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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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잘 대해줘?”
“네.”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관심 갖는 사람들은 없고?”
“네. 내가 그런 건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대리님은 거래처 사람들이랑도 두루두루 친하고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고 그러는데 나한테는 그게 어려워요. 애초에 계약직이라고 하면 상대도 잘 안 해주려고 하는 것도 있고요.”
나는 생각에 잠겼다.
핫 걸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수영이 다니는 해신제화는 신발을 만드는 중견 업체였다.
구두와 운동화를 같이 만들었고 수입을 해서 팔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곳이다.
“해 보고 싶은 분야가 정확히 어떤 거야?”
나는 괜히 사수 얘기로 수영을 불편하게 하기보다 수영의 일 얘기를 듣고 싶어져 그렇게 물었다.
“구두요.”
“아. 여자 구두?”
“아뇨. 남자 구두.”
“남자 구두? 왜애?”
“내가 만든 첫 작품은 오빠 줄게요.”
수영이 야심차게 말했다.
“싫어, 인마. 첫 작품은 못 만들 게 뻔하잖아. 나중에 기술 붙으면 그때 만든 걸로 줘.”
나는 진짜 지극히 합리적인 얘기를 한 거였는데.
“헐. 진짜 그런 말은 우주에서 오빠밖에 못할 거야. 어휴. 정 떨어져!”
“사실이잖아.”
“나같으면, 자기 생각해서 그런 걸 만들어준다고 하면 고맙다고 하고 평생 그것만 신고 다니겠다.”
“그랬다가 허리 나가면.”
“그 허리가 이제 나랑 무슨 상관이래?”
얼래! 이 자식!!!
편의점에 도착하자 수영이 봉투에 술을 왕창 담았다.
“야. 이거 네가 들 거야? 그만 담아, 인마아!”
“오빠가 들어야지 왜 내가 들어요?”
“야, 오빠 허리 나가면 어떡하라고.”
“그걸 그러니까 왜 내가 상관하냐고요.”
하, 이 자식! 한 번 삐지면 오래 가는데 내가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네.
“이야. 김수영 삐졌네. 삐졌어.”
“안 삐졌거든요?”
크크거리고 웃으면서 수영을 따라 나오다가 물었다.
“너희가 만나는 거래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데? 바이어?”
“바이어도 있고요. 우리 제품 넣어 달라고 엠디들도 많이 만나고요.”
“왜? 잘 안 받아줘? 하긴. 백화점에서는 그 브랜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직영 매장도 못 본 것 같고.”
“네임 밸류에서도 좀 떨어지고 그러니까요.”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 만나?”
“뭐. 그냥 뻔하죠. 물건 팔아줄 사람들요.”
“그렇군. 여자 남자 구두도 다 만들고 운동화도 만든다는 거지?”
“네. 그렇게 말하니까 잡화상 같다. 근데 품질은 정말 좋아요. 제가 여기에 남고 싶은 이유도 그거고요. 명품 만드는 장인들에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품질은 네가 보증하는 거야?”
“네! 빛을 못 보는 게 너무 안타까울만큼 진짜 대단한 분들이거든요. 이건 진짜 참트루예요.”
“크. 그 분들은 좋겠다. 김수영이 이 시간에 열변을 토하면서 실력을 보증하는 걸 그 분들은 알까?”
“근데 정말 대단한 분들이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걸음이 느려지는 걸 보고 수영이 왜 그러냐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급하게 해야 될 일이 생각나서."
그리고 준영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려와서 짐을 누나랑 같이 들고 올라가라고 말을 하고 주말쯤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 가려고요?”
수영이 아쉬운 듯이 물었다.
“내일이나 모레, 회사로 갈게. 기운 내고. 누구 앞에서도 주눅들지 말고. 무슨 일 생기면 오빠한테 연락하고. 어?”
“네….”
나는 오랜만에 수영의 뺨을 쥐고 흔들어대다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택시 안에서 내 머릿속에서는 그야말로 브레인 스토밍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은호 형은 호텔 큰이 자리를 잡기까지 미국에서 머무르는 중이었고 나는 은호 형에게 내 의견을 말했다.
“정스 짐에 신규로 회원가입하는 사람들한테 헬스화를 주고 싶은데요. 비용은 제가 부담할게요.”
“임정우.”
내 목소리를 부르는 은호 형의 목소리가 심각했다.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네?”
순간 긴장해서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용 부담은 네가 한다는 말은 하지 마. 네 기획안에 대해서, 따로 돈이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메리트 말고 네 아이디어의 가치로 승부하고 나를 설득하라고.”
“아, 네. 죄송해요. 형.”
“생각하는 게 뭔지 말해봐.”
괜히 창피해져서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나는 수영이 일하고 있는 해신제화라는 회사에 대해서 말했다.
중저가 신발 브랜드 회사고 적은 시장 점유율로 간신히 간신히 버텨가는 회사지만.
응?
'회사지만' 이라는 말 다음에 할 말이 없네?
“그래서?”
형이 물었다.
“…….”
“그냥 솔직하게 말해봐.”
“솔직하게 말하면. 아주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그래. 그냥 솔직하게 말해. 그 별 볼일 없는 회사가 왜 네 머릿속에 이름을 남겼는지. 그리고 정스 짐까지 생각을 할 정도로 너를 신경 쓰이게 한 건지.”
은호 형이 말했다.
“사실은 제가 정말 잘 해 주고 싶은 애가 있는데요. 여자애고요.”
“말 안 해도 알겠다. 네가 남자애한테 잘해주고 싶은 적은 없었잖아.”
“아니예요. 형. 저는 인류를 고루고루 사랑하는데요. 심지어 형까지도 사랑하는데요?”
“심지어? 웃기지 말고. 그래서 뭐.”
“그 녀석 기 좀 펴게 해 주고 싶어서요.”
“…….”
“화내셔도 되고 돈 지랄이라고 해도 되긴 하는데. 네. 돈지랄할 거예요. 그러면서 정스 짐 회원 확보에도 도움이 되면 좋잖아요. 그래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보다. 우선 기다려봐. 아이미가 지금 해신제화 기업 정보를 검토하고 있는데 조금 있다 연락할게 다시 통화하자.”
“네?”
아. 이 형.
또 시작이다.
기업 헌팅.
해신제화 이건 별론데. 진짜 별론데?
형한테서 다시 연락이 오면 말려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십 분 쯤 지나서 연락이 왔다.
“형. 회사를 인수할만한 건 아니예요. 그 정도 매력은 없어요.”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품질은 자신이 있는 거 아냐. 맞지?”
“네. 품질만요. 그것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요. 품질도 그 회사 제품 전부에 대해서 보장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기술을 보증할 수 있는 몇 사람이 거기에서 근무하고 있다라는 정도예요. 정스 짐 프로모션을 할 것 같으면 그 분들한테 슈즈 제작을 의뢰하려는 거고요.”
“어. 그런 말일 거라는 거 알았어. 그 사람들을 빼내자.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자. 사실 류아한테 골프화 광고 계약 제의가 들어왔거든. 근데 우리가 자체적으로 조사를 해 보니까 류아가 광고를 할 때 예상되는 판매 족수가 대략 만 2천족이야. 프리미엄 라인으로 운영을 하면 대박이 나겠더라고. 그래서 일단 광고 계약은 보류를 했거든. 안 그래도 너 불러서 그 일로 의논을 하려고 하고는 있었는데 자꾸 미뤄지고 있었다.”
“신발 브랜드를 만들자는 거예요?”
“응.”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 둘 다 좆도 모르잖아요 라고 말하려다가 우선 입을 다물었다.
일이 갑자기 너무 커지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흥분감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우선 그 생각을 너도 머릿속에 일단 넣어놔 봐. 그리고 잠깐 시간 내서 미국에 와서 같이 머리를 굴려 보자. 네가 말한 일은 그대로 진행을 해 봐. 그, 네가 말한 그 사람은 어떤 쪽으로 재능이 있는 거야? 어떤 식으로 키워주고 싶어?”
형이 물었다.
“아…. 아직 잘은 모르고요. 그 애가, 이름이 수영인데요. 수영이가 신발을 직접 디자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그쪽으로 공부도 하게 해 주고 기회를 주고 싶어서요.”
“혹시 사귀던 여자?”
“여러 가지로 저한테는 의미가 큰 녀석이예요. 이번에 정스 짐 가맹점 내드린 분이 수영이 아버지고요.”
“아아. 그럼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알겠네. 그래.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나는 내가 눈여겨 본 사람 키우는데 돈 쓰는 게 제일 재미있더라. 원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채로 손에 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형이 말했다.
이게 내가 은호 형을 좋아하는 이유다.
내가 하는 미친 소리에 같이 환호해 줘서.
때로는 우리가 서로를 제동해주지 못하는 게 걱정되기도 하지만 쓴소리 해 줄 사람들은 따로 또 준비가 돼 있으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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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밤 보내시고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