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8 ----------------------------------------------
초야
결국은 연우도 포기를 하고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내 가슴을 안고서 내 목에 얼굴을 묻고 초조해하지 말자고 말했다.
그렇게 말해주는 게 고맙기는 했지만 그 상황이 계속되자 나중에는 연우가 침대에 들어오는 게 무섭고 불안해졌다.
점점 자신감도 사라지고 위축되었다.
연우도 내가 의기소침해진다는 걸 알았는지, 자기하고의 관계에서만 그러는 건지 모르니까 우선은 마음을 편하게 해 보라고 말했다.
비뇨기과에 가 봤지만 아무 문제가 없고 심리적인 요인 때문인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몸이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내 원룸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받았던 영상을 보면서 자위를 했다.
발기도 사정도 모두 자연스러웠다.
오랫동안 싸지 못한 탓에 진하고 끈적한 정액이 한동안 불컥거리면서 나왔다.
‘내 문제는 아닌 건데…. 연우한테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렇다는 건데….’
나는 그 문제에 집중하려다가 오히려 내가 너무 위축되고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 때문에 일단은 관조적인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연우에 대해서도, 발기가 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도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나는 단시일 동안 몰입할 것을 찾다가 출판사에 연락을 했다.
단편 분량의 원고 중에 재미있게 번역할 수 있을만한 게 있으면 일거리 좀 달라고 하자 오랫동안 내 담당이었던 팀장이 마침 연락을 해 줘서 다행이라고 말하며 당장 보자고 성화였다.
“무슨 일인데요?”
“전에 번역 의뢰했었던 코야 리코라는 작가 기억나요?”
“아. 네. [처녀들의 초야] 말하는 거죠?”
잊을 리가 있나.
내 번역 초고를 보고 신랄하게 까고서 나한테 일을 맡기지 못하겠다고 했던 사람인데.
코야 리코는 자비 출판으로 낸 처녀작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면서 이 삼십 대 여자들 사이에서 우상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팬덤을 가진 여자였다.
그 작가 자체가 스물 셋인가 넷인가 됐고 프로필 사진에서는 코가 약간 위로 들려 있었는데 그게 묘하게 섹시하기도 하고 백치미도 있어보여서 처음에는 나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작가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작풍이 엄청나게 그로테스크하고 갈수록 하드 코어했다.
그래도 힘들여서 번역을 했는데 코야 리코가 깠고 나는 나대로 그 원고에 흥미가 없었기에 크게 대응도 하지 않고 번역을 포기했었다.
[처녀들의 초야]는 산골의 어느 집성촌에 사는 여자들의 초야를 다룬 이야기였다.
이웃 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2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서 친족간의 간음이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면서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게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을의 장로들은 결국 마을 사람들끼리의 성교와 혼인을 모두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대신, 나이가 찬 여자들은 이웃 마을로 시집을 갔고 남자들은 그곳에서 여자들을 얻어왔다. 그런데 이웃 마을 사람들은 처녀와 잠자리를 하면 운이 나빠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여자들이 잠자리 기술이 부족하면 여자들을 쫓아냈다.
그런 이유로 그곳에는 처녀들의 초야라는 축제가 생겨났다.
나이가 찼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자들이 눈만 가리는 반가면을 쓰고 축제에 참가했다. 그러면 마을 장로들에 의해서 선택된 이방인이 처녀들의 순결을 가져가 주는 것이다.
그 마을 근처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관서지방 최고의 온천이라고 불리는 온천이 있었고 마을에서는 그곳에 온천 여관을 만들었다. 온천을 찾아온 사람들 중에 물건이 실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최음제를 섞은 음식을 먹이고 그날밤 처녀들의 초야를 치르게 한다는 내용이다.
소설은 온천에 온 남자와 초야를 치르는 여자의 얘기를 다루고 있었다.
해피 엔딩은 아니었다.
온천에 온 남자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 남잔데 우연히 그곳에 왔다가 처녀와 초야를 치르고 그 처녀도 죽이고서 떠난다는 다크다크한 이야기였다.
한 마디로 내 취향 아님.
그 하룻밤 동안 남자는 처녀에게 온갖 괴로운 짓을 다 시킨다.
그야말로 하드 코어의 극치였다.
보는 내내 역겨워서 진도를 나가기가 힘들었던 작품이었는데 작가가 먼저 거절을 했으니 나로서는 여간 기분 나쁜 경험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는 왜요?”
작가라고 불러주기도 싫을 정도로 나쁜 기억이 확 올라와서 내가 말하자 팀장이 웃었다.
“감정이 아직도 안 좋은 모양이네요. 하긴 우리도 그렇긴 해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코야 리코가 정우씨를 만나봤으면 하더라고요.”
“지금 한국에 와 있어요?”
별로 관심은 없지만.
프로필 사진이 예뻤던 건 살짝 기억이 나는군.
이놈의 기억력. 한 번 본 여자 얼굴은 절대로 안 잊는 거냐!
“아뇨. 일본에 있어요. 그런데 코야 작가 말로는 [처녀들의 초야] 배경이 됐던 축제가 곧 열릴 거래요.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외부인은 절대로 참가할 수가 없다는데 코야 작가가 거기에 참가해서 취재를 하도록 허락을 받은 모양이예요. 마을 장로들한테요.”
“그래서 그걸 자랑하고 싶었대요?”
“그게 아니라. 코야 작가는 정우씨가 그 소설의 분위기를 너무 환상적으로 이해한 것 같아 불만이었다고 했는데 이번에 축제에 같이 참가해서 보면 작품 분위기가 제대로 이해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허! 누가 그 작품 번역 못해서 환장한 줄 아나 보네요?”
“그런 게 아니라.”
팀장은 가운데서 어떻게든 나를 설득해보려고 진땀을 빼는 것 같았다.
“생각해 봐요. [처녀들의 초야]가 실제로 행해지는 축제를 배경으로 쓰여진 거라잖아요. 그리고 그 축제에 초대받은 거고.”
팀장이 말했다.
“네. 전혀 관심 없고요. 됐다고 전해주시면 되겠네요. 옛날 얘기라면 몰라도 그런 축제가 지금도 이어진다는 것도 이상하고. 하여간 싫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온천 여관에 물건 실한 사람이 오면 축제가 열리는 것으로 되어 있더니 실제로는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 온천이 그렇게 좋다는데.”
팀장이 말했다.
“아니. 됐다니까요? 됐다는데 왜 자꾸 그러세요?”
“사실은 코야 리코 작가가 작가들 사이에서 마당발이거든요. 이 일이 잘 성사가 되면 다른 작가들을 우리 출판사에 소개해 줄 것 같아요.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바람쐴 겸 한 번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비용은 저희가 부담할게요.”
“부담을 하면 코야 리코가 해야지 왜 거기에서 합니까?”
“투자죠, 투자. 좋은 작가들을 많이 섭외할 수 있으면 우리도 좋으니까. 요즘에는 작가 섭외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요. 근데 코야 리코 작가를 잡으면 고구마가 주렁주렁 매달려오듯이 패키지로 작가들이 따라올 것 같으니까 부탁하는 거예요.”
“…….”
온천.
처녀들의 초야.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모두 몇 명이래요?”
“앗싸! 그럴 줄 알았다니까? 정우씨도 관심 있는 거죠?”
관심 있는 게 아니라 혹시나 해서 묻는 거였다.
“열 여섯 명요.”
“…….”
역시 그게 그거였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운받은 영상 속에 있던 여자들.
그 장소.
‘그게 그거였어.’
잠시 내가 말이 없자 팀장님은 내가 거의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는 내가 본 영상과, 시공간 동결 해제 아이템에 대한 생각이 맺혔다.
‘화장지를 모아? 모아서 일단 아이템은 구해놔?’
언젠가는 그게 필요할 수도 있을 테니까.
동정심 때문에 하는 생각은 아니다.
엄마만 갖고 있는 기억이 나한테 필요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럼 코야 리코한테 전해주세요. 저한테 직접 연락하라고요.”
“그럴게요. 고마워요, 정우씨. 그럼 아까 말한 건 어떻게 할까요? 단편 분량?”
“아. 그건 됐어요. 머리나 식힐 겸해서 찾던 건데 거기에 다녀오면 저절로 머리는 식겠네요.”
“고마워요, 정우씨. 이번에 신세 지게 되네요. 안 잊을게요.”
팀장이 말했다.
잘 하는 일인가 몰라.
============================ 작품 후기 ============================
워우!! 쿠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