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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카린이 주차장에서 차를 던졌다는 얘기 말이야. 나는 그 일이 실제로 있었다면 그 일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 일을 봤다는 사람이 없었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잖아.”
“신경학자가 거짓말을 한 거라면 이상한 것도 아니죠.”
“내가 생각한 건. 카린이 시각 정보를 왜곡할 수 있을 거라는 거야. 너처럼.”
“……!”
“그리고 카린이 너랑 비슷한 사람이라면 카린의 컨트롤도 모든 사람에게 미치지는 않을 거라는 거지.”
“그래서요?”
나는 은 과장님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몰라서 최대한 끈기를 가지고 얘기를 들었다.
“주차장에서의 그 사건에 대해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별 별 단어로 다 검색을 해 봤어. 진짜 별별 단어로 다. 그러다가 그걸 포기하고 어느 날 다른 이유로 링컨 카프리 컨버터블을 검색했는데.”
“그게 걸렸어요?”
나는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그럴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은 과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그 주차장에. 사람이 있었어.”
“링컨…카프리 컨버터블을 타고요?”
“아니. 지나가다가 주차장에 그 차가 세워진 걸 보고 신기해서 다가왔다가 본 거야.”
“카린이…. 정말로…. 차를 던졌대요?”
내가 물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반신반의했다.
“지금 그 사람을 만나러 가 보려는 거야.”
은 과장님이 내 등을 밀 듯이 토닥거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뭘 그렇게 놀랐던 걸까.
차를 던지는 게 뭐가 대수라고.
지금의 나를 보면, 우리가 타고 있는 차를 맨 손으로 압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말고 그런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의미였다.
우리가 만난 사람은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의 백인이었다.
나는 과장님이 우리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믿거나 말거나 같은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 나온 사람들인 것처럼 얘기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봤던 게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본 것을 얘기하면서 우리 표정을 자주 살폈다. 그런 말을 하는 자기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길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전부 다 이해한다고 말해주었고 그 일을 목격한 사람이 사실은 당신 혼자가 아니라는 말도 해 주어가면서 그 사람을 격려해 주었다.
그 사람은 차를 들어 올려 내던진 사람이 동양인 남자라고 했고 굉장히 업셋 돼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재미삼아서 차를 내던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우리는 그 자리에 혹시 다른 사람도 있었냐고 물었고 그 사람은 아마 그랬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왜 그 일이 지역 뉴스로도 다뤄지지 않았던 것 같은지 물었다.
“내가 알겠어요?”
그러네.
그 사람한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그 사람은 자기가 하는 얘기가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했고 우리는 그걸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는 신경학자가 주장했던대로, 특이한 능력을 가진 카린이라는 동양인 남자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만 확인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은 과장님은 신경학자의 동료들을 찾아다니면서 혹시 카린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는지, 본 적이 있는지 물었지만 누구도 긍정적인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은 과장님이 그 방면에서 워낙 인지도가 높은 분이어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은 과장님을 도와주고 싶어서 애가 닳았는데도 그랬다.
우리는 신경학자가 생전에 가까이 지냈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아무도 카린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
새벽에 갑자기, 침대가 흔들렸을 때 사람들은 지진이 일어난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벽에 걸려 있던 것들이 떨어지고 천정에 매달린 것들이 심하게 흔들린데다 유리 창이 깨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게 카린의 대저택에서 자라고 있던 자이언트세콰이어 나무가 쓰러지면서 생긴 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자이언트세콰이어가 그 근처에 심겨져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니 다시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 일이 일어난 순간에는 그게 나무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는 카린의 저택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밤 사이 겪은 일에 너무 놀라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진상 파악에 나섰다.
지진은 아니었다는 것이 확인된 후에 인근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집집마다 피해를 입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건지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다가, 울창한 침엽수림으로 가려진 저택에 의문을 품었다.
처음에는, 그곳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후에는 도대체 그곳에는 누가 사는 걸까 하는 의문으로 바뀌었다. 저렇게 가려놓고 혐오시설이나 사이비 종교집단같은 걸 운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오지랖에 주민들 몇이 모여서 대표를 뽑았고 그곳에 가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은 침엽수림의 절반도 지나가지 못하고 제지를 받았다.
그들은 결국 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안으로 더 들어오려고 하면 발포할 수도 있다는 경고 메시지가 기계음으로 들려왔다.
거기까지 갔던 사람들은, 그 집 주인이 유머라고는 전혀 갖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돌아나갔다.
자기들이 입은 피해가 그 곳의 자이언트세콰이어 나무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그들은 그곳에 들어갈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했다.
자이언트세콰이어 나무가 쓰러졌을 때 카린은 집에 없었다.
그래서 그 대단한 소동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린의 집사와 헬퍼들은 달랐다.
카린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혼비백산해서,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것 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집사의 백발이 하룻밤 사이에 꽤나 늘어 있었다.
카린은 집에 돌아와서 자이언트세콰이어 나무가 쓰러진 것을 발견했다.
그 대단한 나무가 힘없이 쓰러진 모습을 보면서 카린은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집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을 차리고, 쓰러진 나무를 어떻게 할지 카린에게 물었다.
“뭘 어떻게 해? 저걸 보려고 지금까지 키웠던 건데. 신경쓰지 말고 놔둬.”
카린은 경쾌하게 말했다.
카린은 집사를 내보내고 자신의 서재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카린이 그린 그림이 있었다.
그림에는 호텔 큰의 간판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리얼 그릴에 이어서 이제는 호텔 큰이라니.
카린은 알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 때문에 점점 짜증이 났지만 리얼 그릴과 호텔 큰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서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 둘 모두 정은호라는 한국인 남자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카린은 정은호라는 남자에 대해서 정보망을 가동시켰지만 예상치못했던 커다란 벽에 부딪쳤다.
정은호의 정보에 접근하려고 하면 ‘권한 있는 사람만 접근할 수 있다’는 경고가 떴고 권한 없는 사람이 정은호의 정보에 재접근을 시도하면 그 기록이 상부 기관으로 보고된다는 메시지가 떴다.
결국 카린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편하게 알아보려고 했던 시도가 무력화된 후에 한국에 가서 정은호에 대해 직접 발로 뛰며 알아내려고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밴에 실려 모처로 끌려가서 일주일만에 풀려났다.
그들은 왜 정은호를 캐고 다니는지에 대해서 강도 높은 심문을 받았다.
폭행에 시달린 것은 아니었지만 일주일동안 의자에 온 몸이 꽁꽁 묶인 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고 태양을 직접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엄청나게 밝은 조명 앞에서 밤낮없이 노출되어 잠을 거의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다보니 정신을 유지하는 게 힘이 들었고 나중에는 자기들이 현실에서 그랬는지 꿈에서 그랬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고했다.
============================ 작품 후기 ============================
아.죄송.개졸려서.. 낼 올릴게여. 굿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