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142화 (14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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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프롤로그

수려한 용모의 세련된 젊은 정치인이 밖으로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한꺼번에 그를 향해 달려가 보이스 레코더를 들이밀었다.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오늘은 무척 고된 하루였습니다."

공화당의 차기대권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레이널드가 어렵사리 기자들을 피해 나오자 그의 옆으로 해밀이 다가왔다.

"인기는 여전하구만."

해밀이 웃으며 말했다.

레이널드는 해밀의 표정을 살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다녀도 해밀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해밀은 자기 스스로 왕이 될 수는 없는 사람일지 몰라도 한 사람이 왕좌에 오르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힘은 가진 사람이었다.

해밀의 눈 밖에 났다가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밀."

서른 여덟의 레이널드는 일흔이 넘은 선배 상원의원 해밀의 앞에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나이가 무색하게 잘 관리된 해밀은 레이널드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레이널들의 목과 자신의 목이 거의 닿도록 마주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늘이야.”

“예?”

“내가 전에 말했잖아. 재미있는 파티에 데려가 주겠다고.”

“아…. 해밀. 말씀은 감사하지만 오늘은.”

“그래. 만나봐야 할 사람들이 많겠지. 부족한 정치자금과 표를 주는 사람들. 하지만 레이널드. 하나님조차도 엿새를 일하시고 하루는 쉬셨어. 닥치고 가자고.”

“아…. 네. 해밀.”

비록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남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레이널드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보좌관을 불렀다.

그리고 자기가 만나야 할 사람들에게 정중한 사과의 말을 전해 달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언젠가는그 사람들이 자기발 앞에 꿇어 엎드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그 사람들의 돈줄이 끊기면 어려울 일이 많았다.

해밀은 그런 레이널드의 얼굴을 보면서 웃었다.

“레이널드. 내일은 그 사람들이 그다지 우러러 보이지 않을 거네. 오늘 내가 데려간 파티에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본다면 말이야.”

해밀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전용기와 헬기를 갈아타고, 그러고 나서도 리무진을 타고 삼십 여분을 더 가서야 해밀과 레이널드는 한 저택에 이르렀다.

레이널드는 자기가 만나게 될 사람들이 누구든 간에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꼬리 오백개는 달린 것 같은 해밀이 그 먼 거리를 입다물고 쫓아올 이유가 없었을 테니 말이었다.

도로밖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곳에 고성 같은 대저택이 있었다.

자이언트세콰이어 나무가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레이널드와 해밀이 탄 리무진은, 아래쪽이 집게처럼 갈라져서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것 같은 형상의 자이언트세콰이어의 아래를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 저택은 처음부터 그 나무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이 설계된 것 같았다.

아무리 고개를 뒤로 꺾어도 나무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저택에 이르기 전에, 쓰러진 나무가 보였다.

레이널드가 놀라워하자 해밀이 웃었다.

“자이언트세콰이어는 위로 엄청나게 자라는데 뿌리는 깊게 자라지 않아서 종종 저렇게 쓰러진다지.”

“철학적이네요.”

“그래. 상징적이기도 하고.”

“저렇게 큰 나무가 저택 쪽으로 쓰러지면 어떡하죠?”

해밀이 물었다.

“걱정말게 충분히 거리를 두고 지었으니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더 자라지 않나요?”

“해가 될 것 같으면 자르겠지. 자네가 걱정할 일은 아닐 것 같은데?”

그 거대한 나무들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리무진이 대저택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현관에는 고급 리무진과 수퍼카들이 세워져 있었다.

거물급 재력가의 차고를 개방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레이널드는 살짝 주눅이 들었다.

왠지, 자기와는 격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해밀은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들이 차에서 내리자 반백의 머리에 왁스를 발라 넘긴 세련된 집사가 나와서 그들을 안내했다.

해밀과는 이미 여러 차례 안면이 있는 듯 서로가 이름을 부르고 고개를 가볍게 까딱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집의 내부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피라미드를 거꾸로 붙인 것 같은 대형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천장에 붙어 있었고 대리석과 오크목으로 꾸며진 내부는 격조높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레이널드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홀에 압도되었다.

“턱 빠지겠네, 이 사람아.”

해밀이 레이널드의 등을 탁 치면서 웃었다.

“아. 네.”

레이널드는 2층으로 올라가는 아치형 계단과 벽면을 장식한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액자가 여섯 개나 줄 지어 걸려 있었지만 정작 그림이 채워진 것은 마지막에 있는 하나뿐이었다.

거기에는 침대 위에서 자신의 연인에게 발목 하나를 잡힌 채 바둥거리면서 연인을 보고 웃고 있는 여자와, 여자의 발목을 붙잡고 일어나며 막 그 위로 튀어오르려는 젊은 남자의 나신이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물 위로 튀어오를 것처럼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여자의 미모도 훌륭했지만 행복에 차 오른 그 표정에 자꾸만 눈이 갔다.

행복이라는 말을 정의해 보라고 하면 바로 저것, 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었군요.”

거실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오며 말했다.

동양인의 얼굴을 보고 나이를 가늠하는 것은 레이널드에게 아직도 어려운 일이었다.

삼십 대 안팎이나 사십 대 안팎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레이널드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먼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설마 이 젊은 남자가 이런 대단한 곳의 호스트인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레이널드가 해밀을 바라보자 해밀이 웃음을 지었다.

“레이널드 챈튼입니다.”

“갈 현입니다.”

“카아알인?”

레이널드가 남자의 이름을 따라서 발음해 보려 애쓰며 되물었다.

“갈 현. 내 이름을 똑바로 발음한 사람을 이곳에 와서 본 적이 없죠. 그냥, 카린이라고 부르십시오.”

“카린요. 그렇군요. 성은요?”

레이널드의 말에 해밀과 카린이 동시에 웃었다.

“카린은 그의 성과 이름이네. 성과 이름을 붙여 부른 게 카린과 비슷해서 카린이라고 부르는 거야. 나도 그의 성과 이름을 지금까지 제대로 발음을 못 해.”

해밀이 웃으며 말했다.

“아아. 그럼. 친해지면 뭐라고 부르면 되나요? 이름이 뭐라고 했죠?”

레이널드가 정치인답게 살갑게 묻자 카린이 웃었다.

“친해질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내 이름을 다시 들을 필요도 없겠죠.”

표정만 봐서는 굉장히 친근한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가 한 말은 냉정했다.

혹시 자기가 실수라도 한 건가 하고 해밀을 힐끗 바라보자 해밀도 무표정한 얼굴로 레이널드를 외면했다.

그런 반응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다.

레이널드는 자기가 호스트에게 농담을 할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레이널드는 세 명의 남자들이 주방을 향해 빠른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다가 놀란 얼굴을 했다.

미슐랭 쓰리 스타에 빛나는 레스토랑의 셰프로 각종 저작 활동과 TV출연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리키 그린이 그곳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저…. 저….”

레이널드가 말하자 카린이 웃었다.

“급하게 마련된 자리라 믿고 일을 부탁드릴 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만찬은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리키 그린을 오라 가라 해서 정찬을 준비시킬 수 있다는 건지 레이널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리키 그린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고만 해도 한 달 전에 예약을 해 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리키 그린을 직접 불러서 파티 음식을 준비시키다니.

카린은 어느새 사라졌고 집사가 레이널드를 다른 손님들에게 소개를 시켰다.

놀랄 일은 이미 다 겪은 거라고 생각했던 레이널드는 한 번 더 턱이 빠지는 상황을 견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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