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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보스몹
아이미는 정우에게 사과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할 말이 있는데요.”
아이미가 고개를숙이고 말했다.
정우는 그제야 아이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뭔데?”
아이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얘기를 했다.
카나메가 알게 된다면 절대로 가만 있지 않을 얘기를.
그런데 이상하게도 얘기를 할수록 아이미는 점점 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카나메에게 계속 당하기만 했던 일들이 생각나면서 화가 났다.
아이미는 억울해했다.
그리고 정우로서는 관심도 없는 얘기까지 줄줄이 다 늘어 놓았다.
카나메가 자기를 개인 모임에 끌고 가서 자기한테 어떤 것들을 하게 했는지.
정액으로 버무린 파스타를 먹였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정우는 얼굴을 구겼다.
"설마. 그래서 그걸 정말 먹었어?"
정우가 묻자 아이미는 고개를 숙였다.
"설마. 에에에이. 아니지?"
정우는 아이미를 놀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하고, 그리고 믿을 수가 없어서 자꾸만 물었다.
아이미는 죽빵을 한 대 날리고 싶은 것을 참으며 대답을 했다.
"그래요! 먹었어요! 그게 내가 돈을 받는 대간데 어쩌라고요!"
"오오. 열심히 사네. 그래. 힘내!"
정우가 화이팅하라는 듯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을 해 주자 아이미는 열이 뻗쳐서 정우를 노려 보았다.
"하긴."
정우는 아이미의 몸캠 영상을 생각하면서 이미 그런 영상을 보여줄 정도면 카나메와 아이미가 갈 데까지 간 사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미는 정우가 혼자 열심히 생각을 하면서 자기 나라 말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는 것을 보다가 이 사람이 혼자 마음대로 추측을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섹스는 한 적 없어요!"
"응?"
이건 무슨.
기승전결도 없이 '섹스는 한 적 없다'라고 소리를 지르다니.
"섹스는. 그러니까, 그, 페니스를 삽입한 적은 없다고요."
아이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안 믿기는데?"
정우가 말했다.
안 물어봤지만 안 궁금한 건 아니었다.
"정말이예요. 카나메는. 전무님은, 좋은 건 나중을 위해서 남겨두자고 했어요. 그래야 계속해서 기대할 수 있다고."
"그래서. 페니스를 삽입한 적은 없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꽤 솔직하네?"
정우가 말했다.
정우의 얼굴이, 아이미의 얘기를 재미있어 하는 것처럼 밝아졌다.
아이미는 정우가 이제 자기 얘기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확신을 갖고 이것 저것 더 말하기 시작했다. 카나메가 몸캠을 찍게 하고 그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정우는 재미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원한다면 그 영상.”
정우가 말했다.
아이미가 정우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워줄 수 있는데.”
“어떻게요?”
아이미가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더니 역시 컴퓨터 천재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한국에는 컴퓨터 천재가 많다더니!
"어떻게 하든 영상을 지워주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어떻게 할 건지 내가 설명해도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거야."
정우가 말하자 아이미는 정말 그렇겠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을 해 봐야 자기는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정우가 몸캠 영상 사이트에서 다운받아 가지고 있는 아이미의 영상을 지우기만 하면 카나메가 가지고 있던 데이터도 같이 사라진다는 것을 아이미가 알 리가 없었다.
정우는 그 자리에서 딜을 시작했다.
자기가 그영상을 지워주면 뭘 해주겠냐는 거였다.
아이미는 수줍게 고개를 돌리면서, 벗으라면 벗겠어요, 같은 표정을 했다.
이미 전부 벗고 있었으면서.
그리고 자기 쪽에서 더 관계를 원하고 있었으면서.
정우는 아이미에게 이번 계약건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를 좀 더 털어놔 보라고 말했다.
아이미는 카나메가 폭탄을 떠넘기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말했다.
만약에 이 기회를 놓치면 자기네 회사도 위험할 거라는 말도 했다.
정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은호가 그동안은 돈 냄새를 잘 맡아 왔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썩은 고기 냄새를 맡고 쫓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아직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는 않았으니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지만 카나메를 가만히 놔두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이미는 정우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겁먹은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풍길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에 오늘 이 사람들이 예정됐던 대로 계약을 하고 한국으로 떠났다가 나중에 일이 터지고 나서 일본을 다시 찾는 일이 생겼다면.
그때는 무슨 일이 생길지 상상조차 안 되었다.
그래서 아이미는 이렇게 돼 버린 게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우는 그대로 무대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별 그지같은 새끼가 우리를 엿 먹이려고 한 거네?”
정우가 말했다.
“먼저 제안을 해 온 건 그쪽이었잖아요. 우리가 먼저 제안을 한 게 아니라고요.”
아이미가 말했다.
“조용히 안 하냐? 아직 입이 제대로 붙어 있다고 상기시켜 주려고 그러는 거야?”
정우가 노려보면서 말하자 아이미는 입을 꾹 닫았다.
절대로 좋은 남자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나메처럼 비열한 종류는 아니지만 카나메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잔인해질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미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다가 정우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만한 정보를 쏟아냈다.
곧 시장을 새롭게 장악할 거라는 신기술에 대한 얘기였다.
정우의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
“거기랑 접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그것까지 자기한테 물으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냐는 듯이, 아이미가 멀뚱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방금 질문을 했는데?”
정우가 말했다.
“네. 근데 저도 모르죠.”
아이미가 말했다.
“알 것 같은데?”
“그건 저도 진짜….”
모른다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순간 방법이 생각났다.
알 것도 같았던 것이다.
“아아아아. 맞다. 그 회사 연구팀장이 우리 전무랑 친구예요. 직접 그 일을 맡고 있는 팀이 아니라서 큰 도움은 안 될지 몰라도 연구소장을 만날 수 있게 해 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쪽이랑도 친해?"
“누구요. 나요? 나는. 그냥 아는 정도?”
“어떻게 아는 사인데?”
목에 목줄 달고 앉아있는 동안 그쪽은 내 맞은 편에서 식사를 했었던 사이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아이미는 잠시 그 상황을 표현할 방법을 찾느라고 머리를 굴렸다.
"카나메랑 개인 모임에 나갈 때마다 그 사람도 그 모임에 나왔어요."
“그 신기술 개발 얘기를 듣고도 그쪽 회사에서 아직 대처를 못 한 이유가 있나? 그쪽 회사에서도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정우가 물었다.
“양산에 들어가기까지 어려운 점들이 있으니까 그런 거죠. 기존 제품에 약간 변형을 줘서 만드는 거라면 모를까 이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 지금 시작을 하면 가격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죠. 그러면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그쪽은 5년 넘게 연구를 해서 지금 결실을 보려는 단계인 거고요.”
아이미의 설명을 듣고 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미는 정우가 어떤 결정을 내린 건지 알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정우가 아이미에게 다가왔다.
“다시 묶어줄까?”
아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해의 제스츄어인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정우는 아이미를 묶었다.
다시 다리가 적나라하게 벌어졌다.
“박아줘?”
아이미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눈망울에 눈물이 맺혔다.
너무 큰 기대감이 배신을 당해 너무 많이 지쳐버렸던 것이다.
“아이미.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
“…뭔데요?”
“그 연구팀장이랑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누가요?”
“너.”
“…….”
“기대해 봐도 되겠어?”
아이미는 대답을 생각했다.
'이제 카나메를 버릴 때가 된 건가?'
============================ 작품 후기 ============================
아크윈드님. 113화에 달아주신 코멘트를 토대로 수정했습니다. 113화에 댓글을 달려고 했는데 코멘트 등록 실패가 계속 뜨네요. 감사합니다~ [아크윈드/지적해주신 게 맞겠네요. '아이미. 뒤는 모름'에서 '뒤는 모름'을 삭제했습니다. ^^;]라고 달려고 했는데 시스템이 제 코멘트를 거부해요!! 레무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