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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야
아메 류아는 나중에 어떤 보석이 될지도 모르는 원석이랑 같은 존재였다.
원석을 실제로 보지 않은 사람은 이 표현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원석은 정말 보잘 것 없는 게 많아서 이 표현이야말로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이 이야기가 원래 기승전 아메 류아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류아의 얘기를 너무 많이 써 버렸군.
그러고 보니 다른 얘기는 뭐. 내가 화장지를 얻기 위해서 세우고 박고 찌르다가 쌌다는 얘기로 정리가 된다.
초야 축제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남은 방들을 돌아다녔고 여자들의 순결을 거두었다. 여자들은 처녀혈을 닦은 수건을 꼭 쥔 채 자기들이 마을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마쳤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 같았다.
전통은 때로 멍청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멍청하다고 해서 반기를 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나 그렇게 폐쇄적인 지형에 만들어진 마을에 살면서 그러기란 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가 끝나고 우리는 온천 여관을 떠났다.
여자들은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했고 드디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을 했다.
그 여자들에게도 그 축제가 큰 부담이었던 듯, 아니, 그보다는 순결이 더 큰 부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축제가 끝난 후의 모습은 더할 수 없이 가볍고 평화로워 보였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코야를 다시 보지는 못했다.
코야로부터 연락을 받기는 했다.
나는 초야 축제 취재를 하지 못해서 안 됐다는 얘기로 코야를 위로했고, 코야는 내가 자기 부탁을 듣고 거기까지 와 준 것에 대해 너무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는 왠지 그 마을이 코야에게는 애증의 대상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게 맞았다는 게 증명되었다.
코야는 스스로 마을을 떠났지만 그 후로는 돌아올 수가 없었다며 만약 마을에서 받아들여주기만 한다면 코야는 돌아오고 싶을 거라고, 아메 류아가 말해 주었던 것이다.
코야가 마을을 떠난 이유에 대해서도 들었다.
코야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코야는 그 남자에게 순결을 주고 싶어했지만 코야의 순결은 마을 장로들이 정한 이방인이 가져가야 한다는 결정 때문에 코야가 마을을 떠나버렸다고 했다.
그때 코야가 좋아했던 사람은 코야와 함께 떠나지 않았고 지금은 그 사람이 온천 여관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한다고 했다.
내가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은 그 남자를 볼 일이 없었지만 그곳을 떠날 때 산으로 올라오는 차 한 대를 보았고, 그 안에 탄 중년의 남자가 온천 여관의 관리인인 것 같다고 추측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
내 옆에는 아메 류아가 같이 타고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서의 생활을 정리할 시간이 단 며칠이라도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류아는 정리할 삶 같은 건 없고 새로 시작할 삶만 있다고 말했다.
마을은 뒤도 돌아보기 싫은 것 같았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은호 형은 선물을 내 놓으라고 징징거렸고 나는 자신만만하게 아메 류아를 은호 형에게 소개했다.
“…….”
은호 형은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류아가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몸으로 말을 해 왔다.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
“휘트니스 센터에서 관리시켜봐요. 장담하는데 류아라면 답 나와요. 그 다음에 중요한 자리에 앉혀 놓으면 그림이 나올 거예요.”
“아아. 살을 빼게 하고 일을 시키라고?”
은호 형도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스캔에 들어갔다.
류아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작고 이목구비는 뚜렷해서, 지금 상태에서 살만 빠진다면 그렇게 우월한 조건을 가진 여자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좋은 몸이 나올 거였다.
“개인 트레이너가 붙긴 해야겠는데."
은호 형은 류아를 보면서 이미 견적을 내 보고 있었다.
"개인 트레이너 붙여서 몇 달간 빡세게 돌리면 진짜 뭐가 나오긴 나오겠다."
은호 형은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 말인지 애매하게 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람 있어? 개인 트레이너중에. 여자로.”
은호 형이 물었다.
“네. 있죠.”
나는 기억의 저 밑바닥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머슬 퀸을 떠올렸다.
내 제자의 여자가 되어버리신 그 분.
“네가 책임지고 영입할 수 있는 거지?”
형이 물었다.
“아, 그…게.”
머슬 퀸은 원래부터 내말은 잘 들어먹지를 않아놔서.
“시끄럽고. 그렇게 하는 거다.”
은호 형은 이제 아주 대놓고 류아의 몸을 훑었다.
“혹시 네 어장에 있는 애냐? 그러면 네 어장에서 놔 줄 생각있냐?”
은호 형이 귓속말로 물었다.
“미안해서 어쩌죠? 안 될 것 같은데.”
근육을 만들고 지방을 커팅했을 때의 아메 류아가 상상돼 버렸고, 더군다나 류아가 명기라는 것을 알아버렸는데 어장에서 놔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선은 형이 데리고 있으면 일 좀 가르쳐줘요. 잘 할 것 같죠?”
은호 형은 갑자기 자기한테 아이미와 류아까지 떠넘겨지는 바람에 죽는 소리를 했지만 두 사람은 곧 은호 형의 손이 갈 필요도 없이 똑부러지게 자기 몫을 다 해냈다.
덕분에 나는, 두 사람을 스카웃한 사람이 나라면서 두고두고 은호 형에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
***
일본에서 돌아온 나는 은호 형만 보고 나서 보무도 당당하게 연우의 회사로 가 연우를 기다렸다.
연우는 같은 팀 사람들과 마침 로비로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얘기를 하면서 웃어댔지만 연우는 얘기에 관심이 없는지 혼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았다.
다른 사람이 연우에게 요즘 힘이 없어 보인다며 무슨 일 있냐고 묻자 연우는 그냥 억지로 한 번 웃어보이고는 작게 한숨을 쉬고 또 한 번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나는 멀리서 오고 있는 연우의 실루엣을 훑었다.
그리고 내 아래쪽에 반응이 오는 것을 살폈다.
천천히 반발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 자식이 끝내 나와 연우를 배반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더이상 발기가 진행되면 그건 또 그것대로 난처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발기 상태가 풀리도록 잠깐 딴 생각을 했다.
연우는 사람들과 약간 거리를 둔 채 걸었다.
저래가지고 직장 생활 제대로 하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서도 나 아닌 사람들과는 웬만해선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연우의 모습에 속으로 흡족해하면서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 내가 아버지와 같이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던 연우의 팀장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다가오며 인사를 했고 나도 인사를 했다.
팀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를 소개했고 사람들은 일제히 인사를 건네왔다.
뒤늦게 나를 발견한 연우는 입을 삐죽거리고 나를 흘겨 보았다.
“서방님 보고 겨우 그런 얼굴밖에 못 하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연우에게 다가가 연우의 귀에 대고 귓속말로 말하자 연우의 귀가 빨개졌다.
팀장과 팀원들은 연우를 놔두고 먼저 올라갔고 나는 연우의 손을 잡았다.
“언제 끝나? 올라가 봐야 돼?”
“일은 다 끝났어요.”
연우가 말했다.
“그래? 그럼 가자.”
“어디예요?”
“집이지 어디야?”
“나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네.”
연우는 단단히 서운했는지 여전히 삐죽거리면서 말했다.
“에에에이. 이 싸람이!! 내가 어떻게 너를 잊냐? 장난하냐?”
연우의 볼을 잡아 흔들며 말했다.
“말이나 못하면!! 그런 사람이 전화 한 통도 없어요?”
“산이라 안 터졌어."
"산에는 왜 갔는데요?"
"온천이 산에 있어서. 아까 계속 스마트폰 본 게 오빠 연락 기다린 거야?”
온천엔 누구랑 간 거냐는 질문이 예상돼서 내가 먼저 물었다.
“아니거든요? 배터리 얼마나 남았나 본 거거든요?”
“알았으니까 가자. 보여줄 거 있어.”
“뭔데요?”
“말로 하면 몰라. 보여줘야 되는 거야.”
연우는 커피숍에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 위로 올라갔고 나는 연우를 기다렸다.
막상 연우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도 내가 뭔가를 꺼내서 보여주려는 것 같지 않자 연우는 조금 실망한 듯이 보였다.
나는 개의치않고 욕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오빠 먼저 씻고 나올게.”
“네.”
흐흐흣. 기다려라. 이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