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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심장을 울리는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는 클러버들 사이로 물 녹듯이 녹아 들어간 나는 끈적이는 시선을 보내오는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유혹의 말 같은 것도 필요 없었다.
나는 나에게 눈빛을 보내오는 여자들을 구석으로 데려갔다.
마주보고 아주 가까이 붙어 서 있다가, 나는 내가 고른 사냥감을 벽으로 밀어붙이고 키스를 하고 엉덩이를 두 손으로 움켜 쥐었다.
한 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고 다른 손으로는 등을 쓰다듬고 허리를 지나 엉덩이를 주무르다가 스커트를 끌어 올리거나 바지밑으로 손을 넣어 맨 살을 움켜 쥐었다.
흥흥 거리면서 빼는 듯한 동작을 하는 것은 초반에 끝이 나고, 일단 거기까지 진전이 되면 나머지는 쉽게 진행이 되었다.
나는 그 아래에서 거치적거리는 팬티를 찢어버렸고 내 페니스를 꺼내 잔뜩 흥분시키다가 여자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 그 사이에서 드러난 음부에 내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원샷 원킬.
여자 하나당 콘돔 하나.
그리고 하나의 화장지를 얻었다.
나는 내가 아는 두 여자가 죽고 내가 알던 한 여자가 사라진 지금 내가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멘탈이 나가버릴 것 같은 괴리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순간에 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그 일이고, 내가 해야할 유일한 일이 그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시스템은 나한테 우호적이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화장실 안에서 사이트에 접속해서 그 사이에 모아둔 화장지로 영상 여러 개를 순차적으로 다운받았을 때 셸터 아이템이 하나 더 생겼다.
네 명의 캐릭터만을 옮길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도 나는 위안을 얻었다.
나는 나에게 감정적인 결합이 강했던 순서로 셸터에 옮겼다.
인벤토리에 있던 여자들은 이제 거의 셸터로 옮겨졌고 이제는 나에게 중요도가 떨어지는 여자들만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내가 구할 수 있다면 구하고 싶었다.
나는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여자건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건 내 호텔 방을 알려주고 초대했다.
그곳에서 파티를 해 보자는 말에 생각보다 많은 여자들이 응했다.
결코 좁지 않은 스위트룸이었지만 그곳이 좁아 보일 정도로 많은 여자들이 와서, 그곳에 넘치도록 쌓여있는 술을 마셨다.
나는 술을 마시거나 대화를 하는 여자들에게 다가가서 여자들의 몸을 더듬고 그 안의 숨은 신체 검사를 조금 하다가 그들의 은밀한 곳에서 내 정액의 온도를 느끼게 해 주었다.
무서웠다.
그 시간이 지속될수록 드는 생각은 무섭다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멈추지 못했다.
화장지가 생긴 것을 확인하고 영상을 다운 받았다.
내가 다운받은 영상 속의 여자가 그 파티에 있는 건지도 모르고 내가 이미 그 여자들과 관계를 가진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케이지에서 두 명이 사라졌다.
만남 사이트를 통해서 만났던 여자가 한 명 낀 것 같았고 다른 여자는 초야 축제 때 만났던 여자 같았다.
아니.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인류애가 넘쳤다고.
내 물건을 희생해서 여자들을 구하겠다면서 사흘동안 파티를 열고 광란의 시간을 지내다보니 나중에는 몸이 너덜너덜해지는 것을 지나서 영혼이 피폐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연우가 이걸 알기라도 한다면 나를 정말 썩을대로 썩은 인간 말종으로 생각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기분이 계속 가라앉았다.
아이템이 나올 때마다 케이지에서 캐릭터들을 계속해서 셸터로 옮기는데도 케이지 안의 캐릭터는 어째 더 불어나는 것 같기만 하다 했더니 맙소사.
인벤토리에는 내가 다운받은 영상 속의 사람들이 들어있는 거였고 케이지에는 내가 화장지를 모으기 위해 관계를 가진 여자들이 들어 있는 거였다.
그 말은...
화장지를 구하겠다고 내가 내 방에 불러들여 섹스를 하는 여자들이 다시 또 내 케이지로 들어가는 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마지막에 잭팟이 터졌고 내 인벤토리와 케이지에 있던 모든 여자들을 셸터로 옮길 수 있는 아이템이 나와 나는 사이트의 악몽에서 겨우 벗어날 수가 있었다.
마지막 아이템에서 빛나던 표시.
[무한(∞)]
그걸 발견하고 나는 울음이라도 터뜨릴 뻔했다.
그 일은 나에게 상당한 내상을 안겼다.
사이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됐고 이시시타 히사에와 다른 여자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다음에도 내가 이런 식으로 사이트의 계략에 의해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분주했다.
***
내가 미국에 계속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 상태로 연우를 보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만 제외한다면.
나는 연우에게 미안한 생각에, 내가 다운받은 영상들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는 건 정말 너무 심한 짓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미 그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리얼 그릴 1호점을 지키고 있던 근도와 베니타는 내가 갑작스럽게 찾아갔어도 나를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렇게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근도는 레이널드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었지만 내 귀에는 그런 말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홀 메니저가 들어와서 나를 붙잡았다.
“오늘 래벗 이 자식이 연락도 없이 안 나왔는데 홀에서 뺄 사람도 없어서 그래요. 오늘만 도와주면 안 되겠어요? 예약자들 명단 확인해서 자리 안내만 해 주면 되는데. 래벗이 새벽까지 술을 진탕 마셨다더니 아직도 자고 있는 모양이예요.”
그럴 기분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좋지 않은 기억도 떨칠 수 있을 것 같고 기분이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도와 베니타가 나의 거절을 용납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해서 나는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자리를 지키러 나갔다.
브런치 타임부터 슬슬 기미가 보이더니 런치 타임이 되자 눈 코 뜰 새가 없이 바빠졌다.
나는 내가 치열한 삶의 전선으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고생했어요. 이제 겨우 시작인 거지만."
여기 저기에서 웨이터들이 나를 격려했다.
격려인지 겁 주는 건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잠깐의 휴식밖에 취하지 못한 채 디너에 예약된 손님들을 맞아들이고 있는 그때였다.
한 남자가 들어왔다.
화려하게 격식을 갖춰 차려입고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혼자만 지나치게 캐쥬얼한 차림이었다. 동행이 없이 혼자서 들어온 사람은 그 사람이 유일했다.
나는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예약하셨습니까, 손님?”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묻자 그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러고만 있을 뿐 입을 열어서 하는 말은 없었다.
"손님?"
나는 약간 고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그 남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손님?”
나는 다시 한 번 그 남자에게 물었다.
그때 다른 손님들이 한꺼번에 여러 팀이 몰려 들었고 나는 그들을 안내했다.
그리고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쳤고 나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던 남자를 찾았다.
예약없이 찾아온 동양인.
나는 그 남자가 자리에 안내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던 거라는 생각을 했다. 정상적이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가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오히려 놀란 얼굴을 했던 남자.
“……!!!”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레이나에게 달려갔다.
“잠깐 여기 좀 봐줘!”
그리고 나는 밖으로 달려갔다.
“나도 바쁘다고요!”
“그럼 주방 보조 중에 한 사람 데려다 놓던가!”
“그게 말이 되는…!”
손님들 때문에 크게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 레이나를 두고 밖으로 달려나갔지만 그 남자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카…린?”
나는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은 자리에서 몇 바퀴나 돌며 그를 찾았다.
황량한 바람이 바닥에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며 가벼운 모래들을 들어 올리다 떨어뜨렸다.
나는 그곳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