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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스노우맨의 은밀한 밤]
정우와 코야가 차례로 카린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카린은 인터넷 뉴스를 통해 폴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위험한 수위의 발언을 한 것을 보고 있었다.
전에는 카린을 의식해서라도 그런 발언은 절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제 폴은 공공연히 한국인을 겨냥한 발언들을 했다.
관용을 모르고 열패감에 쩔어있는 편협한 소수민족이라는 것이 현재 폴이 한국인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라는 것은 몇 차례의 폴의 발언을 통해서 확실해 진 것 같았다.
키샤에 대한 분노와 카린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된 폴의 혐한 감정은 애꿎은 리얼 그릴과 호텔 큰으로 불똥이 튀어버렸다. 그 얘기까지 해 버리면 임정우가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들 것 같아서 카린은 아직 그에 대해 입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처럼 임정우가 스스로 카린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빼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카린은 점점 긴장을 하고 있었다.
폴이 노골적으로 한국에 대한 자신의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자 일본인들은 폴을 지지했고 기부금도 엄청나게 모아지고 있는 듯했다.
폴의 지지율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무섭게 치고 올라갔고 사람들은 이제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폴 콜드먼이 될 거라는 사실을 대담하게 점치곤 했다.
이번 일에 일본인인 코야 리코가 적임인가 하는 것에는 아직도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카린은 임정우가 그 문제를 잘 다뤄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정우와 코야가 도착했을 때, 집사는 한 번 본 적이 있었다고 정우를 살갑게 맞이했다. 정우는 대충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벽면의 액자가 아직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을 했다.
혹시 또 연우나 자기를 그려 놨을까봐서 속으로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서로가 거추장스러운 인사말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세 사람은 모이자마자 카린의 서재로 들어가서 길고 긴 얘기를 시작했다.
“코야에게 소설 한 편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소설 주인공 이름은 화이트 스노우맨. 미국의 유력한 정치갑니다. 차기 대통령감으로 거론되는 젊은 정치 신예죠.”
단도직입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예시를 들기라도 하려는 듯, 카린은 밑도 끝도 없이 얘기를 시작했다.
“혹시 폴 콜드먼을 모델로 생각해도 되는 건가요?”
코야가 물었다.
코야는 이 일에 근거를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느꼈다. 뭔가 음침하고 퀘퀘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나는 것이 딱 자기 스타일이라고 느끼면서 이 음모에 가담하면 굉장히 재미있을 거라고 마음대로 믿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같이 해 주면 정우에게 갖고 있던 마음의 빚도 어느 정도 갚을 수 있을 것 같고 정우와 만나게 될 일도 자연스럽게 많아질 거라는 것도 코야의 노림수였다.
“네. 폴을 텍스트 삼아서 쓰면 될 겁니다.”
카린이 말했다.
“제가 뭐에 대해서 쓰길 바라는 건데요?”
코야가 물었다.
“한 정치인의 비뚫어진 섹스 판타지에 대한 겁니다.”
“비뚫어진 섹스 판타지요. 웬만해서는 미국인들 기준에 비뚫어졌다고 보이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 사람이 로트와일러와 도베르만에게 박히는 걸 좋아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다시 자기 씨를 암컷 대형견들에게 쏟는다면요.”
“……!”
아무리 항마력이 강한 코야라고 하더라도 그건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는지 욱, 욱, 거리더니 화장실을 찾아 뛰어나갔다.
“그쪽이 아닙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린의 집사가 코야를 화장실로 데려다 주었다.
한참만에 돌아온 코야는 핼쑥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가요? 확신을 갖지 않으면 쓸 수 없겠는데요? 쓰다가 테러를 당할 수도 있다는 건 아시죠?”
코야가 말했다.
카린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노트북을 켰다.
그러면서 코야에게 말했다.
"위험할 것 같다고 생각되면 필명을 바꿔도 될 겁니다."
"그건 차차 생각해 보죠."
코야가 말했다.
카린은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자리에서 영상을 보여주었다.
일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커다랗게 눈을 뜬 코야는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집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곧바로 화장실을 찾아갔다.
임정우는 카린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만 물어도 됩니까?”
“그러세요.”
“저게 원래 폴 콜드먼이 가지고 있었던 판타지였습니까? 아니. 폴 콜드먼은 저때 자기가 로트와일러한테 박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저 때 제정신이었습니까?”
“여기에 있는 동안은 원하는 모든 걸 해도 된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게 환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폴 콜드먼은 자기가 약에 취해서 환상적인 꿈을 꿨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강한 대형견한테 박히는 게 폴 콜드먼의 판타지였고 몇 번 그의 판타지를 실현시켜 주다가 나중에는 실제로 로트와일러와 도베르만을 투입시킨 거죠. 그게 전붑니다.”
“……. 카린이 만들어내는 환상은 어디까집니까.”
“나도 내 한계를 모릅니다. 하다보면 늘게 돼 있는 거겠죠.”
"도베르만을 실제로 투입한 이유는 증거를 만들어 놓기 위해서였습니까? 환상은 녹화가 되지 않으니까?"
"구차하게 이것저것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임정우씨랑 대화를 하면 편하군요."
카린은 그렇게 말하며 정우의 말을 시인했다.
“코야 리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낸 겁니까?”
정우가 묻자 카린은 대답하는 대신 정우에게 손짓을 해서 그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고 벽에 걸린 그림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그림 속의 여자는 분명한 코야 리코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코야 리코의 옆에는 [화이트 스노우맨의 은밀한 밤] 1, 2권이 놓여 있었다.
“저것도…. 그렇게 그린 그림입니까?”
정우가 묻자 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목 지을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편하긴 하겠네요.”
정우가 말했다.
“그런데 내가 이 일에 협조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정우가 물었다.
카린은, 이제야말로 얘기를 털어놔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해밀과 폴은 나에 대해서 전면전을 선포할 겁니다. 우리 사이가 전 같지 않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호텔 큰과 리얼 그릴을 차례로 노릴 거고요.”
"그건. 이미 시작이 된 것 같던데. 그게 카린 때문이었던 거군요."
"꼭 나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나보다는 키샤가 더 큰 영향을 끼쳤겠죠. 미국 정부에서 은밀하게 진행하려는 일마다 초를 치니까 짜증이 났을 겁니다. 키샤에 비하면 나는 굉장히 얌전했습니다."
“우리는 아무 흠 없이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한테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을 텐데요.”
정우가 말했다.
“지금까지의 규정대로라면 그렇죠. 하지만 해밀과 폴은 트집을 잡기 위해서 규정을 바꿀 겁니다. 호텔 큰과 리얼 그릴에 족쇄를 채우기 위한 작업은 이미 진행되고 있죠. 리얼 그릴의 독특한 메뉴 몇 가지를 골라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쓸 교수들을 찾는 건 어렵지도 않을 겁니다. 리얼 그릴에서 사용하는 식자재. 식자재를 다루는 방법.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해 놓고 의혹을 부풀리고 겁을 주면 사람들은 겁을 집어먹고 리얼 그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게 될 겁니다. 훌륭한 약초에도 부작용은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런 점들만 부각시키면 이미지가 훼손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근데 왜 하필 우린데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정우가 물었다.
“여기 사람들은 이제 한국이라고 하면 호텔 큰과 리얼 그릴을 떠올리니까요.”
“말도 안 돼요.”
“그러게 말이죠.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정우는 그게 좋아해야 할 일인지 싫어해야 할 일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우리는 카린 당신이랑 키샤 때문에 가운데에 끼어서 괜히 피해를 보는 거네요?”
정우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서 기분이 좋아질 것도 아닐 텐데 뭘 그렇게 생각하려고 합니까?”
카린은, 그런 사소한 일은 머릿속에서 빨리 지워버리라는 듯이 손까지 내저어가며 말했다.
“그런데 이 방법이 먹힐까요? 스노우맨요. 책이 바로 써지는 것도 아닐 텐데요. 게다가 코야는 책을 쓰는데 오래 걸리는 타입인데. 책을 쓰고 나면 큰은 이미 쫄딱 망해있는 거 아닐까요?”
정우가 물었다.
“내가 임정우씨를 괜히 불렀겠습니까? 임정우씨도 글을 써 봤잖아요.”
카린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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