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163화 (16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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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버킷 리스트

허벅지와 이두, 삼두가 너무 커지면 그건 또 그것대로 징그러울 것 같았는데 내가 원하는 선에서 근육이 성장을 멈췄다.

그 상태에서 운동을 계속해 나가니 근육이 점점 더 세밀하게 쪼개져 들어갔다.

바디빌더처럼 이제 내가 근육을 쥐어짜면서 모스트 머스큘러 포즈를 취하면 그럴듯한 그림이 나온다는 말씀.

핫 걸은 홀린 듯이 내 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내 몸을 느꼈다.

굵은 혈관.

돌같은 이두근.

선명한 줄무늬를 가진 대퇴.

나는 핫 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핫 걸이 최상의 육질을 느낄 수 있도록 각 부위가 부각되는 포즈를 취해 주었다.

삼두와 흉두, 전완근까지 두루두루 꼼꼼하게 만져보고 핫 걸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되려면 세상에. 운동을 얼마나 한 거예요? 정스 짐은 그냥 눈가림 용으로 운영할 줄 알았더니 제대로 하려는 건가보네요?”

핫 걸이 말했다.

역시 핫 걸이었다.

핫 걸은 내가 정스 짐을 남겨둔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헛짚은 거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까지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핫 걸 말고는 없었다.

“포징도 할 수 있어요? 모스트 머스큘러 포즈나 더블 바이셉스 같은 거. 그런 거 멋지던데.”

“지금 우리 데이트 하는 중 아니거든?”

내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포즈를 취하면서 근육 자랑을 하고 싶은 걸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아! 맞네. 아참. 아. 근데 이거 생각난 김에. 얘기해 줘도 돼요? 들어두면 임정우씨한테 도움이 될 텐데.”

핫 걸이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나는 잠깐 갈등하다가 말해보라고 말했다.

“아메 류아 있잖아요. 잘 관리해 두면 좋을 거예요. 지금까지 사이가 안 좋았으면 사과도 하고 잘 지내 놓는 게 좋을 거라고요. 미국 ABC 캐스팅 디렉터가 한국에 휴가차 놀러왔다가 정스 짐 프로토 샵에 구경 간 일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아메 류아를 보고 푹 빠진 것 같더라고요. 아메 류아는 일본인이잖아요. 미국 방송에서는 일본 배우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있고. 일본 자본 때문에요.”

“그래서? 류아를 캐스팅할 수도 있다고? 류아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데?”

“영어는 미리미리 가르쳐 놓으세요. 우선은 대사 많지 않은 단역으로 캐스팅 될 확률이 높아요.”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뭘 그렇게 놀라요? 충분히 그럴만 하잖아요. 역대급 프로필인데. 키도 크고 날씬하고 얼굴 작고 예쁘고 섹시하고 짜증나고.”

“짜증나?”

“한 인간한테 그렇게 모든 좋은 요소가 몰빵되면 짜증나죠.”

핫 걸이 말했다.

“…류아한테 가능성이 있다고 봐? 단역으로 캐스팅되고 그냥 끝나버릴 수도 있는 거잖아.”

“내 생각에는 그렇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자기들끼리 류아 사진을 돌려보고 ABC에서는 지금 상당히 얘기가 진척됐거든요. 류아 인지도를 어느 정도 높이고 장기간 계약하려는 시도도 곧 나올 거예요.”

핫 걸이 그 정도 확신을 가지고 얘기를 한다면 정확도는 믿어도 되는 정보라고 생각했다.

“얼굴만 가지고? 연기력은 안 본대?”

나는 여전히 의구심이 들어 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근데 키샤에서 그런 것까지도 알 수 있는 거야?”

“키샤라서 안 게 아니라 나라서 안 거죠.”

“아아.”

“어머. 안 믿나보네.”

“아니야. 믿어.”

“그러니까 결론은. 아메 류아한테 미리미리 잘 해 놓으라고요. 아, 그리고 코야 리코하고 싸운 일 없죠?”

“코야 리코도 알아? 내가 어떤 사람들 만나고 다니는지 다 아는 거야?”

핫 걸이 다방면에 걸쳐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핫 걸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새롭게 놀라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코야 리코 작품이 어마어마한 돌풍을 일으킬 거예요. 작품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물밑에서 거래가 이루어졌거든요. 배경을 마카오의 한 카지노 호텔로 잡을 건데 작품의 돌풍과 맞물려서 호텔이 완공될 거예요. 그 정도 금액은 홍보비용으로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이라 그 작품을 엄청나게 밀어줄 거예요. 사재기를 할지 평론가를 매수할지 데이터를 조작할지 그건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어쨌건 코야 리코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건 이제 시간 문제가 될 거예요. 코야 리코의 인기랑 카지노 대부의 돈이 맞물려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거죠.”

“하….”

“그리고 이건 아직 내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인데. 코야 리코의 작품에 늘씬한 일본 미녀가 나오거든요?”

“아메 류아요?”

“코야 리코의 작품은 영화화 얘기가 지금부터 솔솔 나오고 있는데 신데렐라가 누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아메 류아가 그때까지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는다면.”

“헐. 두 사람은 같은 마을 출신이예요.”

“알아요. 코야 리코가 아메 류아를 모른 척 할 이유가 없겠죠. 모른 척 하고 싶어도 모른 척 할 수가 없을 걸요? 아메 류아는 코야 리코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있잖아요. 코야 리코가 지키고 싶어하는 사생활이라든지 처녀들의 초야 축제라든지 하는 것에 관해서요.”

“세…상에!!”

“사람 인생은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거든요. 그 여자들이 모두 임정우씨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알면 더 신기하죠?”

“그것도 캐고 다녔습니까?”

나는 어느새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문득문득 핫 걸이 무서워지는 것이다.

지금 비록 핫 걸이 나한테 묶여있는 신세라고는 하지만.

“여당 중진 의원 아들이 마카오 카지노호텔에서 안 좋은 사람들이랑 어울렸다가 감금돼 버렸더라고요. 거기에서 카지노를 하다가 돈을 많이 잃었는데 믿으면 안 될 사람한테서 돈을 빌린 거예요. 아버지가 중진 의원인 거지 정작 그 사람은 그냥 무직자였고 돈 갚을 능력이 안 되니까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잡힌 거고요.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면 난리가 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자기가 어떤 사람들한테 잡힌 건지 제대로 깨닫게 됐고, 뒤늦게 아버지한테 말해서 돈은 갚았는데 그 사람들은 상대가 거물인 걸 알고 애를 풀어주지 않고 계속 협박을 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나섰던 거고.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걸 많이 알게 됐죠. 내가 알아낸 게 그거고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의미없는 정보의 쪼가리였겠지만 그 쪼가리를 짜맞추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이 나의 손에 정보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그 정보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거죠. 아하하하하.”

핫 걸은 흐뭇하게 말했다.

나도 인정!!

“그런데 그게 키샤가 나서도 되는 일이었어요?”

내가 물었다.

“존재하지 않는 걸로 돼 있는 조직이 필요한 건 대략 그런 때를 위해서인 거죠.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일에 우리 힘을 빌려줬으니까 앞으로 우리가 우위를 점할 수도 있고요. 그 사람 입김이 작용하기만 하면 쉽게 될 일들이 많거든요. 예산 편성 문제나 권한이나.”

“……근데 그런 것까지 일일이 나한테 얘기해 줘도 되는 거예요?”

“키샤 정식 요원이 아니면 이런 걸 알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왜 나한테 얘기해요?”

“헤드 헌팅이라고 생각하세요.”

“예?”

“지금 바로 뭘 하라는 건 아니고. 일단 학업 마치고나서 진로를 생각할 때 키샤를 염두에 두는 정도면 돼요.”

“아…….”

갑자기 너무 많은 얘기가 오가는 바람에 나는 얼떨떨해졌다.

“혹시 이번에 나갔다온 게 그 일 때문이었어요?”

“노 코멘트.”

“아…. 그럼 혹시.”

“노 코멘트.”

“아. 네.”

중진 의원 아들을 잡아놓고 협박을 했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됐을지 왠지 상상하고 싶지 않아졌다.

내가 핫 걸을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은 나의 대단한 착각이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오르면서 막, 내가 핫 걸에게 해 놓은 짓이 무서워지는…, 그딴 건 없고 나는 갑자기 흥분이 되면서 몸이 달아올랐다.

사채업자 비슷한 놈들의 소굴로 들어가서 자기가 가진 무기를 들고 종횡무진 누비다가,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놈을 구해나오는 핫 걸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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