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206화 (206/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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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프롤로그

“그런 것 같아요. 빚 졌어요. 또 연락할게요.”

조심하라는 핫 걸의 당부를 뒤로 하고 나는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집 앞 도로에 세워져 있는 차를 발견했다.

내가 속도를 줄이며 그곳으로 다가갔을 때, 도로에 세워져있던 차 문이 열리면서 그곳에서 그 남자가 나왔다.

‘카린.’

그 순간에는 그가 카린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지나다니는 차가 없기는 했지만 그렇게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카린 역시 내가 나타난 것을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그곳에 올 거라는 것을 카린도 모르고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자기를 따라오게 했다.

나는 내가 영상에서 봤던 그곳을 따라갔다.

저택 앞에 이르러 차에서 내려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갈현입니다.”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카린이라고 부르지요.”

“……!!”

그 사람이 카린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그 사람의 입에서 그 말을 듣는 것은 달랐다.

나는 이제 나를 소개할 차례가 됐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카린을 바라보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카린이 말했다.

카린은 자신의 인식 제어 능력이 나에게 통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에 대해서 엄청난 호기심을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게 뭐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던질 때도 인식 제어가 안 됐던 사람이 있었고.

반경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건가?

그러면서 카린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바깥보다 더 으리으리한 내부 구조가 들어왔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던 내 눈은 아치형 계단을 더듬어 올라갔고 그 곳 벽면에 걸린 그림에 시선이 주어졌다.

“……!!”

거기에는, 침대 위에서 환한 햇살처럼 웃고 있는 연우와, 연우에게 튀어오르려는 내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곳에 다른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누가 저 그림을 그릴 수가 있었다는 건지.

잠시 나는 그때 그곳에 감시 카메라가 있었던 건가 생각했지만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어려웠다. 엄마한테 호되게 당한 이후로 연우의 안전과 관계되는 일에서는 늘 조심했는데.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강박증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확인하고 또 확인했는데.

카린이 내 시선을 따라가려는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렸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인테리어를 칭찬했다.

내 가슴은 정신없이 두근거렸다.

카린은 나를 어느 곳으로 안내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건지, 왜 데려가는 건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지만 카린이 손으로 가리키는 것을 보니 드디어 확실해졌다.

카린이 가리킨 곳에는 이젤이 있었고 거기에는 서툰 터치로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열 두 개의 숫자.

내 영상의 마지막에 나왔던 장면이 캔버스에 그대로 그려져 있었다.

나는 카린을 바라보았다.

놀란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지만 내가 놀란 것을 카린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란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카린 역시 나만큼이나 놀란 것 같았다.

“저 그림은 뭡니까?”

내가 물었다.

“여긴 어떻게 온 겁니까. 거기엔 왜 온 거예요.”

카린이 물었다.

내가 거기에 나타날 거라는 걸 카린이 몰랐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카린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기만 했다.

“직접 그렸습니까?”

카린은 자기가 대답해 주기 전에는 내가 내 얘기를 꺼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았다.

“이상한 얘기지만.”

카린이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이상한 얘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걸요?”

내가 말했다.

카린은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런 그림을 그려놓는 것 같더군요.”

“본인이요?”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혹시 제가 볼 수도 있을까요?”

“아뇨.”

아이고. 어찌나 단호하신지.

하긴. 카린이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카린에게만 일방적으로 정보를 내 놓으라고 한 거였으니 내가 카린이라도 그랬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건지 말해줄 생각이 들었습니까?”

카린이 물었다.

“어떤…. 영상을 받았어요. 그 영상에 나와있는대로 찾아온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친절한 설명도 아니었지만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카린 스스로는, 앉으라는 말을 생각해 내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알아서 의자에 앉았다.

카린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앞으로 몸캠 영상 사이트가 내 주위 사람들을 상대로 다시 아스트랄한 공격을 벌이게 된다면 그때 내가 카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내가 내 정보를 어느 정도까지 밝혀야 하는 건지 그게 문제였다.

우리는 처음 만난 거였고, 아, 리얼 그릴에서의 만남을 합하면 두 번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 만난 사이에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는 신뢰라는 게 형성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카린은 내 앞에 앉는 대신, 뒤로 가서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리고 먼저 자기 힘을 보인 것은 카린이었다.

카린은 리얼 그릴에서 내 인식을 제어하는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 우연이었는지 알고 싶었던 듯했다.

나는 내 주위의 배경이 물처럼 흐느적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뭐라고 해야 하나.

퀄리티가 낮은 그래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가 카린을 바라보자 카린이 움찔했다.

그러고는 자기도 모르게 팔짱을 끼고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큼큼 거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 턱수염을 몰래 뽑으려다가 걸린 놈처럼.

“혹시.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만하면 나로서는 꽤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거였다.

카린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생각을 하고 자시고 해서 나온 반응이 아닌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뭐. 그러니까. 음. 그럼 그런 건 어떻게 해결해요?”

이 말을 해석하자면, 몸캠 영상 사이트에 대해서 모르냐라는 건데 너무 꼬아 버려서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웃겼던 건.

그때까지 방심하고 느슨하게 있던 카린이 갑자기 그때부터 나한테서 거리를 두었고, 우리 사이에 적어도 책상이나 테이블 같은 게 한 종류 정도는 끼도록 하고 섰다는 거였다.

나는 카린이 내 질문을 유혹으로 여긴 거라는 걸 깨닫고 심히 빡쳐서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카린도 나랑 비슷한 병을 앓았던 적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신경학자에 대한 것도.

카린은 내가 하는 말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들었다.

하지만 대답은 그다지 성의있게 나오지 않았다.

신경학자에 대해서는 완전히 묵비권을 행사해 버렸고 질병에 걸린 기억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기억이 흐린 시기가 있기는 한 것 같다고 했다. 자기한테서 이런 능력이 나타나기 직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기에 대한 기억은 없고 자기가 어떤, 사고 비슷한 것을 당했다가 깨어난 이후로 자기 몸이 달라진 것 같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몸이 달라졌다는 건."

내가 떠보려는 식으로 물었다.

"뭐. 이런 저런."

카린이 말했다.

"인식 제어 능력 말고 신체 능력도 강해진 거죠?"

내가 직접적으로 묻자 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제대로 된 질문을 했기에 그 대답을 얻어낼 수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카린에게 던진 질문이었던 동시에 내 상태에 대한 고백이기도 했고 카린은 그것을 알아들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만약에 카린이 나랑 같은 부류라면 내가 보는 몸캠 영상 사이트가 카린에게도 보일 거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나는 사이트에 접속하려고 했지만 접속에 실패했다.

하지만 카린이 없는 곳에서 해 봤을 때는 전혀 문제없이 됐다.

카린도 몸캠 영상 사이트는 같이 볼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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