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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243화 (24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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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y back

형사도 대충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안 것 같기는 했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사건에 잘못 관여하면 지인과 결탁해서 사건을 덮었다는 둥의 민원이 발생할 소지도 있어서 슬그머니 발을 빼는 포지션을 취했다.

나는 윤 대리를 향해 점점 더 분노가 커졌는데 그 일이 있고 한참 지난 후에야 내가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난 건지 알 수 있었다.

윤 대리는 엄마를 떠올렸다.

성행위를 통해 돈을 벌려고 하는 게 꼭.

“변호사를 부르는 게 나을까요? 아는 누나가 있는데.”

내 말에 핫 걸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우당탕탕탕 소리가 들리더니 수영이 달려 들어왔다.

맙소사!

오늘 프로모션 건으로 정스 짐에서 보기로 했었는데 내가 나오지 않은 것을 보고 여기로 온 모양이었다.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건지.

수영은 윤 대리를 찢어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우리 자리로 달려왔다.

“이 여자가 뭐라고 말을 했건간에 거짓말이예요. 제가 다 증명할 수 있어요.”

그런 말이야말로 뻥 같다고 생각되기는 했지만 수영은 한 번 벌어진 입을 다물 틈도 없이 얘기들을 쏟아부었다.

"여긴 왜 왔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나는 창피하고 난감해서 수영에게 물었다.

"윤 대리가 직접 전화했던데요? 자기가 오빠한테 강간당했다고 오빠 고소할 거라고요."

"뭐?"

수영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걸 보니 정말로 제 정신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이 여자랑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룐데요.”

수영의 언행이 거의 ‘행패’에 가까운 수준이라 옆에 있던 사람이 수영에게 당신은 누군데 그러는 거냐고 묻자 수영이 재빨리 대답을 했다.

윤 대리라고도 말을 하지 않고 이 여자라고 칭하는 말에 경멸의 감정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근데 그건 제가 들은 얘기라서 직접 증언을 하기는 그렇고요. 우선은 제가 직접 봐서 아는 것만 말씀드릴게요. 부서 사람들이 회식을 가면요. 3차로 노래방에 가는데 거기에 가면 제가 앞에서 노래 부르는 동안 뒤에 있는 소파에서 이 여자랑 부장님이랑 주임님이랑 쓰리썸을 했어요. 그러는 동안 저는 뒤도 못 돌아보고 노래만 해야 했는데 그 사람들이랑 이 여자는 내가 다 알고 있다는 걸 알면서 숨기려고도 않고 오히려 저를 놀리려는 듯이 그 짓을 했어요. 노래방에서 나갈 때는 정리를 하라고 하면서 콘돔을 꼭 저한테 버리게 했고요. 그래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 건 공장분들한테 배울 게 많아서 그런 거고, 그리고 당장 그 일자리를 잃으면 안 돼서 그런 거였는데 그걸 알고 이 여자는 더 저를 괴롭혔고요. 그런 거야 여기에서 얘기할 것도 없고 이제는 더 이상 저를 괴롭힐 위치도 안 되고 그렇거든요. 자기들이 그렇게 살겠다는데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이 여자는 그런 여자라고요. 근데 오빠가 저를 도와주고 계약을 성사시켜 주면서 제가 잘 나가는 것 같으니까 회사에서도 저에 대해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렸어요. 그런데 제가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제 일만 열심히 하는 것 같으니까 이제는 오빠한테 이러는 거예요. 오빠는 저랑 제 동생한테 과외를 시켜줬던 과외 선생님이었는데 그때 저희가 오빠한테 도움을 줬다면서 이번에 말도 안 될 정도로 과분하게 저희를 도와줬어요. 오빠를 보세요. 오빠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여자를 강간했겠어요? 이 여자는 아무한테나 질질 흘리고 다녀요. 회사에서도 그렇고 거래처에서도 그렇고 유명해요. 오빠가 아쉬울 게 뭐가 있겠어요? 오빠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도 그렇고요.”

핫 걸이 가운데서 수습을 했다.

“일단 정황을 이해 시키려는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지금 하는 말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역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으니까 딱 그 정도까지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혹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죄가 있는지, 그건 우리가 알아보죠.”

핫 걸이 말했다.

“임정우씨에 대해서요?”

핫 걸과 애매한 인사를 나눴던 형사가 말했다.

“아뇨. 이 분에 대해서요. 관련된 사기 사건이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겁니다.”

핫 걸이 윤 대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상관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한쪽 말만 듣고 너무 일방적으로 그러는 건.”

그러나 형사도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윤 대리가 나를 고소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혹시."

수영이 핫 걸을 보며 말하자 핫 걸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래. 나 네 선배 맞는데 이런데서 동문회 하는 건 그렇지 않냐?' 라는 정도의 의미?

수영은 꾸벅 핫 걸에게 한 번 인사를 했고 핫 걸은 저리 치우라는 듯 귀찮아하면서 손을 내둘렀다,

대충 잠잠해지려고 하던 그때 한 사람이 더 급하게 들어왔지만 나는 이번 방문객까지 나를 보러 온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남의 책상에 가서 임정우씨, 어쩌고 하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보니 이재인 트레이너였다.

“아니, 이재인씨는 왜!”

“아침에 미팅때 봤는데 나한테 오빠 어딨는지 아냐고 해서 알려줬어요.”

수영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재인은 우리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왔고 내가 유치장에 갇혀있던 것도 아닌데 내 얼굴을 감싸고 살이 쏙 빠졌다는 둥, 이게 어떻게 된 거냐는 둥 하는 말을 했다.

안 그래도 우리는 그동안에도 충분히 볼 거리를 제공해 주었지만 이재인이 등장한 후에는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주위에 있던 형사들이 몰려들었다.

프로 카드를 따내고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이후에 이재인 트레이너의 팬 층이 국내에서도 두터워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숨은 마초 팬들이 여기에 이렇게 모여 있을 줄은 알지 못했다.

형사들이 이재인에게 인사를 하면서 같이 사진 좀 찍자고 하는 동안 핫 걸은 자기를 따라온 요원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윤 대리의 계좌와 통화 내역만 대충 털어 봐도 윤 대리의 행적에 대한 파악은 간단하게 알 수 있을 거였다.

경찰이 나서서 조사를 하려고 한다면 몇 달이 걸리고 그마저도 매번 벽에 부딪치겠지만 유령 조직인 키샤가 움직인다는데 그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윤 대리는 이제 곧 자기 영혼이 털릴 차례라는 걸 직감한 듯했다.

“자아아….”

내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음…. 여기 계신 여자분들이 전부…. 그…, 임정우씨의….”

나는 또.

제대로 된 질문이 나오는 건가 하고 긴장하고 있었더니 그 사람은 그저 인간적인 호기심을 누를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속으로 조그맣게 한숨을 쉬면서 연우가 안 온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확실히 하자는 생각에 수영에게 물었다.

“김수영. 너 혹시. 연우한테는 내가 여기 있다는 말 안 했지?”

“아….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뭐?!!”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데 문 가에 탁, 등을 기댄 채 짝다리를 짚고 이쪽을 보고 있던 연우와 시선이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좆…됐…다!!!’

머리카락 속에서 흘러내리는 땀 어쩔.

연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그러면서도 웃음을 지었다.

놀라서 달려왔다가 어이없는 장면을 봐 버렸지만 나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양치 잘 했는지 검사 맡는 아이처럼 입꼬리를 옆으로 주욱 늘인 채로 히잇, 하고 웃었고 연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차, 차,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요….”

윤 대리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술도 몇 잔 했었고…. 아마 제가 괜찮다고 했던 모양인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여기저기가 아파서 화가 나고 제가 오해를 좀 했던 것 같아요. 고소는 안 할게요. 이 일은 없었던 걸로 하겠습니다.”

“그럼 이 일은 없었던 걸로 하고 다른 일로 새 마음가짐으로 만나죠.”

핫 걸이 윤 대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윤 대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럼 수고들 하시고요."

핫 걸이 떡대 둘과 함께 형사들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나갔고 연우는 문가에 서 있던 채로 손을 두어 번 흔들어 보이고 그대로 돌아가자 수영과 이재인만 곁에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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