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249화 (249/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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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스노우맨의 은밀한 밤]

선두로 치고 나가다보니 견제가 들어온 거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동안은 잠잠하다가 왜 하필 지금인가 하는 생각이 사라지질 않았다.

핫 걸에게 물어봤지만 특별히 감지되는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겉으로 봤을 때 이건 그냥 개미에 물려서 따끔한 통증을 느낀 정도로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 개미를 끌고 온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과 누군가 그것을 그 자리에 일부러 흘린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러던 중에 그다지 반갑지 않은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카린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이 카린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불편함.

별거중인 마누라의 전화를 받아도 그보다는 덜 불편할 것 같은 그런.

카린의 연락을 받은 건 연우와 꿀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나는 전화를 건 사람이 카린인 것을 알고 왠지 마음에 걸려서 연우의 몸을 이불로 꽁꽁 싸맸다. 카린이 괜히 또 쓸데없이 이런 장면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됐던 것이다.

카린은 별로 할 말도 없는 상태로 전화를 한 것처럼 이 말, 저 말을 하다가 할 말 없으면 전화를 끊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키샤라는 조직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그게 그쪽이랑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습니다.”

카린이 말했다.

“그건. 왜 묻습니까?”

“키샤가, 미국이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일 몇 건을 방해했거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어오던 사업을 키샤 때문에 몇 건을 뺏겼어요.”

“그래…서요?”

“이쪽에서 이번에 키샤의 내부 조직원 하나를 포섭하는데 성공한 것 같더군요."

"이쪽이라는 게 어디를 말하는 겁니까?"

"포괄적으로 미국 정부라고 해 두죠. 이게 시작이고 이제부터 서서히 조직을 파괴해 나갈 겁니다.”

“뭘 어떻게요?”

“함정을 파겠죠.”

카린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핫 걸이 맡게 되는 수많은 임무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함정을 파고 키샤의 요원들을 끌어들이면 키샤의 요원들은 명령에 따라 그곳으로 가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핫 걸이 말했던 키샤의 유일한 강령.

절대복종.

나는 카린의 말이 현실적인 경고라는 것을 알았다.

“키샤에 대해서는 어떻게 안 겁니까?”

“폴 콜드먼이 아는 건 나도 다 알죠.”

카린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막아야 되겠죠.”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그걸 묻는 거잖습니까.”

내 목소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카로워져 있었다.

핫 걸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된 모양이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면 막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이 포섭될 겁니다. 인간이 유혹에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알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는 해결이 안 날 문제예요.”

“……. 그래서요?”

“폴 콜드먼을 잡아요. 폴 콜드먼이 미국이니까.”

“……. 방법은요?”

카린의 말을 듣고 무거워진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그 얘기를 하자고 이 시간에 전화를 건 겁니다.”

“제가 뭘 해야 됩니까?”

“미국에 오세요. 코야 리코하고 함께 나를 위해서 해줄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폴 콜드먼이라면 이미 카린이 잡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카린의 저택에 있는 동안 폴과 친밀하게 전화 통화를 하던 카린의 모습이 떠올라 내가 물었다.

“나는 그 사람 목에 언제든지 칼을 겨눌 수 있지만 그 사람은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죠. 나는 폴이 그걸 알게 하고 싶습니다. 아주 우아하고 세련된 방법으로요.”

나는 카린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카린이 파멸시키기 직전까지 레이널드는 자기가 카린의 포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카린은 레이널드에게 돌아올 기회도 주지 못하고 레이널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협박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카린은 폴이, 자기가 포로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어서 폴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싶은 것이다.

“내 일정은 확답해줄 수 있지만 코야 리코가 내 뜻대로 움직여줄지는 모르겠습니다.”

“농담도 잘 하십니다.”

카린이 말했다.

어느 부분이?

혼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전화가 끊겼다.

나는 키샤 내부의 첩자가 누군지 아직 듣지 못했다는 생각에 카린에게 다시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그 순간에 사진이 전송돼 왔다.

‘이름이 뭐든.’

이라는 제목을 달고서.

정스 짐 서울대입구역점이 오픈할 때 핫 걸과 같이 와서 무대 위에 올라와 양철통을 찌그러뜨리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핫 걸이 그 사람에게 딱콩을 먹이던 것을 떠올렸다.

하필 핫 걸이 신임하고 귀여워하는 사람이….

나는 내가 카린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하지 않은 일로 핫 걸을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잠들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연우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한테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도 되는데.”

연우가 말했다.

“알아. 말할 수 있는 얘기면 말했을 거야.”

“걱정되는 일이예요?”

“……. 응. 확실히.”

“최선을 선택하기 어려울 때는 최악인 걸 먼저 제거해 나가봐요. 오빠한테 소중한 사람의 안전이 오빠한테는 가장 중요한 일이잖아요.”

그 말에 나는 마음을 정할 수가 있었다.

“그래. 그래야겠다. 전화 좀 하고 올게.”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핫 걸에게 전화를 걸었고 카린으로부터 전달돼 온 사진을 보내주었다.

앞으로는 의심을 배제하지 말고 주시해 보라는 정도로밖에는 말을 해 줄 수가 없었다.

핫 걸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기 직전에, 알겠다고 말을 했을 뿐이었다.

***

카린은 자기가 임정우에게 연락을 한 것이 잘한 일인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자기에게도 적어도 한 명쯤, 믿을만한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해밀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폴과 함께 한 번 찾아오라는 카린의 말을 해밀은 능숙한 말로 이리저리 피했다.

카린의 집에서 주기적으로 열리던 파티는 이제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레이널드의 파멸을 지켜본 해밀은 처음에는 겁을 먹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카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을 강구했다.

해밀은 레이널드의 추락에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폴을 카린에게 데려와 소개해주기는 했지만 해밀은 폴마저 카린의 꼭두각시가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카린의 유혹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카린은 해밀이 원하는 모든 판타지를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해밀은 그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이번에는 자기가 폴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쩌면 해밀에게 대안없는 유일한 가능성이었을지도 모른다.

폴마저 무너진다면 자신에게 다음 기회는 영영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카린은, 호흡을 가다듬고, 화를 감추면서 해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폴과 함께 자신을 방문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밀은 이번에도 유려한 말로 카린의 말을 거절했다.

카린은 전화기를 내던져 버리고 서재 안을 서성거렸다.

해밀과 폴을 추락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카린은 그들이 겁을 먹고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걸 보고 싶었다.

추락시키는 것은 그 후에도 해도 충분할 터였다.

카린은 노트북을 켜고 동영상 하나를 찾아서 실행시켰다.

카린의 얼굴에는 금세 웃음이 지어졌다.

"폴 콜드먼. 내가 너를 상대로 제대로 싸울 의욕을 갖게 하지 마라. 그게 너한테 좋아. 내 장난감을 부수고 나서 내가 후회하게 만들지 말라고. 나는 아직 너한테 안 질렸는데. 천천히 잘 길들여 주려고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카린은 싸늘한 시선으로 동영상의 정지 화면을 보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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