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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벌 프로젝트
리얼 그릴의 라운지 바는 적어도 얼마동안은 이것 저것 많은 시도를 하고 많은 실패를 경험해도 되도록 특혜를 받고 있었으니 그 기간동안 더 많은 것을 해 봐야 했다.
다음 날 영업이 시작됐을 때 그곳을 찾은 손님들은 ‘폭탄주(poktanju)’라는 새로운 메뉴를 추천받았다.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옆에 앉았다는 이유로 같이 파도를 탔다.
처음에는 거리껴하는 것 같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흥이 나서 폭탄주를 마시고 파도를 탔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 곳에서 빠져서 혼자 조용히 테이블에 앉아서 마시면 되는 거였고 누가 강요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분위기는 자유로웠고 점점 흥겨워졌다.
베니타는 라운지 바를 오픈한 이후에 가장 밝은 표정을 했고 자주 웃었다.
베니타의 쾌활한 웃음 소리가 바에 가득 울려퍼졌고 웨이터들도 환한 얼굴로 사람들 사이를 거닐었다.
사람들은 작은 축제나 환영 파티를 즐기는 것처럼 긴장을 풀었고 리얼 그릴 라운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베니타의 폭탄주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것은 점차 종류도 많아졌고 여자들의 입맛을 고려해 과일맛을 넣기도 했다.
손님들은 자리에 앉아서 신이 나게 깔깔거리고 파도타기를 몇 번 하고, 자기가 취했다는 것도 모른 채 일어서려다가 콰당 콰당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라운지 바의 분위기는 유니크하게 만들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런 라운지 바의 변화를 보면서 근도가 나에게 말했다.
라운지 바가 이런 식으로 변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사람들은 긴장을 풀러 이곳에 오는 것 외에도 인맥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 이런 곳에 비싼 값을 내고 오는 거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보니 그렇기도 했다.
그리고 근도의 말을 들은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리얼 그릴의 라운지 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라운지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목록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정보라는 말이 내 귀에 들어온 순간 나는 핫 걸을 떠올렸다.
라운지 바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간단한 프로필, 어디에서 일하는 어떤 직급의 누구라는 것 정도를 알아내는 건 간단하고 쉽겠지만 한 상품을 사려는 사람과 한 상품을 팔려는 사람을 알고 그 두 사람을 서로 이어줄 수 있다면 우리 라운지 바는 정보를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흥행 돌풍을 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핫 걸이 맨하탄 사람들의 정보까지 접근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고 그걸 나한테 제공할지도 의문이었지만, 일단 말해봐서 손해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는 핫 걸에게 그 얘기를 꺼냈다.
핫 걸은, 라운지 바의 매출을 늘리고 싶으니까 정보를 달라고 말하는 거냐고 시니컬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틀린 구석이 없었으니까.
“그냥은 안 돼요.”
?????
그냥은 안 된다니. 해 줄 거라는 말인 건가?
“뭘 원하는데요?”
오히려 내가 놀라서 되물었다.
“맨하탄에 요주의 인물이 셋 정도 있는데 그 사람들이 리얼 그릴에도 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프라이빗 룸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는 게 혹시 가능하면.”
핫 걸이 말했다.
“절대 안 돼요.”
나는 은 사장님에게 위험을 감수시킬 수 없었다.
“응. 알았어요.”
의외로 쉽게 말하는 핫 걸.
거기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되는 거였는데.
핫 걸은 내가 순순히 그렇게 해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고, 그게 은 사장님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핫 걸은, 문제가 그거라면 우리 모르게 자기들이 와서 설치를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았고 나한테도 끝까지 들키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핫 걸이 너무 순순히,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서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그런 일을 벌일 줄은.
핫 걸은 키샤의 요원들 몇 명과 직접 리얼 그릴을 찾았다.
그리고 라운지 바의 웨이터들이 입는 유니 폼에 부착할 작은 뱃지들을 주었다.
그것은 초소형 카메라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라운지의 웨이터가 손님을 발견하면 그 카메라가 손님의 얼굴을 인식해서 인물정보를 키샤에 보내고 핫 걸은 얼굴 인식 프로그램을 돌려 그들에 대해 자기가 확보할 수 있는 정보를 모아 나에게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그게 리얼 그릴의 수익 증진에만 목적이 있다면 핫 걸과 키샤가 그렇게까지 나설 이유는 없었다.
핫 걸이 나를 붙잡고 나한테 이것 저것 말을 많이 시킨다 했더니 이 인간들이 리얼 그릴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에 얼마나 알차게 몰카와 도청장치를 심어 놓았는지.
게다가 그 장치들은 도청장치를 탐지하는 장치에도 걸리지 않는 물건으로 한국의 괴짜들이 키샤에 협력해서 만든, 시장에는 출시도 되지 않은 물건들이어서 내가 그 존재를 알아내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게 우리에게 해가 될 것은 없었다.
그게 발각이 되고 외교 문제가 일어난다고 하면 그건 키샤 문제지 우리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었고 그게 사실이었다. 핫 걸도 우리를 그런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일을 진행한 거였고 말이다.
어쨌거나 그 시스템은 곧 성과를 냈다.
라운지 바에 사람들이 오면 웨이터들의 유니 폼에 부착된 뱃지를 통해 사진 정보가 자동으로 키샤에 송출되었고 나는 손님들에 대한 정보를 핫 걸로부터 전해받아 그 내용을 베니타나 라운지 웨이터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면 그들은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가 다른 손님들에게 적당하게 소개들을 해 주었고 손님들은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다.
그 결과 그곳에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의 레이 아웃이 잡히는 일도 생겨났다. 그리고 그런 얘기, 즉 어디랑 어디가 서로 협력하게 됐다는 정보들은 키샤로 우선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리얼 그릴의 라운지 바가 명성을 더 해 가면서 핫 걸이 노렸던 것처럼 맨하탄의 요주의 인물이라는 사람들도 리얼 그릴의 라운지 바를 찾았고 프라이빗 룸의 도청장치는 키샤에 그들의 대화 내용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면서 키샤는 점점 정보의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라운지 바에 도움을 준 사람은 핫 걸만이 아니었다.
사라 던컨도 힘을 보탰다.
사라 던컨은, 이제 곧 대중에게 공개될 것이지만 아직까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가십거리를 엄청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적당하게 흘려주었다.
사라는 우리 라운지 바의 VVIP가 되었고 자주 우리 라운지를 찾았다.
그리고 한 번 입을 털기 시작하면.
이 아주머니가 외로웠던 건지, 한 번 입을 열기 시작하면 여간해서는 그 입을 다물게 하기가 어려웠다.
사라 던컨 그 자신이 가진 명성도 있었고 사라 던컨의 인맥도 대단해서 라운지에는 사라 던컨과 친해지고 싶어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제 베니타는 리얼 그릴의 라운지 바를 제대로 다스릴 줄 알게 되었고 바에 오는 손님들을 쥐락펴락할 정도가 돼 있었다.
베니타가 사람들과 제대로 눈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낯가림이 심했던 사람이라는 말을 해도 이제는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릴만큼 베니타는 많이 변해 있었다. 하지만 베니타는 베니타였다. 다른 바의 바텐더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었던 것이다.
베니타는 바텐더에게 요구됐던 캐릭터에 부합하기 위해서 자신을 바꿔가는 대신에 자신의 고유의 캐릭터를 만들어 구축했고 이제는 여기저기에 베니타 같은 바텐더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로,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을 거두었다.
***
시간은 채찍을 휘두르는 것처럼 나를 떠밀었다.
그리고.
때는 바야흐로 나의 굶주림이 계속 될 때였다.
어느 정도로 굶주렸는가 하면 마트에서 사 온 바나나를 먹다가 커다란 바나나를 보고 괜히 마음이 동해서 바나나 속을 대충 파내고 거기에 발기한 페니스를 밀어넣고 흔들어대서 물을 뺄 정도로 굶주려 있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