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114화 (11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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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보스몹

이건 화장지 네 개를 줘야 살 수 있다고 한다고 해도 사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화장지 네 개짜리 영상이었을 줄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곧바로 영상을 다운받았다.

캡처 사진은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영상을 다운받자 화면에 작은 두루마리 아이콘이 생겨났다.

나는 그것을 클릭했고 클릭을 하자 거기에 시공간 동결 아이템의 사용방법이 나왔다.

‘시공간 동결 아이템을 활성화시키고, 시공간을 동결시키기 원하는 영상을 지정하면 시공간 동결이 이루어진다. 영상 속에 나온 사람들은 시공간 동결 해제 아이템으로 풀려나기 전까지 그 구간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현실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될 것. 시공간 동결 아이템의 활성화로 영상에 갇힌 사람의 영혼은 육체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건 왠지.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장난이 아닌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사용 방법을 다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아이템을 활성화시키고 영상을 지정하면 시공간 동결이 이루어진다라….

아이템을 활성화시켰다가 잘못해서 다른 영상을 지정하면 큰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다운받아서 가지고 있던 파일들을 정리했다.

다시 생각할수록 소름이 끼쳤고 너무 위험한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 눈은 시공간 동결 해제 아이템이라는 것에 가 닿았고 그걸 얻기위해서 또 부지런히 등급을 올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이트에서 나오려다가 나는 혹시 내가 놓친 게 있는지 확인하려고 한 번 더 꼼꼼하게 사이트를 살펴보았다.

몸캠 영상 사이트에는, 내가 호텔에서 만나 교성이 좋아서 찍었던 여자의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내가 업로드를 한 대가는 받지 못했다.

나는 뭐라도 주어지는 게 있을 줄 알고 업로드를 수락한 거였는데 개뿔. 아무 것도 없었다. 화장지 한 개, 아니. 한 쪽도 없었다. 뭘 주겠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배신감이 느껴지고 서운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몸캠 영상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영상 옆에 다운받은 횟수가 나타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아차렸는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기록이었다.

내 등급이 올라가면서 그 기록도 보이게 된 것 같았다.

다운받은 횟수는 1이 최고였고 나머지 거의 대부분은 0이었다.

그러고보니 다운받은 횟수가 1인 것은 모두 내가 다운을 받은 영상이었다.

‘이 사이트 이용자는 나밖에 없는 건가?’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재미있다는 생각으로 사이트에 접속을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내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은호 형도 그렇고 연우와 핫 걸.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많은 사람들을 몸캠 영상 사이트를 통해 만나게 된 거였다.

내 인생이 그 사이트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는 시공간 동결 아이템의 사용 방법을 다시 보고 거의 암기할 정도로 반복해서 읽은 후에 사이트에서 나왔다.

내가 받은 영상은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은호 형의 방 앞에 가서 은호 형을 기다렸다.

은호 형은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다 잘 될 거라고 말했다.

“형. 오늘 만나기로 한 거. 내일로 미루면 안 되겠어요?”

갑자기 내가 말하자 형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이런 만남에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데. 특별한 일도 없이 약속을 미룰 수는 없는 거야.”

형이 말했다.

“그건 아는데. 그냥 이번에만 내 말대로 해 주면 안 되겠어요?”

형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내가 왜 그러는 건지 나도 몰랐으니까.

다만 나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에 앞서 아이미를 조용히 한 번 만나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이미에게서 회사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던 것이다.

내가 봤을 때 아이미는 전무와의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는 것 같았고 전무에 대해 적대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아이미라면 우리를 위해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나에게 있었다.

은호 형은 나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그럼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나는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은호 형을 바라보았다.

“형. 혹시 형도. 나한테서 뭔가를 봤어요? 환상이나 신기루처럼 어렴풋하게 내가 보인 적이 있었어요?”

내가 물었다.

형이 곧,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말을 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형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형이 물었다.

“헐. 그럼 진짜 형도 본 거예요?”

“나도 본 거냐고?그럼 그걸 본 사람이 또 있다는 거야? 나는 내가 기가 쇠해져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어떤 식으로 보였어요? 내가 어떻게하고 있었어요?”

“너?”

형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설명할 방법을 찾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자존심 상해서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무서웠어.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라는 거 있잖아? 그걸 그렇게 생생하게 느낀 적이 없었을 정도야. 그때는 참 희한했어. 졸린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정신을 잃은 것 같았거든. 그러면서 아주 짧은 순간 동안에 꿈을 꾼 것 같았는데. 무슨 기면증 걸린 사람처럼. 그 잠깐 사이에 네가 보였는데 아, 씨발. 겁나 무섭더라.”

“왜요? 내가 어쨌는데요?”

“아니. 뭐. 그런 거 있잖아. 초면에 기 빨리는 거. 너한테 장난질 하면 좆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세가 저절로 공손해지고 나도 모르게 차렷 자세를 하게 되는 그런 거 있어.”

“그랬어요?”

생각할수록 희한했다.

아버지와 은 과장님, 그리고 은호 형이 전부 나에 대해서 봤지만 나에 대해서 본 모습들이 각각 다 달랐다.

그리고 그때 그들이 봤던 내 모습 때문에 그들은 내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솔직히 이런 것도 웃기잖아. 네가 아무리 대단하고 일본어 조금 한다고 해도 이런 자리에 너를 데리고 오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게 훨씬 이익일 수도 있는데."

"그렇죠."

나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였다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은호 형이 그런 데서 돈을 아껴야 할 형편도 아니고.

"그런데 네가 확신을 갖는 걸 보면 그 일은 막연히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래서 너랑 같이 와서 확인받고 싶었어. 여기에 투자하는 게 바른 선택이 될 거라는 걸.”

은호 형은 어색해 하면서 말했다.

그런 말을 당사자 앞에서 하려니까 손발이 오그라들고 오징어가 될 것 같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서로 어색하고 민망해서 그 후로는 접시에서 고개를 거의 들지 않고 식사를 했고 그 날 하루는 각자 개인적으로 움직이기로 하고 식당 앞에서 헤어졌다.

은호 형은 하루를 더 연장하려고 프론트로 갔고 나는 아이미를 만나러 밖으로 나갔다.

***

전략팀에서 대리로 근무하던 아이미가 전무의 눈에 띄어 전무의 비서실로 옮기게 된 것은 아이미의 업무 능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걸로 비서를 골랐다면 아이미는 비서가 열 번 정도 바뀔 때까지는 기회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나메 전무는 아이미를 자신의 비서로 선택했다.

카나메 전무가 왜 아이미를 선택했는지는 곧 밝혀졌다.

카나메 전무는 아이미를 자신의 개인적인 모임에 대동했고, 모임의 격식에 어울릴만한 좋은 옷과 장신구를 사 주면서 아이미를 자신의 악세사리로 만들어갔다.

비서로 일해서 받는 것을 제외하고 아이미는 카나메를 따라다니면서 한달에 이천 만원 상당의 용돈과 천만원 상당의 카드대금을 따로 받았다. 마음껏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쉽게 가질 수 있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었으니 아이미에게도 꼭 나쁜 장사는 아니었다.

차남으로서 일찌감치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던 카나메는 적당히 전무 자리를 유지하면서 아이미를 데리고 다니며 자신이 가진 힘을 과시하기를 좋아했다.

그의 말이라면 뭐든 복종하는 아이미를 데리고 다니면 세상을 전부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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