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228화 (228/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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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y back

핫 걸은, 버킷 리스트는 버킷 리스트라고 힘주어 말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정말로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가 뭔지를 깨닫고서 그걸 하는 게 버킷 리스튼데 죽기 한참 전에 그 가치를 깨달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버킷 리스트가 무시당해야 하는 거냐고 열변을 토했다.

그래서 님의 버킷 리스트에는 다 섹스밖에 없는 거냐고 내가 물었더니 에너지가 넘치는 삶이라서 그런 거라고 했다.

핫 걸은 아예 나를 협박까지 했다.

남은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부탁한 것들을 알아봐주지 않겠다고.

그럼 내가 알아볼 테니까 상관 말라고 해 버리고 싶지만.

정보력에서는 내가 한없이 떨리니까 그럴 수도 없고.

아오. 자존심 상해!!!

“어머. 왜 이러세요? 그래도 나가면 아직도 잘 팔리는데?”

핫 걸이 말했다.

내가 너무 비싸게 군다는 듯이.

“우리는 너무 많이 만났어요. 권태기가 올만도 하잖아요!!”

“아닌데? 임정우씨는 아직 상큼한데?”

핫 걸은 나를 약올리는 게 재미있는지 킥킥거려대면서 계속 놀려댔다.

“그래서. 남아 있는 게 뭐예요? 앞으로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막 빨고 벗기고 그러면 진짜 신고해 버릴 거예요.”

내가 말했다.

“어머. 누가요? 내가요? 내가? 이분 좀 봐. 큰일날 소리를 하시네. 누가 들으면 진짜 그랬는 줄 알겠다.”

“헐!!!”

하긴. 그러니까 키샤에서 팀장까지 하고 있는 거겠지.

잠입을 하고 위장을 하고 다른 사람인 척하면서 접근하고.

나는 내가 그 방면으로 핫 걸을 이길 수는 없다고 인정하기로 하고 버킷 리스트나 알려달라고 힘없이 말했다.

“보자…. 나도 생각이 잘 안 나기는 하는데.”

그렇게 우리는 봉인해둔 버킷 리스트를 다시 개방했다.

***

1. 골든

2. 야외플 (비오는 날 사람 없는 공원에서)

3. 귀갑묶기를 극한으로 하고 섹스

4. 전에 해줬던 얘기대로 지하철에서

핫 걸은 자기 입으로는 말해줄 수 없다면서 기어이 나한테 기억을 해 내라고 했다.

가끔 보면 이상한 데서 집념이 강해.

그냥 알려주면 되겠구만.

나는 결국 머리를 싸매고 그걸 다 기억해내야 했다.

골든이랑, 귀갑묶고 섹스하는 건 했고 비 오는 날의 야외플은.

그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한 걸로 대체 안 되려나?

비만 안 왔다 뿐이지 스릴로는 그쪽이 더 했던 것 같은데.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으휴!!!

하지만 핫 걸은 웃기지도 않는 말이라고 할 게 뻔하다.

결국 두 개가 남은 거다.

비오는 날의 야외플과, 지하철????

흐미이이이이!!!

산 넘어 산이라고.

아니. 그때는 절박한 상황이니까 이걸 보고도 그냥 아련하고 애틋하고 안 됐다는 생각만 들었었는데 지금 보니까 핫 걸은 그냥 꼴통이 아닌가 싶다.

내가 전화로 들려줬던 지하철 전래야설(지은이-임정우님)을 실제로 플레이하자는 건 그냥 생야동을 사람 많은데서 찍자는 건데.

이 님이 미치신 거든, 아니면 키샤에서 나를 잡아 가두라는 명령이 떨어진 거든 그 둘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핫 걸은 말이 나왔을 때 확실히 시간을 정해놓지 않으면 또 흐지부지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나흘 후로 날을 잡아버렸다.

다음 주에 솔페리노에 가야 하니까 그 전에 꼭 다 해야 한다면서 제법 비장하게 말했다.

핫 걸이 그렇게 나오니까, 핫 걸이 키샤에서 위험한 임무를 맡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됐고 핫 걸이 지금 버킷 리스트 얘기를 다시 꺼낸 건 그냥 우연이 아니었던 건데 내가 속도 모르고 너무 장난스럽게 대한 건 아닌가 하는 자책까지 생겼다.

위험한 임무냐고 물었지만 핫 걸은 자기가 언제 키샤 일을 얘기해 준 적 있었냐고 말하면서 적당하게 선을 그었다.

나는, 내 도움이 필요한 일에는 언제든지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고 핫 걸도 조금 솔깃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호의를 보여서 그랬던 건지, 핫 걸은 수영의 소재지를 바로 알려주었다.

한적모 교수에 대해서 내가 알고 싶어했던 내용에 대해서도 바로 확인을 해 주었다.

교수님이 한적모 교수에 대해서 했던 말은 전부 사실인 것 같고 한적모 교수는 지금도 자신의 세력을 구축해 놓고 자기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기가 밟을 수 있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뭉개는 중인 것 같다고 핫 걸이 말했다.

나는 하루동안 부지런히 움직였다.

처음에 한 일은 수영의 회사에 찾아가는 거였다.

내가 수영을 찾아냈을 때 수영은 공장에 딸린 작은 건물에서 수북한 서류철을 들고, 잘 열리지 않는 빡빡한 문을 밀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다시 만난 수영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어찌나 화가 나는지.

나는 가서 문을 열어주고 수영이 들고 있던 서류철을 뺏어 들었다.

“…오빠!”

수영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다 두면 되는 거야.”

“여긴 어떻게 왔어요?”

수영이 물었다.

“너 어디에 있냐고 하니까 여기로 가 보라고 하더라.”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요.”

“이거 어디에 두면 되냐고. 무거워.”

수영은 내 앞에서 걸어갔고 나는 수영이 알려준 곳에 서류철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수영의 손목을 붙잡았다.

사무실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사무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컸고 사무직이라고 해도 공장을 오가면서 그쪽 일도 같이 보느라 업무의 양은 오히려 더 많아 보였다.

“죄송합니다만 이십 분 정도만 얘기하고 돌려보내겠습니다.”

나는 그 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했다.

나중에 수영이 부장이라고 알려준 그 사람은 수영에게 괜찮은 거냐고 물었다.

수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사람은 수영이 나와 함께 나가는 걸 허락해 주었다.

밖으로 나와 차에 타자마자 나는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나한테 연락을 안 한 거냐고, 내가 너랑 준영이한테 아무 것도 아니었냐고 화를 냈다.

수영이는 고개를 숙인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미안해서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고.

나는 수영을 안아주었다.

“오빠도 그랬어. 오빠도 힘들었었어. 너랑 준영이가 아니었으면 오빠는 일어설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이번에는 오빠가 도울 수 있게 해.”

수영이는 내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집이 어디야. 집부터 가 보자. 준영이는 어디에 있고? 준영이는 학교 어떻게 했어? 너는?”

질문이 너무 많았다.

수영은 그 말에 하나씩 답을 해 주었다.

두 사람 모두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준영이는 어떻게든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었지만 잘 안 됐다고 말했다.

나는 수영이가 고집을 꺾을 때까지 실랑이를 하다가 마침내 수영의 집에 가 볼 수 있었다.

수영의 어머니는 일을 나갔고 수영의 아버지는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라는 문장은 생각보다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그 상황을 그렇게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떤 시도가 좌절돼서 그 사람이 잔을 기울이고 있는 건지 아무 것도 모르는 몰이해 위에서 ‘그 사람은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라고 말을 하면 안 되는 거라는 걸 아는 알고 있다.

그 경험이 나하고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그렇다.

나는 자기 아버지에게 화를 내려는 수영을 돌려세우고 차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수영은 씩씩거리다가 차로 돌아갔다.

수영의 아버지는 한동안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나를 제대로 소개하면서 수영의 아버지에게 인사했다.

제대로 소개한다고 해 봤자 내가 밝힐 수 있는 것은 정스짐의 공동대표라는 것 정도뿐이지만.

나는 수영의 아버지와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그 분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저한테 왜 연락을 안 하셨습니까. 차를 내 놓으라고라도 하셨어야죠.”

나는 그 분의 술잔에 술을 따라 주고 말했다.

그 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 한 번 삐끗했을 뿐인데, 주위에서 누가 잡아주기만 했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그대로 한 번 비틀거리기만 하다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텐데 주위의 모든 사람이 손을 치우고 오히려 더 세게 그 분을 밀어버린 거라고 핫 걸이 말해 주었었다.

============================ 작품 후기 ============================

적응 안 되게 추천이 많아서 깜놀.

이 분들이 나를 조교하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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