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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y back
“아는 형이랑 투자를 했던 게 잘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돈이 좀 생겼어요. 아버지 사업도 잘 되고 있어서 제가 가진 돈을 운용하는데 걸릴 게 별로 없습니다. 사장님이 재기하시는데 필요한 돈을 빌려드릴 테니까 다시 한 번 시작해 보십시오. 원하신다면 제가 하는 사업에 참여하시게 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정스 짐이라는 휘트니스 기업입니다.”
수영의 아버지는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왜 그렇게 하신다는 겁니까.”
“제가 편하려고요. 준영이랑 수영이가 계속 지금처럼 지낸다면 제가 불편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돈은 어느 정도 모았습니다. 돈이 생겼으니까 저도 좀 편해지려고요. 그런데 준영이랑 수영이 소식 들으니까 불편하네요.”
내가 말했다.
“…….”
“갚으시면 됩니다. 꼭 갚으세요. 괜히 이러는 건 아닙니다. 사장님은 저한테 아무 것도 안 보일 때 기회를 주셨어요. 그냥 돈이 남아 돌아서 그러신 걸 수도 있고 절세 목적으로 그러신 걸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기회를 얻지 못했으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겁니다. 이제 제 차례인 것 뿐이예요. 사장님이 지금 저를 위해서 해 주실 수 있는 건 그냥 받아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갚으시면 되는 겁니다.”
수영이 아버지의 얼굴이 부르르르 떨렸다.
양초를 녹여서 만들었던 얼굴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중년 남자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자기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냉대와 좌절과 배신을 겪고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줄까 하다가 그것까지는 못할 것 같아서 그를 일으켰다.
“수영이는 회사에 들어가 봐야 하니까 오늘 저하고 좀 같이 다니시죠.”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영이를 택시에 태워 회사로 보내놓고 수영의 아버지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은호 형은 내가 수영의 아버지에게 정스 짐 휘트니스 센터를 하나 내 드리고 싶다고 말하자, ‘어. 그래서?’ 라고 말했다.
아무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였다.
네가 생각했으면 그렇게 하면 되지 왜 자기한테 승인을 받으려는 것처럼 묻냐는 듯.
그래주어서 속으로 많이 고마웠다.
형은 수영의 아버지에게 내가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알고 휘트니스 센터 오픈에 맞춰서 이재인 트레이너와 머슬 퀸까지 대거 투입해서 오픈 이벤트를 지원해 주자고 말했다.
나는 휘트니스 센터를 위해, 상권이 좋은 곳에 있는 건물의 세 개 층을 임대계약했고 정스 짐 리모델링 팀을 동원해 공사를 바로 시작하도록 했다.
그 후에는 수영의 가족이 살 수 있는 단독 주택도 구입했다.
상가 건물의 임대 보증금과 1년치 월세, 그리고 주택의 구입 비용은 모두 내가 내주었다.
수영의 아버지는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때 저한테 떠맡기셨던 차가 이렇게 돌아왔다고 생각하시라고 말했다.
소식을 듣고 준영이가 왔고 그 자식은 나를 만나자마자 나한테서 죽방망이를 얻어맞았다.
“야,이 개새끼야. 너 이 새끼!! 너한테는 내가 그렇게 우습냐? 어? 씨발. 그렇게 같잖았어?!!! 이 씨이발놈아!!”
나는 진심으로 준영이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나를 찾지 않았다는 게 내심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나한테는 조금도 부담되지 않는 돈 때문에 그 네 가족이 당했을 수치를 생각하니 기분이 심히 나빴다.
연달아 날아가는 주먹을 맞고 준영이는 비틀거렸다.
힘 조절을 해서 그냥 툭툭 건드는 수준이었지만 준영의 몸은 휘청거렸다.
아팠을 거다.
보다못한 준영의 아버지가 나를 말렸고 준영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열을 했다.
나는 준영이를 일으켜 세우고 안아주었다.
“학교로 돌아가. 너는 네가 해야 할 거 해. 그리고 힘든 일 있으면 형한테 말하고. 이 개새끼야!! 한 번만 더 잠수 타고 형 전화 씹고 그러면 진짜 죽여버릴 줄 알고!!!”
“으어어어어어어어엉!!!!”
준영이의 눈물은 한 번 터지더니 그칠 줄을 모르고 흘러나왔다.
녀석이 왜 그런 건지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제대로 해 놓지 않으면 다음에도 또 그럴 것 같아서 걱정이 됐다.
준영이와 수영은 끝까지 내가 책임져 주고 싶었다. 그 녀석들을 내 그늘 아래 두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나는 순전히 내가 내 정신의 만족을 위해서 그러는 거라는 것을 그 녀석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준영의 아버지는 휘트니스 센터가 오픈되기 전에 받아야 할 여러 가지 교육을 받느라고 정신없이 몰아붙여졌다.
그리고 자기가 다시 바쁘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
서울대 입구점.
그게 준영의 아버지가 맡게 될 정스 짐의 센터였다.
나는 A급 트레이너들을 서울대입구점에 붙여 주었다.
그리고 퍼스널 트레이너도 붙여 주었다.
오픈하기 전에 몸은 어느 정도 만들어 놓으셔야 할 거라는 부담되는 미션을 내려 놓은 바람에 준영의 아버지는 혹독한 다이어트와 운동에 들어갔다.
단기간에 이루어야 하는 목표 의식이 생기자 준영의 아버지는 거기에 빠르게 몰입했다.
그 나이에 여러 모로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과정이었지만 준영의 아버지는 포기하지도 않았고 지친 기색을 보이지도 않았다.
포기는 자기가 쉬는 동안 이미 충분히 다 했으니까 이제는 주저앉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서.
수영의 어머니와 수영은 당분간, 자기들이 하던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두 사람은 말했다.
그래도 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일을 하러 다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수영의 어머니는 몇 번이나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내가 보지 못했던 몇 개월 사이에 몰라보게 늙은 것 같은 모습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다시 웃는 모습을 보니 예전의 그 얼굴이 나타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준영이를 데리고 나와 술을 사 주었다.
“야, 인마. 너하고 술 마시는 게 이번이 처음이네. 어?”
나는,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는 생각에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게 됐다.
술도 못 마시는 꼬꼬마 놈을 놔두고, 다른 과외 선생을 알아보라고 부탁을 하고 헤어졌다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게요.”
준영이는 아직도 어색하고 영 이것저것 미안한지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 그리고 너무 감사하고요.”
“됐어. 이제 선생님이라고 하지마. 형이라고 불러. 그리고 나는 계산적인 사람이야. 너도 알잖아. 돈 안 되는 일이랑 도움 안 될 사람한테는 투자 안 해.”
준영이는 또다시 훌쩍거렸다.
“내가 진짜 화 나는 건. 에이. 아니다. 말을 말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술잔을 비워버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오히려 연락하기가 쉬웠을 거예요. 거절하면 거절당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됐을 테니까요. 근데 선생님은. 아. 형은…. 형이 도와줄 상황도 안 될 것 같은데 괜히 그런 말 해서 서먹서먹해지면 우리 관계가 끝나게 될까봐서 무서웠어요. 부담된다고 연락 피하고 그러실까봐서요.”
“그럴 놈이면 그냥 안 보면 되는 거잖아.”
“어떻게 그래요, 형.”
“그래. 뭐. 하긴. 내가 너한테 별 걸 다 가르쳤으니까. 그래도 다음에는 절대로 그러지 마라.”
준영이 머리에다가 딱콩을 주고 말했더니 준영이도 웃었다.
진짜 이놈한테는 별 걸 다 가르쳐 줬었지.
“그래서. 연이씨는 이제 좋아하냐?”
“뭐. 저 없으면 죽죠.”
준영이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웃어. 웃어지지 않아도 웃어. 그러다보면 웃을 일이 생긴대. 나도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아.”
“네. 형.”
준영이와 나는 오랫동안 못 했던 얘기를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너무 늦어지는 걸 걱정한 준영의 어머니가 자꾸만 전화를 하는 바람에 우리는 결국 술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못 다한 말이 남아 아쉬워서 아예 준영이의 새 집으로 술을 사들고 자리를 옮겼다.
============================ 작품 후기 ============================
이상해.이상해.추천수가 이상해. 남의 게시판 온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