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108화 (108/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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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보스몹

여자가 돌아갔을 때 나는 샤워를 하고 이른 체크 아웃을 준비했다.

그리고 엠디에게서 받은 물건의 처분을 두고 고심하다가 일단은 주차장까지 끌고 내려가기로 했다.

막상 들어보니 우스울 정도로 가벼워서 어이가 없었다.

나는 빠뜨린 물건이 없는지 다시 확인을 하고 호텔을 나섰다.

잠을 거의 못 잤지만 컨디션은 좋았다.

집에서 침대에 들어가 나는 교성이 괜찮았던 여자의 동영상을 찾았다.

동영상을 실행하려는데 팝업이 떴다.

‘파일을 업로드 하시겠습니까?’

전에는 본 적이 없던 희한한 문구.

‘어디로? 설마. 몸캠 영상 사이트로? 이 사이트가 이제는 영상을 팔라는 영업질까지 하는 건가?’

몸캠 영상 사이트에 들어가자 파일 등록 버튼이 새로 생겨나 있었다.

‘허어얼!!!’

이 사이트.

나한테 원하는 게 도대체 뭔가.

한동안 나는 그대로 얼어붙은 듯이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만 있었다.

***

나는 아침 일찍 은 과장님을 보러 갔다.

어제 이사장의 집을 찾아갔을 때 나타났던 일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갑자기 괴력이 생긴 것이 건강의 이상 징후는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됐던 것이다.

그러다가 과장님은 오늘 늦게 나오실 거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수 간호사님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은 과장님 보러 왔어요?”

수 간호사님이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스케쥴을 알아보고 왔어야 됐는데. 잘못했네요.”

“아니예요. 잠깐 기다려요. 곧 나오실 거예요.”

수 간호사님은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은 과장님에게 연락을 했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정우씨가 오면 연락해 달라고 말씀하시고 가셨거든요.”

“과장님이요? 왜요? 오겠다고 말씀드렸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제 일로 신경이 쓰이셨나보죠.”

수 간호사님이 나를 한 번 보더니 씽긋 웃고는 듬직한 걸음걸이로 사라져버렸다.

섣불리 나를 위로하려고 들었다면 기분이 굉장히 나빴을 텐데 내가 경계하기 전에 먼저 가버린 것이다.

그 점이 고마웠다.

나를 위로하려 드는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건 나에게 늘 고역처럼 느껴졌다.

수 간호사님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얼마쯤 멍하니 복도에 서 있다가 로비로 갔다.

거기에 조금 서 있었더니 과장님의 조그만 차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과장님의 키 때문에 더 작아 보이는 차였다.

차 안에서 과장님의 얼굴이 보였다.

한 곳에 10년동안 쌓인 먼지로 인형을 만들면 저런 모습이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장님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머리는 부스스하고 얼굴에 찬 물을 두어 번만 겨우 끼얹고 나온 것 같았다. 화장 따위는 아주 과감하게 포기를 한 것 같았고 그 와중에도 다크 서클은 잊지 않고 눈 밑에 진하게 매달고 왔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나 때문에 또 바로 나온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과장님이 주차 문제로 몇 분간 씨름을 할 거라는 걸 알고 차가 들어오는 쪽을 향해 달려갔다.

과장님은 주차를 잘 못한다.

나를 발견한 과장님의 얼굴이 그렇게 밝아보일 수가 없었다.

“어휴. 다행이다. 주차 좀 해 줘. 나는 왜 이렇게 후진이랑 주차가 어렵냐?”

과장님의 평소 모습에 비추어 굉장히 낯선 모습이었지만 한편으로 인간다워 보이기도 했다. 가끔가다 못 하는 게 있어야 다가갈 여지가 생기지. 그런 면에서 본받을만하다. 나는 못 하는 게 없...

나는 주차의 신이라는 칭호를 부여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세로 기록적으로 빠른 시간에 완벽하게 주차를 했다.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주차라서 흠하하하하 하고 칭찬을 받으려고 나왔더니 과장님은 이미 로비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칫, 보고 있지도 않았어.’

과장님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고 어처구니가 없게도 내 눈 앞에서 닫힘 버튼을 마구 눌러 대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너. 여기 있었구나!”

과장님이 말했다. 몸만 겨우 깨서 나온 것 같고 정신은 아직 꿈과 현실에 반씩 발을 걸치고 있는 모양이다.

“아, 과장님. 쫌. 정신 좀 차려요!”

“내 정신 좀 봐. 네가 위에서 기다린다고 생각하면서 서둘렀잖아.”

“주차 제가 해 드렸거든요?”

“알았어. 다른 생각을 너무 정신없이 했더니.”

과장님이 말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엘리베이터에 가까스로 타고 물었다.

“안 그래도 불러서 물어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는데. 근데 여긴 웬일이야?”

“아. 그게요.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 같으면 말하라고 하셨잖아요. 잠도 안 오고 해서 나와봤는데 안 계셔서 돌아가려던 참이었어요.”

“왜? 몸이 아파?”

과장님이 나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내 눈을 까고 뒤집어 볼 기세라서 나는 미리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아뇨. 그런 게 아니고요.”

나는 내가 공단 이사장을 찾아갔던 얘기를 해 주었다. 누구라는 얘기는 하지 않고, 화가 나서 화풀이할 상대를 찾아갔다고만 말했다.

과장님은 정면을 바라본 채 내 말을 들었다.

나는 이것저것 얘기를 하다가 호텔에서 가방을 들고 내려오던 게 생각나서, 무거운 물건을 드는데도 별로 힘이 들지 않았고 쉽고 가볍게 들었다는 얘기도 했다.

과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심각해 보였다.

"뭐. 별 일은 아닌 거죠? 강도는 그때 수영 강사를 때렸을 때보다 좀 더 세진 것 같기는했지만. 그냥. 그 연장선상인 거겠죠. 그렇죠?"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타들어가는데 과장님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생각에 잠겨 있더니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그동안 나는.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되지도 않는 일들을 겪어왔어. 그런데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내가 이상해 보일까봐. 내 말을 이해할지 모르겠다. 나는 어떤 대륙을 찾아내겠다고 나선 배의 선장이나 다름없는 사람인데 갑자기 내가,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달아버린다면. 우리가 찾으려는 대륙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 같니. 자기들 인생을 전부 걸고 나와 같이 길을 나선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혼돈에 빠지겠지. 내가 경험한 일들을 내가 인정하는 순간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았어. 그동안 내가 왔던 길이 전부 한꺼번에 부정될 것 같았고.”

나를 불안에 떨다 미치게 만들려고 한 거라면 과장님은 거의 성공하고 있는 거였다.

“어…. 죄송한데요. 선생님. 선생님이 무슨 말씀하시려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돼요.”

내가 말했다.

“MRI를 찍을 때 나도 조종실에 같이 있었어. 근데 영상이 떠오르기 전에 내 눈에 다른 게 보이는 거야. 오래된 홈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임정우가 보이더라. 임정우가 강하게 원하는 게 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이상한 일이지. 그건 내 눈에만 보였어.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고. 전에 말했지만 그런 일이 전에도 있었고."

얘기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내가 경험한 걸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찾다가 어떤 신경학자가 그런 주장을 한 걸 발견했어. 그 사람 주장대로라면, 세상에는 자기가 상상하는 걸 완벽하게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자기 능력을 정교하게 계발하면 그걸 상대방한테 보여줄 수도 있대."

“…….”

"그러면서 그 신경학자가, 자기가 만났던 환자에 대해서 기록을 했는데 그게. 임정우. 너랑 비슷해. 카린이라는 가명으로 기록돼있는데 그 사람 주변에서는 이상한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았대. 가족이랑 친척, 친구들, 이웃들이 어이없는 사고로 많이 죽었어. 정말로 어이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게 다 자살이나 사고였어. 항상 목격자들이 있었고. 목격자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그게 자살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희한하게들 죽었대."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나는, 영화를 보고 온 친구한테서 영화 얘기를 듣는 것처럼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은 과장님 같은 분이 그런 얘기를 할 때의 괴리감이란. 그런데도 과장님은 지치지도 않고 얘기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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