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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벌 프로젝트
“로마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은데요? 자기가 위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역시. 그렇게 보이죠?”
베니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집은 주인이나 강아지나 똑같이 귀여웠다.
한숨짓고 찌그러지는 표정도 비슷했다.
“뭐 좀 마실래요?”
베니타가 물었다.
나는 베니타가 호텔 라운지에서 칵테일 만드는 일을 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아! 이거 하면 안 되는데.”
베니타가 잔과 바틀을 잔뜩 가져오며 말했다.
“왜요?”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혼자 감을 잡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너무 멋있어서 보고 반할지도 모르는데?”
그러면서 베니타는 능수능란하게 칵테일을 만들어 내 앞에 잔을 밀어 주었다.
“근데 지금은 왜 안 해요? 일 잘 했을 것 같은데.”
보드카를 섞은 칵테일이 입맛에 맞아 제법 빠른 속도로 들이키면서 내가 물었다.
“아아. 짤렸거든요.”
베니타가 쾌활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쾌활하게 대답해도 되는 건가? 할 정도로.
“칵테일 블렌딩은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는데 술 마시러 온 인간들 상대해주는 건 잘 못하겠더라고요. 어떤 인간이 와서 내 앞에 앉아서 계속해서 그러는 거예요. 여자야, 남자야?”
“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정말로 그랬다니까요? 여자야, 남자야? 그래서 그랬죠. '그러게요. 여잘까요, 남잘까요.' 그 정도 해 줬으면 그냥 닥칠 것이지 이 인간이 계속 하는 거예요. 가슴을 보면 분명히 남잔데! 그러면서 고추가 있냐고 없냐고. 정상인처럼 보이던데. 미친 새끼가.”
우.크.
웃으면 안 되는데 베니타의 가슴을 본 적이 있던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혈안이 되었다.
“음…. 그런 건 가만 놔두면 안 되겠네요.”
가까스로 수습을 하고 내가 말했다.
“그래도 손님이니까 처음에는 기분 좋게 대해줬죠. 근데 이 새끼가 고추를 보여 달라는 거예요. 아니. 미친 새끼가! 내가 여자라는 걸 알고 고단수로 그러는 건지. 하여간 계속 그러더니 나중에는 저속한 농담을 하는데 그냥 내가 순간적으로 너무 빡쳐서 그 인간을 때렸어요.”
“헉. 어딜요?”
“따귀요.”
“아!아!”
“그랬더니 이 새끼가 지랄발광을 하고 사장이 '너 해고!' 이렇게 된 거죠. 아, 내가 왜 그런 인간 때문에! 근데 뭐. 차라지 잘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날 끝냈으니까 그냥 따귀 때리는 걸로 끝냈지 안 그랬으면 고추에 불 붙여 버렸을지도 몰라요.”
나는 바텐더의 불쇼를 떠올리며 베니타가 능히 그럴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식탁 앞에 얌전히 앉아 칵테일을 마셨다.
까불지 말아야지.
“으으으으음. 이거 진짜 좋네요.”
“마음에 들어요?”
베니타가 씽긋 웃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별로 표정이 없는 것 같더니, 자기 분야에서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만난 여자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약하고 볼품없었을지 몰라도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세워놓은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갔고 어느 순간에 그 목표에 다가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루어가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베니타의 표정을 익숙하게 느꼈고, 내가 갑자기 튀어올라 베니타의 입술에 입을 맞춘 데에는 그런 그리움 같은 배경이 깔려 있었다.
베니타의 입술에 입을 가져다대는 순간 나는 좆됐다, 라고 생각했다. 내 고추에 불 붙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동안 들었고. 하지만 베니타는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잠깐만요.”
베니타나가 말했다.
“아. 미안해요.”
내가 말하자 베니타가 웃었다.
“씻고 나서 해도 되죠? 잠깐 기다려줄 수 있죠?”
베니타가 말했다.
나. 마성의 매력이라도 있는 건가?
왜 나를 거절하는 여자들이 없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한가롭게 하면서 나는 씨익 웃었다.
“괜찮으면 같이 씻을까요?”
“네. 괜찮으면요. 그런데 안 괜찮아요.”
베니타가 말했다.
“네.”
그렇게 말하고 나는 베니타 앞에서 옷을 벗었다.
베니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저 씻으려고요? 욕실은 하나뿐인데.”
“같이 씻지는 않고. 씻는 동안 같이 있는 건 괜찮죠?”
“괜찮을 리가 없죠.”
베니타가 말했다.
나는 또 고개를 끄덕였고 베니타는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걸로 아웅다웅하지 말고 빨리 씻죠. 땀을 많이 흘렸어요.”
나는 베니타가 만든 칵테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바지를 벗고서 욕실로 향했다.
베니타는 터덜터덜 욕실 앞으로 따라 오더니, 내가 다 씻고 나오면 들어오겠다고 말했다.
내가 안에서 오래 버티면 베니타가 들어올 줄 알았지만 베니타는 내가 예상한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같이 씻는 건 싫은가보다고 생각하고 나도 결국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기로.
베니타의 가슴은 소주잔 엎어 놓은 것보다 조금 더 크다. 그게 베니타의 컴플렉스여서 나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베니타의 가슴은 그동안 내가 봐왔던 어떤 빈유보다도 더 조그만 가슴이어서 나는 오히려 거기에 더 호기심을 느끼고 흥분되고 있었다.
내가 나와서 몸을 닦고 로마와 노는 사이에 베니타는 욕실에 들어가 후다다닥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왁스를 발랐던 머리를 감고 드라이어로 말리고 나와서, 머리는 내가 처음에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앞으로 흘러내렸다.
베니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한테 술 시합을 걸어왔다.
자기가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한테든 술로 져 본 적은 없다면서.
그래서 이기면 뭘 해 줄 거냐고 하자 베니타는 내가 원할 때 아무 때나 와서 자기한테 칵테일을 만들어 달라고 할 기회를 열 번 주겠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혹할만한 조건.
“취직하고 나면 안 돼요. 그때는 일하는 시간을 피해서 와야 돼요. 그런데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걸요?”
베니타는 여전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쪽이 이기면 나는 뭘 해 줘야 됩니까?”
“어. 로마 씻겨주기?”
“뭐야. 나한테 사귀자고 몸부림치는 거네. 누가 이겨도 우리는 계속 만나야 되는 거잖아요.”
내가 말했다.
“어머. 보기보다 똑똑하시네요?”
“내가 멍청하게 생겼나봐요?”
“어머. 그 말도 알아듣고.”
베니타는 되는대로 말을 해 대면서 칵테일을 만들었다.
능숙하게 블렌딩을 하는 베니타의 모습은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해 보면 안 되겠냐고 했다가 곧바로 거절당했다.
“장난삼아 했는데 내가 그쪽보다 더 잘할까봐 걱정돼서 그러죠?”
“재미있는 말이네요.”
그러면서 베니타는 두 잔을 만들어서 내 앞으로 한 잔을 밀어주고 자기도 한 잔을 끌어당기며 어서 맛을 보라고 말했다.
“으으음. 맛있네요.”
술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더 구체적으로 다른 품평이 나오지는 않앗다.
으으음, 이라고 하거나 으으으으음 이라고 하거나 그 차이 뿐이었다.
“나중에는 내 가게를 하나 내고 싶어요. 그래서 내가 만든 칵테일을 선보이는 거예요. 칵테일 이름도 내가 붙여서. '킥 더 도어'나 '위드 로맨틱 마피아'나.”
“잘 될 것 같네요. 가게 내면 나도 자주 갈게요.”
베니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베니타의 말을 들어 주었다.
베니타는 술에 취한 후에도 칵테일을 만드는데는 무리가 없었고. 오히려 술에 취한 후에 나온 칵테일이 더 맛있었던 것 같았다.
“어. 이건 꽤 괜찮은데요?”
라고 내가 말했을 때 베니타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자기가 방금 뭘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비극이.
베니타는 점점 취해갔고 나는 베니타에게, 우리 사이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베니타에게 다가갔다.
“오늘 여기에서 자고 가도 돼요?”
베니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장엄하게 끄덕이다가 고개가 완전히 바닥에 처박혀 버리기는 했지만.
나는 대충 그곳을 정리하고 베니타를 침실로 옮겨갔다.
============================ 작품 후기 ============================
쿠폰을 많이 주셨네요. 아까 봤을 때 열 다섯 분이 넘어서 깜놀. 감사합니다~^^
추천과 코멘트 주시는 분들도 늘 감사합니다~
잠 안 들면 자정에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