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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벌 프로젝트
그 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나,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근도와 다른 사람들 모습에는 맛을 음미하면서 제대로 테스트를 하려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답을 못 찾고 근도에게 우리 말로 말했다.
"야. 이거 졸라 심심한데 이걸 영어로 뭐라고 말해야 되냐?"
"뭐? 지금까지 그거 생각한 거였어? 이런 븅신 새끼! 네가 소스 간을 뭘 알아, 인마!"
그렇게 말하고 근도는 거의 데굴데굴 구를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긴 나는 지나치게 짜는 먹는 경향이 있으니까 내 입맛에 맞췄다가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요리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도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앞으로 임정우한테는 품평을 부탁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임정우의 입맛은 너무 유니크해서 임정우한테 칭찬받는 요리는 손님들 외면 확정인 요리가 될 거라고 하며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뭘 끄덕거려! 하고 확 발로 차 주고 싶었지만 나에게도 소셜 포지션이라는 게 있어서 그냥 참아주었다.
흑석동 절대미각이 여기와서 이렇게 무시를 당하나, 췟!!!
어쨌든 나 하나를 놀림감으로 삼아서 주방의 긴장감은 많이 풀어진 듯했다. 잘 갖고 놀다가 제 자리에만 갖다 놓으라는 생각으로 나는 그냥 너덜너덜해지도록 참아주었다.
그 시간에는 셰프와 주방 보조뿐만 아니라 웨이터들도 들어와서 홀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유롭게 떠들어댔다.
그들이 전해주는 홀의 반응은 셰프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아주 중요한 정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웨이터들이 하는 말에 잔뜩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 리얼 그릴의 강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리얼 그릴의 주방 역시 사람이 사는 세계였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가족이나 애인 때문에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리얼 그릴에서는 리얼 그릴 직원의 문제를 개인이 혼자 해결해 나가게 방치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서서 서로 고충을 들어주고 충고를 해 주고 때에 따라서는 수석 셰프인 은 사장님이 직접 나서서 도움을 주는 일도 있었다.
그들이 비전을 보고 나아가면서도 흔들리는 순간이 올 때 그들은 자신들의 멘토이자 롤 모델인 은 사장님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고맙게 여겼다.
나는 은 사장님에게 대대장님과 은수 형에 대해 얘기했고 은 사장님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가족적인 분위기도 좋지만 누군가 타이트하게 조여줄 사람도 필요하다는데 은 사장님도 생각을 같이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미슐랭 평가단이 리얼 그릴을 다녀갔던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미슐랭 평가를 앞두고 모두가 긴장을 했을 텐데 우리는 그럴 시간 여유가 없었다. 우리 앞 마당으로 넘어진 커다란 나무를 치우고 잔해를 정리하고 살아남느라고 바빴던 것이다.
그러다가 은 사장님은 미슐랭 가이드의 편집자로부터 우리가 미슐랭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잠입 요원처럼 불시에 리얼 그릴을 찾았던 평가단들이 리얼 그릴의 서비스와 요리 모두에 감명을 받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고 미슐랭 편집자가 은 사장님에게 직접 소식을 전해 주었다.
리얼 그릴이 요리에서 끝나지 않고 휴머니즘과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면서 그는 은 사장님에게 리얼 그릴의 재기와 화려한 부활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 평가에서 별을 하나 더 획득한 곳은 리얼 그릴 뿐이었다.
다른 곳들은 별을 한 개에서 두 개씩 잃기도 했고 나머지는 자기가 가진 별을 유지한 것으로 감지덕지해야 했다.
나는 그 소식을 들으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얼 그릴은 그럴 자격이 있었다.
나는 리얼 그릴이 미슐랭 쓰리스타의 레스토랑이 됐다는 소식을 은 과장님에게 전화해서 알려주었다.
은 사장님이 직접 알려주고 싶어하는 걸 아주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막고서 내가 전해 주었던 것이다.
“엄마!!! 리얼 그릴이 미슐랭 가이드에서 레스토랑 별 세 개를 받았어요!!! 별이 더 올라간 데는 우리밖에 없어요. 다른 데는 별이 더 떨어지기도 했는데 우리만 하나 더 받았어요.”
나는 참 잘 했어요 도장을 받은 초딩처럼 잔뜩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은 과장님은 일곱 시간에 걸친 수술을 끝마치고 다 죽어가는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가 내가 전해주는 얘기를 듣고 함성을 질렀다.
"정말이니? 정말이야, 임정우?"
"네. 편집자가 사장님한테 직접 전화해서 알려주신 거예요."
"세상에. 그럼 리얼 그릴은 이제. 세상에. 이제는 걱정 없겠다. 그지? 그런 거지?"
"당연하죠. 너무 바빠져서 과로로 죽을 수는 있겠지만요."
"잘 됐다. 정우야. 정말 잘 됐어."
은 과장님은 그렇게 말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셨다.
“너는 내 마술 상자 같아.”
은 과장님이 꺽꺽 울어대면서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어떤 칭찬보다도 듣기 좋았다.
다른 사람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으면 그 말이 그렇게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날, 은 과장님이 나한테 해 준 그 말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지표 비슷한 게 돼 준 것 같았다.
은 과장님의 마술 상자.
내가 정말 도와드리고 싶고 행복해지게 만들어드리고 싶었던 분의 입에서 나왔던 그 고백은 나를 정말로 흥분시켰다.
내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웃고 있는 걸 보고 은 사장님이 자기도 좀 통화를 하자면서 전화기를 뺏어갔다.
리얼 그릴의 모두가 행복했다.
우리는 그 일을 축하하기로 했고 우리만의 자축이 아닌, 우리를 믿고 기다려주고 기회를 준 고객들과 그 기쁨을 함께 나누기로 했다.
당연히 류아도 함께 했고 류아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 들었다.
리얼 그릴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서 있던 사람의 숫자가 2천명을 넘어서면서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될 정도였다.
우리는 우리를 축하해 주기 위해서 온 사람들을 빈 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기 위해서 한국식 떡을 세 종류 만들어 견과류를 받아 소포장을 하고 그것을 앙증맞은 종이 가방에 담아서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팔.
았.
다.
은 사장님은, 그건 그냥 선물로 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기쁠 때 그렇게 샴페인을 터뜨려대다간 수북한 고지서만 남게 될 거라고 말했고 은 사장님은 나한테 질려 버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날 하루, 떡을 팔아서 올린 매출만 해도 엄청났다.
이제 그 정도면 앞으로 리얼 그릴이 또다른 시행 착오로 몇 번의 실수를 더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슬슬 리얼 그릴과 맨하탄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녁, 은호 형이 흠잡을 구석 없는 투자 의향서를 준비해서 리얼 그릴을 방문했다.
은 사장님은 은호 형의 투자 의향서를 꼼꼼하게 읽었지만, 리얼 그릴이 재기에 성공한 만큼 지금의 인력으로 자기 손으로 꾸려가고 싶다고 밝혔다. 은호 형도 그 뜻을 받아들였지만 리얼 그릴을 바탕으로 해서 레스토랑 ‘큰’을 오픈하고 세계의 대도시로 진출시키는 프로젝트에 은 사장님이 도움이 주기를 바란다는 뜻까지 철회하지는 않았다.
은 사장님은 은호 형이 그 거대한 프로젝트에 자기를 끼워주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은 사장님에게 돈을 빌려준지 석 달이 되지 않는 시점에 이미 우리가 빌려준 돈을 모두 회수했고 원금의 세 배가 넘는 수익을 냈을 뿐만 아니라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얻게 됐다.
은호 형은 잘 했다고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정스 짐과 체리 핑크, 그리고 아메에 더해서 레스토랑 ‘큰’이 생겨날 판이었는데 큰을 오픈할 곳을 물색하던 은호 형이 라스베가스에서 으리으리한 호텔에 푹 빠져버리는 것 같더니 ‘큰’을 호텔에 입점시키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가.
며칠 동안 계산기를 두드려대던 형은 결국 심각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야. 임정우. 이번에 승부를 한 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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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몸캠 독자님들은 좀 시크하신듯.
코멘트는 별로 안 많은데 말없이 쿠폰만 놓고 가심.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