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184화 (18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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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벌 프로젝트

"라운지바에 오는 사람들은 인맥을 넓혀보려는 목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 라운지 웨이터는 각 사람들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아두고 있다가 그 사람 정보를 그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는 사람한테 전해주면서 소개해 주는 게 중요한 일 중에 하나고. 그런데 베니타가 그걸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반박을 못하게 만드는 근도의 말 한 마디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베니타 얘기까지 꺼낼 필요는 없었던 것 아니냐고 따지려고 하는데 뜻밖에도 나를 구해준 사람은 은 사장님이었다.

“하긴. 모든 사람이 전부를 다 잘할 수는 없는 거니까. 베니타라고 했나요? 정우씨가 믿고 추천을 한다면 한 번 만나보도록 하죠. 면접을 준비하라고 전해주세요. 근도씨가 말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꼭 베니타가 아니라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몇 명 떠오르거든요. 이제는 리얼 그릴도 전처럼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도 아니고 인원이 많이 충원이 됐으니 한 번 활용을 해 봅시다. 정우씨말이 일리는 있어요. 시도는 해 봅시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나는 내 뜻을 받아준 은 사장님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제 베니타가 내 기대에 부응해주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베니타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베니타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자기가 리얼 그릴의 라운지바를 맡아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대단한 것 같았다.

***

홀 서빙의 베테랑들이 라운지에 대거 투입되었지만 그래도 베니타의 긴장감을 해소시키는데 그다지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라운지에 나가 있었다.

리얼 그릴의 라운지 바가 재오픈을 했다는 소식은 큰 홍보를 거치지 않았다.

그건, 혹시라도 손님들이 알고 라운지바를 찾아올까봐서 영업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베네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건 은 사장님이 베네타가 홍역을 치르는 동안 베네타를 몰아붙이지 않고 그 시간을 전부 다 기다려 줬다는 점이었다.

은 사장님은, 내가 은 사장님을 믿고 기다려줬던 것처럼 내가 추천한 사람을 은 사장님이 믿고 기다려주는 건 당연한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베니타가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매일 매일 미팅시간마다 따로 얘기를 해 주었다. 당분간은 라운지 바에서 매출이 나오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까 크게 부담감을 느끼지 말라고. 손님을 때리지만 말라고. 은 사장님도 베니타가 호텔 라운지바에서 왜 해고됐는지 이유를 알고 있는 듯했고 그런 말로 베니타의 긴장을 풀어 주려고 했다.

사람들은 베니타의 칵테일을 좋아했다.

베니타의 칵테일 블렌딩 솜씨만큼은 정말로 훌륭했다.

사실, 은 사장님이 베니타에게 기회를 주기로 한 데에는 그 이유가 컸다. 베니타가 말아준(?) 칵테일을 맛보고 베니타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리얼 그릴의 라운지 바가 뚫고 가야 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텐더가 부끄러움을 떨치는 것뿐이었는데 베니타는 마지막에 일을 때려쳤을 때의 트라우마가 크게 남았는지 아직 손님들 앞에서 대화를 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베니타는 일단 한 번 친해지면 성심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그래서 리얼 그릴의 사람들과는 대부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문제는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고 자신의 직장 동료라는 메리트 같은 게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랑 가까워지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았다.

근도는 그런 식으로라면 베니타가 리얼 그릴의 발목을 붙잡는 사람밖에 못 될 거라고 강한 어조로 경고를 했고 베니타 자신도 성격을 고치는 게 생각만큼 쉽게 되지 않아서 힘이 든 것 같았다.

베니타의 성격 개조를 위해서 나와 근도는 머리를 맞댔고 어느날 영업이 끝난 시간에 베니타와 나 그리고 근도와, 베니타가 친하게 지내는 웨이터 몇 명만이 라운지 바에 남아 있었다.

딱히 묘수가 있어서 모인 것은 아니었고 하다보니 그렇게 자리가 마련된 것 뿐이었다.

“베니타는 재미교포 3세야. 그래서 한국말이 많이 서툴고, 아버지께서 한국어를 가르쳐주셨는데 그 분도 내가 보기에는 한국어 실력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

근도가 베니타를 놀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굼벵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베니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그런 배경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 웃었다.

“나도 한국 문화를 많이 배우고 싶은데. 한국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가 보고 싶고.”

베니타가 말했다.

베니타는 자기가 미국 친구들에게 한국 속담을 어려서부터 많이 가르쳐줬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도 미국 방방곡곡에서 그 속담을 전파하고 다닐 거라면서 걱정을 했다.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다가 나는 한국에 있는 동안 동문회 회식에서 다져온 폭탄주 제조법을 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소주는 냉장고에 가득 있었다.

은 사장님부터 해서 근도와 몇 몇 한국사람들이 소주가 없으면 금단 증세 비슷한 현상을 보였기 때문에 소주가 떨어지지 않도록 늘 비치를 해 두었던 것이다.

근도는 제조를 해 본 적이 없었을 뿐이었지 그런 문화가 낯설지 않았을 것이었고 곧 나를 따라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비율을 적당하게 섞어가면서 신의 손기술을 보여 주었다.

몇 몇 사람들이 신기해 하면서 내가 폭탄주 마는 걸 지켜 보았다.

나는 각 사람들 앞으로 잔을 밀고 파도타기를 시켰다.

파도가 이리 밀려갔다가 저리 밀려갔다가 몇 번을 반복해 오고가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얼큰하게 취해버렸다.

베니타는 자기도 만들어보겠다고 말했고 나하고는 비율을 다르게 하고 보드카와 위스키를 가지고 각각 만들어 보았다.

한국 사람은 식당에서 파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맛의 차이를 구분해 내고 어느 곳의 것이 더 맛있다고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스테이크나 치즈 맛, 샐러드 소스 맛을 보는데는 한계가 있지 않나 하는 게 내 평소의 생각이었다. 어려서부터 먹어온 게 아니기 때문에 이게 맛있는 건지 어떤 건지 기준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베니타는 나와는 다른 기준에서 폭탄주를 만들었다.

미국인 입맛에 조금 더 맞는 비율을 찾는데는 베니타가 나나 근도보다 더 유리했던 것이다.

베니타는 여러 잔을 만들었고 웨이터들에게 먹였다.

그 즈음에는 이미 파도 몇 방에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베니타가 말아준 게 훨씬 맛있다고 손가락들을 치켜 올렸다.

나는 순전히 술 취해서 그런 거라고 주장했고 내 입맛에는, 그리고 근도의 입 맛에도 내가 말아준 게 더 맛있는 것 같았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한결같이 베니타의 폭탄주에 표를 주었다.

우리가 그렇게 흥청망청 떠들고 있는데 은 사장님이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보셨다.

모두들 엉덩이 사이에 폭탄 꽂은 것처럼 잔뜩 긴장해서 얼어붙어 버렸는데 은 사장님은 베니타의 긴장 풀린 모습을 본 것이 인상 깊었는지 다음 날 영업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만 한다면 이런 자리를 가끔 갖는 것도 좋겠다고 말하셨다.

나는 은 사장님에게, 내가 만든 것과 베니타가 만든 폭탄주를 한 잔씩만 드셔 보시라고 권했고 은 사장님은 운전을 해야 해서 안 된다고 했지만 오늘은 택시 타고 들어가시면 되지 않겠냐는 우리들의 유혹에 떠밀려 결국 한 잔씩을 맛 보았다.

은 사장님은 바로 이 맛이라며 내가 제조한 폭탄주에 한 표를 주었고 곧 다른 웨이터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뭐! 이게 맛있어서 맛있다고 한 건데!!”

은 사장님은 난데없이 수난을 당하고 나와 의기투합을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폭탄주를 베니타가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파도 타기요. 매상 올리기는 딱이겠네요. 빨리 마시게 되잖아요.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해서 가 버리면 회전도 빨라지고.”

베니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깐깐한 맨하탄 사람들한테 그게 먹힐까 하면서도 한 번 시도는 해 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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