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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벌 프로젝트
은호 형과 나는 그곳에서 은 과장님의 오빠라는 분을 쉽게 알아보았다.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는 외모였다.
은호 형이랑 나는 그 분이 멀리 서 있는 걸 보고서 둘이서 서로 마주 보고 진짜 은 과장님이랑 똑같이 생겼다고 말하며 웃었다.
우리는 예약을 하지 않아서 레스토랑에 들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안은 너무 한산했고 자리의 70퍼센트 이상이 비어 있었다.
홀을 책임지는 웨이터들은 의욕이 없어 보였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뭔가를 요구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여러 번 헛수고를 해야했다.
그건 고객 입장에서 굉장한 수모였고 짜증이 났다.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절대 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은 과장님의 오빠는 달랐다. 그 분은 직접 홀을 돌면서 불편한 것은 없었는지, 요리가 입맛에 맞았는지를 챙겼다.
은호 형이 약간 까다로운 질문을 하고 불평을 했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그 분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친절하게 대답했다.
좋은 사람 같았지만 아랫 사람들에 대한 통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한 사람이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었다. 한 사람이 조직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할 수는 없었다.
나와 은호 형은 그 분의 실수가 거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거기에서는 홀 서빙을 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는데 은호 형은 내가 거기에 지원을 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은호 형은 이 경험이 앞으로 내 경력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기술을 습득하는 문제 때문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여러 입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거였다. 위에 있는 사람은 위에서 문제를 바라보지만 아래에 있어보면 그 문제가 아래에서 보인다는 얘기였다. 그 말에 나는 은호 형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한 달동안 일을 하기로 계약을 했지만 나는 일주일을 넘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계약서는 은 사장님과 썼지만 내 실질적인 우두머리가 된 사람은 홀 메니저였다.
홀 메니저는 리얼 그릴을 구렁텅이로 빠뜨리기 위해서 누군가로부터 사명을 부여받고 그곳에 있는 것처럼 모든 일을 망쳤다.
손님들과 언성을 높여서 싸우는 일도 다반사였고 고압적인 자세로 사람들을 낮춰 보았다.
그거야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홀 매니저는 정도가 심했다.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매순간 나를 차별했다.
리얼 그릴의 사장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그건 좀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상사를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고 존경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리얼 그릴에서 일해본 며칠 동안, 리얼 그릴이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
가라앉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 문제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리얼 그릴이 시간을 갖고 가라앉느냐, 급속히 가라앉느냐의 문제 뿐이었고 시간을 갖고 가라앉는다고 해도 은 사장님이나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전혀 없었다.
내가 리얼 그릴에서 일주일 정도 시간을 보냈을 때 다시 미국으로 온 은호 형과 함께 나는 결단을 내렸다.
우리는 은 사장님에게 우리 정체를 밝혔다.
은 사장님은 많이 당황한 모습이었고 우리가 하는 말을 힘들게 들었다.
자기가 정성을 들여서 키워온 업체에 대해서 그런 평가를 들으면서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을 거라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었다.
은호 형은, 리얼 그릴에 만연해있는 불친절함과 권위 의식 같은 것들이 한 번 온 손님들의 발걸음을 영원히 돌리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은 사장님은 거기에 대해서 동의했다.
자기가 아랫사람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인정했고 자기가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편견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의 생각은 리얼 그릴을 폐쇄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부분에서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게 뭐라고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나는 리얼 그릴이, 어떤 부분에서 힘을 받기만 하면 정상적으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은 사장님이 우리에게 내 준 저녁 식사 후였다.
은호 형과 나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은 사장님은 분명히 잘 될 수 있었고 성공할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암초에 걸렸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은 사장님을 우리 힘으로 일으켜 준다고 하면,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 분은 같은 암초에 걸려서 다시 좌초될 분이었다.
그 분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다.
“저 분은 주방의 총책임자로는 적격일지 몰라도 레스토랑 경영에는 안 맞는 분이었던 거야. 너무 많은 책임이 주어졌고 거기에서 지쳤어. 그래서 자기가 원래 잘하고 좋아했던 분야에서도 빛을 잃었고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면서 자신감도 잃은 것 같아.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레스토랑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전문 경영인이 있다면 리얼 그릴에도 방법이 있을지 모르지.”
은호 형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어느 순간 이지도 대대장님을 생각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은수 형의 얘기를 들어 보면 대대장님은 더 이상 진급이 어려운듯했고 거기에는 당번병이 일으킨 문제도 영향을 끼친 듯했다.
대대장님이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책임도 피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은수 형은 지나가는 말처럼 자주, 대대장님이랑 둘이서 같이 조그만 가게나 하면서 조용히 살까보다는 말을 했었는데 대대장님이 전문 경영인은 아니지만 대대장님과 은수 형이 여길 맡아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면서 사라지질 않았던 것이다.
내가 마침내 그 얘기를 꺼내자 은호 형은 자기도 잠깐 대대장님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기는 했다고 말했다.
대대장님이 가지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할 거고, 가라앉아 가는 이곳에서 키를 단단히 잡아줄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우리 은수는 홀 매니저를 시키자.”
그림이 잘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안 될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당사자들의 생각은 알아보지도 않고 우리끼리 으쌰으쌰하기는 했지만 일단 그 자리에 믿고 앉힐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리얼 그릴의 리바이벌 프로젝트에 박차가 가해졌다.
은호 형은 정스 짐과 체리 핑크, 그리고 아메에 산적한 현안 때문에 일단 급하게 서울로 돌아가야 했고 서울에 돌아가서 대대장님과 은수 형을 설득하는 일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현지에서의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내가 시작한 일은 리얼 그릴에 해가 되는 사람들을 해고하는 것이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리얼 그릴에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일단 해고했다.
은 사장님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렇게 다 자르기만 해서 뭘 어쩌려고 그러는 거냐고 했고 나는 그때를 위해서 생각해 두었던 히든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어도 자기 손을 움직일 생각이 없는 셰프들을 주방에 두는 것보다는 여기에서 기회를 잡아보고 싶어서 혈안이 된 사람들한테 자리를 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제 말씀을 믿어보세요."
나는 미국으로 가기 전에 내 고등학교 친구 최근도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수소문을 해 두었다. 내 베스트 프렌드였지만 게이였던. 그래서 나까지 게이라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나와 거리를 두고 돌연 미국으로 떠나버렸던 친구였다.
나는 근도가 미국의 유명한 요리학원에서 수강을 하고 셰프가 되기 위해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유의 내성적인 성격과, 다급한 상황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문제 때문에 근도가 번번이 기회를 놓쳐서 아직 주방 보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근도를 생각한 것은, 외부적인 이유 때문에 정작 실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이 근도 하나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그곳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근도에게 연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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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화 추천 50되면 다음화만들게요.ㅋ
합리적 직무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