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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230화 (2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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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준영이 걱정 더실 수 있으니까 여기에서 마시려고요.”

내가 웃자 준영의 어머니는 고맙다면서 자연스럽게 안주거리를 만들었다.

"나이 들면서 걱정만 늘어버린 것 같아요. 딸도 아닌 아들 걱정을 뭘 그렇게 하냐고 수영이 아빠는 그러는데. 나는 그냥 이것저것 다 걱정돼요. 특히 지금 우리 사정이 이렇다보니까 준영이가 술 마시고 다른 사람이랑 시비붙고 싸움이나 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도 들고요."

준영의 어머니는 자기가 귀찮게 전화를 해댔는데도 짜증내지 않고 집으로 와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말했다.

저 분이 원래 저렇게 자기 속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분이 아니었는데 여러 가지 일들이 사람을 많이 바꿔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그 자리에 있고보니, 물론 장소는 바뀌어 있었지만 시간을 거슬러 내가 준영이에게 과외를 해 주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준영이 아버지와 수영까지도 나와서 술판이 커졌다.

가족들 사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말들도 많이 나왔다.

나한테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들은 자기 엄마가, 아빠가, 딸과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 시간을 견뎌왔는지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았다.

“연이 누나랑 잠깐 얘기 해 봤는데요. 경호학과를 준비해서 류아 누나를 경호하면 어떨까, 그 생각도 하고는 있어요.”

진로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준영이가 말했고 나는 그거 진짜 괜찮은 생각 같다면서 눈을 빛냈다.

“준영이 네가 경호를 해 준다면 류아가 좋아할 테니까 걸릴 게 없겠다. 은호 형한테는 내가 말해주면 되고. 경호는 꼭 경호학과 안 나와도 할 수 있는 거기도 한데. 류아 인기 떨어질지 모르니까 학교 가지 말고 그냥 바로 일 시작하는 건 어때?”

내가 팔꿈치로 준영이를 툭 치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를까요??”

준영이도 예의 그 장난스런 눈빛을 되살려내 나를 옆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안 돼요.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죠.”

준영의 어머니가 놀라면서 말했고 우리는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깔깔대고 웃었다.

"아직 얘기하지는 말아 주시고요. 지금은 못해요. 단증도 따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해서 정말로 제가 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정도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할게요."

준영이가 말했다.

나는 잘 할 수 있을 거라면서 준영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수영이하고는 자주 눈이 마주쳤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수영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눈치빠른 준영이가, 술이 모자란 것 같다면서 나한테 술 좀 더 사 오라고 했고 제 누나한테는 아이스크림을 사오라고 했다. 어차피 술이나 아이스크림이나, 이 시간에 살 수 있는 곳은 편의점 뿐이었다. 우리 둘을 같이 나가게 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준영의 아버지는 기겁을 하면서 이 자식이 미쳤냐며, 지금 누구한테 시키는 거냐고, 네가 빨리 안 갔다 오냐고 했고 나는 웃으면서 바람 쐴 겸 제가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

수영의 어머니도 기분 좋게 자리에 껴서 남편이랑 짠, 하고 잔도 부딪치면서 모두가 오랜만에 행복을 되찾은듯한 모습에 나도 즐거웠다.

“정말 고마워요. 고맙다고 말하고 그냥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밖으로 나왔을 때 수영이 말했다.

“너한테 준 것도 아닌데 네가 왜 고마워?”

“네?”

수영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수영을 놀려먹은 게 재미있어서 낄낄대고 웃었다. 수영은 한숨을 쉬었다.

“전에 만난다던 놈은 어떻게 됐어? 아. 놈이라고 하면 안 되겠다.”

“놈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왜? 이제 안 만나?”

“시작도 안 했어요.”

“뭐? 왜? 그때는 나한테….”

“안 되더라고요. 못할 짓이고.”

수영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걸음을 빨리 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수영을 따라잡았다.

잠시 말이 없었다가 내가 물었다.

“김수영. 지금 다니는 회사 말이야. 네 사수가 혹시 여자야?”

“네? 어떻게 알아요. 오빠가 그걸?”

수영이 물었다.

역시 맞았던 건가, 하면서 나는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다.

“혹시 그 여자. 얼굴이 못된 고양이같이 생겼냐?”

“어머!”

“왜. 딱이야?”

“우리 윤 대리님 알아요?”

“윤대리야, 그 여자가?”

“뭐야. 이름은 모르는 거였어요? 오빠가 근데 우리 사수님을 어떻게 알아요?”

“너희 주임은 누구야? 내가 아까 너희 사무실에 갔을 때 주임도 거기에 같이 있었어?”

“주임님요? 네. 부장님 책상 앞에 서 있던 분이 주임님이었는데.”

“그 인간이? 나이도 많은 것 같던데.”

그럼 그 주임이란 인간이랑 윤 대리가 붙어먹으면서 뒤에서 수영을 괴롭힌 건가, 하는 생각에 속이 부글 부글 끓어 올랐다. 수영이 이 자식은 그런 일이 있다는 건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인 거고.

그러니까 이렇게 천진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거다.

“근데 왜요?”

“너희 대리는 몇 살이야?”

“하여간. 또 시작이다. 한 번 궁금한 거 생기면 남이 묻는 건 다 무시하고 자기가 물어볼 거만 물어보지.”

“어? 내가 그랬어?”

“네.”

수영이 웃었다.

“수영아. 회사 생활 힘들면 옮기자.”

“아니예요. 할만해요. 그리고 일이 재미있어요. 나는 내가 그쪽에 소질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는데. 좀 잘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수영이 부끄러워하면서 웃었다.

“네가 하는 일이 정확히 무슨 일인데?”

해신제화.

핫 걸에게서 듣기 전에는 그런 신발 브랜드가 있는 줄도 몰랐던 그런 회사였다. 나는 수영에게 그보다 더 좋은 곳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나는 그냥 막내들이 하는 일 하는데요. 일 좀 배우고 하면 다른 일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지금은 나말고 다른 누가 해도 상관이 없는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잘 배우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말을 하는 수영의 눈이 빛났다.

진심으로, 수영이 어떤 일에 그렇게나 의욕적으로 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 정말로 이 일을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대학 졸업도 못하고 학교 다니다가 그냥 아빠 아는 분 소개로 들어간 거라 눈치가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잘 버티면 이것 저것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기껏 오빠가 생각해서 말해줬는데 미안해요.”

“아냐.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해야지. 근데 그 대리는 어떻게 좀 하자.”

“근데 오빠가 윤 대리님을 어떻게 알아요?”

“그 여자가 너 괴롭히지?”

“사수랑 부사수 관계가 다 그렇겠죠.”

수영이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것보다 더 심하잖아.”

“…….”

“네 잘못 아닌 걸로 너 야단치고 그러지?”

“그건…. 좀 애매한 부분이예요.”

“뭔지 훤하다. 지가 해야 될 일 너한테 다 떠넘기지? 그리고 너는 늦게까지 퇴근 못하게 하고 일 시키고. 맞지?”

“그건. 일 가르치려고 그러는 거라서.”

“으이그으!! 일 가르치는 거랑 일 떠넘기는 게 같냐? 멍충아?”

“…….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척하면 척이지. 나도 일 해 봤는데 뭘. 그런 인간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 성과는 가로채고 잘못은 떠넘기고 하는 인간들. 수법도 거기서 거기고..”

“우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비열한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수영이 말했다.

“사실이 그렇잖아. 아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말해서.”

“그렇긴…한데. 꼭 그렇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수영은 헤에 하고 웃었다.

“어이구. 이 순진퉁이야. 그러니까 너를 이용하는 거지.”

“그래도 저는 싫지 않은데요? 열심히 배워서 정규직 사원 모집할 때 저도 도전해 보고 싶고요. 막 신데렐라처럼 구박만 받고 그러는 건 아니고 배우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건 네가 제대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비교 대상을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아닐 걸요?”

“맞을 걸?”

수영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수무룩?

============================ 작품 후기 ============================

의자에 앉아서 아주 신나게 졸다가,

"어!" 하고 제가 지른 소리에 깜짝 놀라 깼네요.

덕분에 잠깨서 또 꾸역꾸역 썼어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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