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109화 (109/402)

0109 ----------------------------------------------

내 인생의 보스몹

"그 사람들은 계곡에서 뛰어내리기도 했고 고층 건물이나 기차에서도 뛰어내렸대. 열차에 뛰어들기도 했고. 그 신경학자는 그걸 카린이 만들어낸 시각 정보가 일으킨 살인 사건이라고 규정했어. 학계에서는 그 사람을 미치광이 취급했고. 아마 나도 너를 만나지 않았으면 나도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거고 그 얘기를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지금은.”

과장님은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아니예요?”

나는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과장님은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과장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 얘기를 그냥 끝마쳐 버리거나 없던 얘기로 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기 힘들 정도로 그 상황이 불편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제가 시각 정보를 조종…. 왜곡이라고 말해야 되나요? 아니면 통제?”

과장님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무튼 그런 걸 한다면. 제가 모든 사람들한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카린이라는 사람이 가진 그, 능력이라고 해야 되나? 그건 모든 사람들한테 영향을 미쳤대요?”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리고 네 경우에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그때 내가 본 건 나한테만 보였어. 조종실에 같이 있던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 거야. 너희 엄마가 병원에 왔을 때 복도에서 본 것. 그것도 너희 엄마랑 나한테만 보였던 것 같아.급격히 바닥의 균형이 무너진다고 생각해서 나도 균형을 잡으려고 비틀거렸거든. 움직이지도 않는 평평한 바닥에서 그런 동작을 한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어.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현기증을 느꼈다고 생각했겠지.”

“그럼…. 특정한 사람들한테만 그런다고요?”

“내 생각으로는 그래.”

“혹시 이 일을 아버지한테도 말씀하셨어요?”

나는 갑자기 생각난 것을 물었다.

“아니.”

“왜요?”

“확실하지도 않고.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그건 우선 우리만 알고 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

한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과장님을 바라보았다.

“그 신경학자라는 사람은 살아 있어요?”

“그 사람은 죽었어. 논문을 발표하고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차도에서 벗어나서 바다로 뛰어들어서. 사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신경학자가 탄 차가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도중에 핸들을 꺾으려고 하지도 않고 방파제를 지나서 끝까지 달렸대.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거야.”

신경학자의 눈에는 그곳에 길이 나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일까. 자기가 가야 할 길이 그리로 이어졌다고 생각한 거였을까.

과장님이 얘기를 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신경학자가 탄 차가 빠른 속도로 방파제를 지나며 달리는 모습이었다. 양쪽에서 높은 파도가 올라왔더라도 그의 질주를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차는 마침내 길이 끊어져 버린 곳에서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그대로 검은 바다의 물결 위에서 한순간 멈추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천천히 아래로 기울고.

그 사람의 눈에, 그 순간에는 그것이 제대로 보였을까.

자신을 삼키기 위해서 입을 벌리고 있는 검은 바다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그 사람이 카린의 비밀을 지키지 않은 대가를 치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전해지는 얘기야.”

과장님이 말했다.

“…….”

왠지 그 현장의 가까운 곳 어딘가에 카린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섬뜩해졌다.

“카린은요? 살아있어요?”

“그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방법이 없지. 카린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사람은 그 신경학자뿐이었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카린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연구 성과를 가로챌까봐 강박증에 빠져 있었다고들 하거든. 그런 건 이상한 일도 아니지. 카린이 여잔지 남잔지 어느나라 사람인지 몇 살인지도 몰라. 실제로 존재한 사람인지 허구의 인물인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었고 카린이라는 사람은 그 신경학자가 성공에 눈이 멀어서 가공해낸 허구의 인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어.”

“선생님은 이제 카린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있었을 거라고 믿으시겠네요.”

“그래.”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과장님이 곧바로 말했다.

“그 사람도…. 갑자기 말도 안 되게 힘이 세지거나 그랬대요?”

나는 그 사람과 내가 다르다는 걸 깨닫고 싶었던 것 같다. 나한테 나타난 일들이 카린이라는 남자에게 나타난 일과는 다르다고, 과장님에게서 그 말을 듣고 싶었던 듯, 나는 하나하나를 절박하게 물었다.

“짧지만 그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었어. 그런데 정말로 짧게만 언급을 했어. 자기가 하는 말이 얼마나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지 알았을 텐데 거기다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얘기를 더 추가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지. 카린이 화가 났을 때 주차장에 있던 차들을 들어서 던져버렸다는 얘기가 잠깐 나와.”

“하아아아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너는 수퍼맨의 아들이야' 라는 말을 듣는다면 지금 딱 나같은 심정이 될 거다.

상대가 과장님만 아니라면, 내가 그렇게 우습고 만만해 보이더냐고, 사람을 가지고 놀려고 그러는 거냐고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과장님이었고 내가 함부로 굴 수 없는 몇 안 되는 분들 중에 한 분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내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모르지.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사실이고 카린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랑 너는 많이 다르니까. 너는 네가 원하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통제되지 않는 그림들을 흘리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 들고 있는 패가 너무 많고 손 안에 다 쥘 수 없어서 흘리는 것처럼. 과거의 기억이나 상상이 보여지는 것 뿐이라서 위험하지도 않고. 어제는 좀 다르기는 했지만. 그건 특수한 상황이라서 그랬겠지. 어머니를 향해서 축적된 분노도 있었고, 임정우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지키고 싶어했던 사람하고의 관계를 끝내야 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그동안 갇혀있던 어떤 걸 끄집어낸 것 같기도 하고.”

연우….

그래서였던 걸까.

“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이예요.”

내가 말했다.

진심이었다.

“임정우. 너희 엄마가 너를 망치게 놔두지 마. 네 정신. 네 영혼. 너는 착한 애는 아닐지 몰라도 확실히 멋진 애지. 멋진 아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나를 실망시키지 말라는 게 아니야. 너를 망치지 마.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를 잃게 하지 않으면 좋겠다. 너를 망쳐야할만큼 네 엄마가 가치있는 사람인지 생각하고. 어려운 일인 건 알지만 더 이상 네 엄마한테 영향 받지 말고 지금처럼 네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님에게는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다.

“저 때문에 나오신 거면. 다시 집으로 가실 거예요?”

“아니. 다시 들어가면 또 다시 나와야되잖아. 귀찮아. 그냥 대충 눈 붙이다가 일 할래.”

“죄송해요. 선생님.”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지.”

과장님은 그렇게 말하고 손을 털면서 나를 쫓아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얘기를 들은 건지 아직도 얼떨떨했다.

나는 사이트에 접속하면서, 혹시 시각정보의 통제 아이템 같은 게 나 모르게 나한테 이미 주어졌던 건 아닌지 살펴보았다.

결과는

그딴 건 없없다는 것.

나는 과장님이나 엄마, 아빠한테 보인다는 게 어떤 종류의 장면들인지 알지 못했다.

어!!

과장님은 내 상상이 시각화돼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 같다고 했는데.

혹시 내 변태적인 망상이 사람들에게 보이게 된다면 큰일이라는 생각은 병원을 떠나고 나서 한참 후에 들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심각한 문제일 것 같았다.

내 망상이 통제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한테 보인다면…. 그 후의 일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왜 이런 수퍼 울트라 유니크 능력을 갖게 돼도 그런 걱정을 해야 되는 거란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