물론 알지만. 왜 묻냐는 거예요.”

“왜 묻는지도 알 것 같은데요.”

“임정우씨!”

핫 걸은 내가 여느 때와 다르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장난스럽던 말투가 바뀌었고 내가 왜 그러는 건지 궁금해했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려고 했던 건지 알려주세요. 살해 음모를 꾸몄어요?”

내가 물었다.

“왜요? 그렇다고 하면 죽이려고요?”

“내가 죽이면 혹시 그쪽이 복잡해집니까?”

“네. 굉장히요.”

"그 조직에서 그동안 그 사람을 조사했다는 게 드러날 수도 있고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진짜 나 하나만 좆되는 걸로 끝나지 않는 거예요. 건드리지 말고 놔둬요. 건드리고 싶더라도 나중에 해요. 우리가 완전히 손 떼고 흔적 다 지운 다음에요."

핫 걸이 말했다. 타협의 여지는 없는 모양이었다.

핫 걸이 그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고집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나를 생각하고 말을 해 준 거였는데 나 때문에 핫 걸이 곤란해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럼 반신불수는요? 반신불수 만들어 버리는 건 괜찮아요?”

내가 물었다.

“…….”

핫 걸은 잠시 말이 없었다.

내 말을 무시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핫 걸은 잠시 후에 말했다.

“꼭 그래야 한다면. 각 신체 기능의 30퍼센트까지 훼손하는 건 묵인할게요.”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오히려 내가 정신이 들어버렸다.

그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각 신체 기능의 30퍼센트 훼손이라니.

웬 보험 약관집같은 소리를 듣고 나니 현실감이 천천히 돌아왔다.

"그 선은 꼭 지켜야 돼요."

핫 걸이 말했다.

"지금부터 나한테 사람 붙일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래야 되나요? 나는 임정우씨가 내 말을 들어줄 거라고 믿고 싶은데요."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나는 내가 사람 잘 본다고 자랑하고 다닌단 말이예요. 그리고 나는 임정우씨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봤고요."

"잘 본 거예요."

핫 걸은 잠시 말이 없다가 전화를 끊더니 나에게 이사장의 주소를 보내 주었다.

나는 차를 가지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전화번호도 이미 내 손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한참만에 전화를 받으면서 이사장은 불만족스러운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여보세요.”

그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이 틀림 없었다.

누가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받지 않을 수도 없는, 어떤 순간에든 받아야 하는 전화만 오게 한 전화기가 울린 것이다.

“나와.”

그의 집 앞에서, 방에 켜진 불을 보면서 내가 말했다.

“여보세요?”

누구에게서도 그런 식의 말투는 들어보지 못했는지, 이사장은 내 말을 듣고 잘못 걸린 전화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전화를 잘못 건 것 같습니다만."

이사장이 말했다.

“네 식구들 있는 데로 내가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으면 나와.”

커튼이 들춰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차 앞에서 손을 들었다.

이사장이 내 얼굴을 알아봤는지 어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사장은 전화를 끊었지만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나는 이사장의 집으로 들어갈 방법을 궁리했다.

나는 육중한 대문을 향해 다가갔다.

문이 열릴 리가 없을 텐데도 나는 문 손잡이를 돌렸다.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성적으로 생각할 힘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문 손잡이를 한 방향으로 돌렸다.

원래 돌아가지 않을 게 분명했을 테지만 그 날은 일이 그런 식으로 되지 않았다.

문 손잡이는 끝까지 저항하려고 하다가 결국 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어이없이 뜯겨졌다.

내가 발로 문을 찼을 때 문은 그대로 찢어지면서 벌어졌다.

육중한 대문이 얇은 셀로판지처럼 찢어지는 것을 보면서 나조차도 놀랐다.

요란한 소리에 이사장이 뛰어 나왔다.

그리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란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누군지 알지?”

누가 됐든, 아무나 걸리라는 생각 밖에는 없었다.

이사장이 달려나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죽을래?”

“죄송합니다.”

“그럼 뭘 어쩔 건데.”

“원하시는 건 뭐든 하겠습니다.”

"내가 누군지 아냐고."

“…예.”

"그럼 이제 내가 널 어떻게 할 건지도 대충은 상상이 되겠네?"

"잘못했습니다!"

이사장의 눈은 계속해서 대문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해 놓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내일은 은 과장님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검사를 받든지, 아니면 오늘 받았던 검사 결과에 대해서 얘기를 듣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수영 강사를 공격했을 때보다 내 안에서는 힘이 더 넘쳐나고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뭐든 들고 뭐든 구겨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너한테 뭘 원해야 되는데.”

나는 내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이사장에게 말했다.

“말씀만 해 주시면….”

그 순간 사업자 선정이니 뭐니 하던 얘기가 생각났다.

“힘든 걸 시켜줘야 마음에 부담이 사라지겠지?”

“예? 아. …예.”

“사업자는 결정됐어?”

“예. 거의. 이제 발표만 남아있는 단곕니다.”

“뒤집을 수는 있는 거지?”

“하지만 그럴 명분이 없어서…. 만약에 그렇게 하면 사업자로 예정된 컨소시엄에서 소송을 할 겁니다.”

“명분이 없긴. 당신이 양심선언하면 되지 않겠어? 도덕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로비를 받아서 사업자로 선정한 거라고 말을 하라고. 없는 얘기도 아닐 텐데.”

이사장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건…….”

“시체가 되더라도 이사장 직은 못 내놓겠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자린가?”

내가 웃었다.

“아직 현실감이 안 들지? 네가 나한테 죽을 수도 있을 거라는 거.”

나는 이사장의 다리를 걷어차고 발목을 붙잡아 발을 계단 위쪽에 올려놓고 그대로 다리를 밟아버리는 시늉을 했고 이사장은 비명을 질렀다. 집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는지 그런 소리를 듣고도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컨소시엄을 구성한 업체 검증에 하자가 있었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사업자 선정을 연기해야 하게 됐다고 하고.”

내가 말했다.

“얼마나…말씀입니까?”

이사장의 얼굴에서 땀이 흘러서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게. 그런 업체들을 차리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나는 이사장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뭘 해 볼까 했는데 그걸 하면 되겠네. 당신. 나한테 엄청 협조할 거잖아. 나한테 관심 많은 것 같던데. 내 인생의 동반자가 돼 봐. 그럼 내 일은 순풍에 돛 단 듯이 순항하겠네.”

“…예.”

나는 이사장의 얼굴을 두어 번 톡, 톡 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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