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122화 (12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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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보스몹

바나나 알앤디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회사의 연구2팀장이었던 엔도는 아이미의 접근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카나메의 옆에 있는 아이미에게 무한한 관심을 품어왔던 엔도는 카나메가 맡아 하던 일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젊은 아이미가 카나메의 불꽃 같은 눈을 피해서 자기에게 접근 해 오는 것을 즐겁게 여기고 있었다.

연구2팀은 바나나 알앤디 연구1팀에서 진행시켜 온 신기술 개발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특히 엔도가 경쟁업체 전무인 카나메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엔도에게는 더욱 철저히 보안이 유지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나메가 바나나 알앤디의 신기술 개발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엔도 덕이었다. 철저히 보안을 지키도록 권고받았지만 엔도는 연구1팀에서 신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 같다는 사실을 카나메에게 슬쩍 흘렸다. 그 후로 카나메가 자신의 정보력을 동원해서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내게 된 것이다.

엔도는 카나메가 한국에서 온 사람들과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지 궁금해 했다. 그러던 차에 아이미가 먼저 접근을 해 오니 아이미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을 수도 있고 눈요기도 할 수 있게 될 것 같아 속으로 흐뭇해했다.

아이미는 엔도에게 접근해 내가 시킨대로 말을 전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싶다고 접근을 했었지만 사실은 그런 계약을 하려는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고, 그 사람들이 접근을 한 것은 자기 회사의 생산능력을 알아보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는 말에 엔도는 급관심을 가졌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정작 노린 것은 뭐였냐는 말에 아이미는 바나나 알앤디의 신기술이었다고 말했다.

카나메 회사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으려고 온 것처럼 하고 사실은 바나나 알앤디의 주위를 돌아다니며 바나나 알앤디의 신기술 개발이 어느 정도까지 성과를 보였는지 알아보려고 했던 거라는 말에 엔도는 다급해졌다.

그 사람들이 왜? 라는 질문에 아이미는 내가 미리 알려주었던 대답을 했다.

“거기서도 신기술을 개발했고 곧 양산이 가능해 지는 모양이예요. 거기는 정확한 타이밍을 잡고 싶어하고 바나나 알앤디보다 일찍 터뜨리려고 하는 거죠. 자기들이 신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요. 그러면 많은 걸 그 사람들이 선점할 수 있게 되니까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붙인 이름을 사용하게 될 거고요.”

엔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엔도는 자기가 아이미의 젖가슴에 눈독을 들이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왜 바로 발표를 하지 않고?"

"최적의 타이밍을 노리는 거죠."

그 말을 들은 엔도 때문에 바나나 알앤디가 급하게 움직였고 연구소와 제조기술팀, 영업부가 전부 모여 밤낮없이 회의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바나나 알앤디에서 신기술을 개발했다는 발표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소식이 발표되었을 때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있었다.

핫 걸이 공항에 나와 나를 기다려 주었다.

핫 걸은 정보를 알려줘서 고마웠다고 말하더니 내 쪽으로 머리를 기울였다.

“바나나 알앤디에서 전에 만들어 팔았던 제품을 가지고 놀던 미국 남자 아이 한 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체내에서 납 성분이 나왔대요. 바나나 알앤디 제품에 납 성분이 있었던 걸로 밝혀졌고요. 그것 때문에 미국에서 집단 소송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요. 피해를 당한 아이가 그 애 하나가 아니었던 거죠. 그동안에는 아이가 왜 그런 건 줄 몰랐다가 바나나 알앤디 장난감 때문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부모들이 소송에 동참하려고 하고 있어요.”

핫 걸은 대단한 정보를 값 없이 알려준다는 듯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내 표정에 별로 변화가 없는 걸 보고 내 팔을 툭 쳤다.

“세상에! 그거. 그쪽이 한 거예요? 바나나 알앤디 제품 때문에 그렇게 된 걸 거라고 병원에 알려준 게 그쪽이예요?”

“아뇨. 병원에 알려준 게 아니라 변호사한테 알려줬죠. 똑똑해서 돈 냄새를 잘 맡더라고요. 바나나 알앤디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벌이고 나면 자기는 전용기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될 거라는 걸 바로 알아먹더라고요.”

“허어어얼! 그건 어떻게 알아냈는데요?”

“내 정보원이 알아내줬죠.”

나는 아이미의 신원은 밝히지 않은 채 말했다.

“그 정보원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고요?”

“내부 고발자의 양심 선언을 받아냈다고 할까요?”

엔도가 그 사실을 아이미에게 말해준 것이 선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고 아이미의 가슴이나 엉덩이라도 한 번 만져볼 수 있을까 해서 술에 만취한 채 흘린 얘기였지만, 나는 엔도의 의도를 깎아내리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를 위해서 큰 일을 해 준 사람이었으니까.

“궁금한 게 있는데. 바나나 알앤디에 왜 그렇게까지 해요? 그 회사는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았잖아요. 추상적인 위해도 가하지 않았고요.”

핫 걸이 물었다.

“그런 문제는 바로 잡아야 하는 거잖아요. 자기들이 직접 만든 건 아니고 하청업체에서 저지른 일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돈에 눈 먼 기업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다쳐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나는 우아하게 미소를 짓고 말했지만 핫 걸은 꿍꿍이가 뭐냐고 묻는 표정을 지었다.

알고 보니까 카나메가 바나나 알앤디의 대주주더라. 카나메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엿을 먹이는 방법이 바나나 알앤디의 주식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거라서 그랬다 라는 말을 나는 핫 걸에게 할 생각이 절대로 없었다.

나는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은호 형과 미리 연락을 취했고, 추락하는 바나나 알앤디를 이용해 은호 형과 함께 이미 수 십억에 달하는 시세 차익을 올린 후였다.

아이미는 그곳에서의 일이 대충 정리 되는대로 한국으로 오기로 했다.

자기 말로는 카나메와 바나나 알앤디의 보복이 두려워서라고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진짜 이유는 내가 보여준 맛을 못 잊어서일 거다.

핫 걸은 내 덕에 자기가 키샤의 떠오르는 핫 아이콘이자 대표 브레인으로 등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잘 됐네요.”

“어우. 이러다가 너무 바빠져서 진짜.”

“아무리 바빠도 딜도에 젤은 발라가면서 쉬엄쉬엄 일해요.”

핫 걸에게 소곤거리다가 나는 내 옆으로 와서 멈추는 차를 발견했다.

“아. 연우다!”

나는 핫 걸에게 인사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차를 향해 다가갔고 연우가 나오며 트렁크를 열어 주었다.

핫 걸을 소개해 주려고 했지만 핫 걸은 이미 사라져버린 후였다.

들키기 전에 사라지던가. 이미 다 봤을 텐데 인사라도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운전석으로 향했다.

평소에 바바리처럼 입던 꽃무늬 패턴의 옷을 원피스처럼 입고 나온 연우가 조수석으로 옮겨가며 나를 바라보았다.

“…왜앵?”

괜히 찔리는 나.

“선물 사 왔어요?”

“당연하지. 마네키네코 인형 사 왔어. 오른 발을 들고 있는 고양이는 돈을 부르고 왼 발을 들고 있는 고양이는 손님을 부른다고 해서 두 발 다 들고 있는 걸로 사왔어.”

“나는 손님 받을 일 없는데.”

“아…. 그래. 그렇지….”

“그리고 선물이 뭔지 미리 말해버리면 어떡해요? 기대감 사라지게.”

“걱정마. 진짜는 아직 말 안 했으니까.”

“뭔데요?”

“거봐. 물어볼 줄 알았다니까? 여자들은 참 이상해. 말해주면 말해줬다고 화내고 말 안해주면 말 안 해 준다고 삐지고.”

“치. 여자들에 대해서 잘 알아서 좋겠어요.”

오! 화났나?

선물도 별로 마음에 안들지도 모르는데.

선물은 내가 좋자고 산.

훈도시였으니까.

먼저 그 엄청난 가격에 놀랐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샀다. 장인이 한땀한땀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는 훈도시를 보고 나는 그것을 연우에게 입혀볼 생각에 들떴다.

하지만 연우한테 입히려고 사 왔다고 하면 연우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니 우선은 눈가림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한 선물은, 훈도시를 입은 '나'.

촉감이 얼마나 좋은지 만져보라고 해야지.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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