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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보스몹
“다음에 나를 볼 때는 부러지는 게 다리가 아니라 허리가 될 거야. 그 다음에는 목이 될 거고. 이번에 사업자로 선정하려고 했던 업체가 부적격하다는 발표는 내일쯤 나야 되겠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실망시키지 마.”
“예.”
이사장은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며 말했다.
나는 어기적거리면서 그곳을 떠났다.
나는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몰랐지만 내가 멈춘 곳은 연우의 집 앞이었다.
내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연우가 나왔다.
내 차가 들어오는 것을 봤던 모양이다.
연우가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아니.”
태울 것을 찾아 휘몰아치던 정염이, 연우를 보는 그 순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냥. 나. 좀. 지친 것 같아서.”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아입을 옷 갖다 줄 테니까 씻어요."
"응?"
나는 그제야 내 옷이 엉망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계속 이러고 다녔구나. 얼굴에도 묻었어?"
나는 병원에서 구토를 했던 걸 기억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내가 선뜻 말을 하지 못하자 연우는 말 안 해도 된다고 말하면서 물을 받아주겠다고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가자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연우가 욕실에 들어와 욕조에 걸터 앉아 손으로 물을 담아 내 몸에 물을 뿌려 주었다.
나는 연우의 손을 잡아 손바닥에 입을 맞춘 채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엄마가 병원에 왔었어."
연우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본 출장 가기 전에 약을 충분히 받아놔야 될 것 같아서 병원에 갔었는데. 거기에서 엄마를 봤어."
엄마가 했던 말을 연우에게 해도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곧, 내가 병원에서 겪고 들은 전부를 연우에게 털어 놓았다.
연우도 엄마가 했다는 말을 듣고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놀랐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과장님의 얘기를 전해듣고는 몇 번이나 나에게 그게 정말이냐고 다시 확인을 했다.
나는 연우를 달래 주었다.
"우리는 혈연이 아니래. 그건 확실하다고 했어."
연우는 여전히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욕조에서 나가 옷을 갈아입었고 연우는 나를 소파로 데리고 가서 자기 허벅지를 베고 눕게 해 주었다.
“죽이고 싶었어. 죽이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는 거고. 널 보니까 살겠다. 내가 다 타들어가버리는 줄 알았는데.”
나는 일어나 앉아서 연우를 안고 연우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연우의 체취가 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이제 됐다고, 이제 마음이 가라앉았다고, 고맙다고 말하며 일어섰다.
엄마에게서 끔찍한 말을 들은 그 날, 나는 연우를 가질 수가 없었다.
은 과장님의 확언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내가 내 사촌을 짓밟은 것이 아닌가 하는 소름끼치는 금기와 저주가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리란 걸 알고 그런 말을 해 버린 어머니라는 여자를 나는 절대로 용서하게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연우를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 그런 짓을 한 엄마를, 이제는 이해해볼 노력도 포기할 생각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은 연우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연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면서도 입술을 핥을 수는 없었다. 입 안에 혀를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나는 너 포기 안 해. 연우야.”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의 귀와 목덜미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연우를 내 손에 새겨넣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나는 밖으로 나왔다.
연우가 나와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곳을 그렇게 서둘러 나온 것은, 내 안에서 다시 분노가 폭주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그대로 있다가는 연우를 거칠게 소유하게 될 것 같았다. 그건 결국 연우와 나 모두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길 것 같았다.
연우를 그렇게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연우의 잘못이 아닌 일로 연우를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친 듯이 차를 몰다가 나는 즉흥적으로 호텔로 향했다.
그 순간의 나는 포식자였다.
연우가 아닌 다른 사냥감을 찾아나선 포식자.
객실로 올라가 나는 은호 형이 알려준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OO호텔 804호. 열려있음. 여자라면 다른 조건은 보지 않음.]
그날 처음으로 만남글을 직접 올렸다.
쪽지 같은 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응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여자들은 직접 그곳으로 찾아왔다.
나는 먼저 샤워를 하고 제왕처럼 소파에 앉아있었다.
알몸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노크 소리가 들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대단한 커뮤니티의 일원답게 여자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샤워는 됐지, 뭐. 꼬냑?”
내가 말했다.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떻게 생겼더라도 상관없었다.
지금 내가 여자들에게서 구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정액 받이가 되어줄 몸이 전부였으니까.
“어머, 웬 꼬냑? 온전한 정신으로 즐기고 싶은데요?”
고급스런 옷과 악세사리로 치장한 여자가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원하는대로.”
술을 마시면서 오늘은 쉽게 취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첫 잔을 마실 때부터 눈 앞이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뭘 그렇게 급하게 마셔요? 근데 사이트에 올린 그 글 내려야 되는 거 아니예요?”
여자가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귀찮았다.
여자의 가는 팔목에서 에르메스 뱅글 팔찌가 미끄러지며 움직였다.
수갑 같다고 생각하는 나.
여자는 내가 악세사리의 가치를 알아봐줬다고 생각했는지 으쓱해진 모습이었다.
“이 사이트 이용해서 사람들 많이 만나 봤어요?”
자기가 알아서 스파클링 와인을 가져다 마시면서 여자가 물었다.
“한 번?”
“아아.”
“가입한지 얼마 안 됐어요. 그쪽은?”
“나도 두 번 밖에는.”
내숭 따위는 없는 모양이네.
아니면 내숭 떨고 줄여서 말한 게 두 번인 걸지도.
“여기 사람들은 다들 수준이 비슷해서 좋아요.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니까 구차하게 이것저것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아봐서 좋고요. 실컷 차려입고 나왔는데 이게 얼마짜린지 알아보지도 못하는 사람 앞에 앉아있으면 그것도 스트레스거든요.”
여자가 신나게 떠들어댔다. 전혀 관심 안 가는 얘기였다.
“나도 그게 얼마짜리 옷인지 모르는데요?”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죠. 팔찌를 눈여겨 보시길래 말해본 거예요.”
“아아.나는 전혀 다른 생각으로 본 건데.”
“무슨 생각 했는데요?”
여자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을 텐데.
“수갑으로 묶어놓고 하고 싶다는 생각.”
“어머. 에세머는 아니죠?”
여자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약간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그동안은 아니었지만 에세머로 각성하는 순간이 지금이 될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요?”
“나는 매저키즘은 관심 없어요.”
“왜요. 인생에 스릴이 가미되면 좋잖아요.”
내가 바라보며 말하자 여자가 머뭇거렸다.
“근데…. 정말로 글은 안 내릴 거예요? 사람들이 더 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에르메스가 다시 물었다.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겠죠. 내리고 싶지는 않은데? 여기 있는 동안은 열어놓죠, 뭐. 불편해요? 여자들이 많으면?”
“아니, 뭐….”
내가 자기 한 사람으로 만족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을 것이다.
나는 오늘.
누구로도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은호 형에게서 소개 받았던 의류 매장의 엠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오랜만에 연락주시네요.”
엠디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혹시 SM 용품도 취급합니까?”
“어…. 네. 소프트한 걸로요?”
“소프트한 거? 글쎄요. 이것 저것 사진 한 번 쭉 보내줘 보세요. 그리고 바로 초이스해서 연락할 거니까 바로 연락되도록 대기해 주시면 좋겠고요.”
“네. 지금 바로 골라서 사진 보내드리겠습니다.”
엠디는 여러 개의 사진을 보냈고 나는 그걸 일일이 보는 게 귀찮아져서 대충 알아서 퀵으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여자는 전전긍긍하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