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251화 (25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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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스노우맨의 은밀한 밤]

“그냥 번역이었죠.”

정우가 말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쓸 줄은 알잖습니까. 우선은 코야 리코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걸 홍보를 시작할 거고 그 내용에 대해서도 흘릴 겁니다.”

“코야가 자기 필명을 안 쓰겠다고 하면요?”

카린은 별 걱정을 다 한다는 듯이 그림을 가리켜보였다.

책등 귀퉁이에 '코야 리코'라고 쥐알통만하게 저자 이름이 보였다.

“…그럼 아까는 왜 필명을 바꿔도 된다고 했습니까?”

“자상해보이잖아요.”

“…….”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기대감을 증폭시켜 놓고 플랫폼 하나를 인수해서 집중적으로 광고를 하고 연재를 시작할 겁니다. 사람들은 스노우맨이 폴 콜드먼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될 거고 그의 은밀한 밤에 대해서 궁금해 하겠죠.”

카린이 말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속도를 못 따라갈 텐데….”

“둘이 같이 쓰면 될 거예요. 뭘 써야 될지는 다 알잖아요. 머릿속에서 상상해 내라는 게 아니라 텍스트가 이미 있는데.”

정우는 자기가 카린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호텔 큰과 리얼 그릴이 어디까지 추락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카린 역시 정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정우의 이해를 도왔다.

“한 군데를 정해놓고 질식사시키려고 하면 그건 전혀 어렵지 않아요. 날고 기던 기업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걸 한 두 번 봤습니까? 호텔 큰과 리얼 그릴은 날고 기는 정도도 아니고요. 날아볼까, 하고 파리 날개 같은 걸 쫘악 펴고 있던 중에 발에 밟히게 생긴 거죠.”

카린은 확신했다.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카린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좋아요. 합시다. 우리가 그걸 쓰면 키샤와 큰, 리얼 그릴 모두 안전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죠?”

정우가 물었다. 확실히 할 것은 확실히 하고 가자는 듯이.

“자기가 내 손아귀에 들어있다는 걸 알게 된 후에도 폴 콜드먼이 미친 듯이 계속 날뛸 것 같습니까? 사람들이 그 일을 알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폴 콜드먼이?”

카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해밀은 어떻습니까? 그 사람이야말로 실세 아닙니까?”

“안 그래도 그 영감탱이한테도 족쇄를 채워보려고 자꾸 부르는데 뭔가 눈치를 챘는지 안 오네요. 그때 도베르만이 너무 짖었어요. 그건 보통 내가 그 사람들한테 환상을 보여줄 때하고는 다르게 너무 현실감이 있었죠. 그리고 로트와일러가 폴의 허벅지를 긁어서 상처가 나기도 했고. 아아. 해밀이 안 오려고 한 게 그래서 그런 거였나보구나. 이제 이해가 되네.”

카린은 자기도 모르고 있던 걸, 정우에게 얘기하는 도중에 깨달았던 모양이다.

태평해 보이는 카린을 보면서 정우는 자기가 어쩌다 이런 사람과 한 배에 타게 된 건가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때, 한층 더 창백해진 얼굴로 코야가 돌아왔다.

속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괜찮아요?"

정우는 걱정스런 얼굴로 코야를 챙겼다.

코야는 고개를 끄덕일 힘조차 없는 것 같았다.

카린은 동영상을 한 번 더 봐야하지 않겠냐며 마우스에 손을 가져갔다.

“아뇨. 아뇨. 아뇨. 됐어요. 굉장한 임팩트네요. 다 외워졌어요.”

코야가 두 손을 마구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요. 클라이막슨데.”

"아뇨. 괜찮다고요. 괜찮다고 했잖아요!"

코야는 이제 카린에게 신경질까지 냈다.

정우는 코야가 카린의 성질을 돋구는 게 별로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코야에게 카린에 대해서 대충 힌트라도 줘야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다.

그러다가 코야 정도는 자기가 카린에게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냥 놔두기로 했다.

정우는 코야에게, 두 사람이 같이 글을 쓰게 될 거라고 말했고 이 작품은 작품성이니 뭐니를 떠나서 빨리 분량을 만들어내고 수간 장면까지 빨리 이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완결은 안 나도 돼요. 하지만 독자들에게 쇼크를 주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데까지는 빨리 진행을 해야 됩니다.”

정우가 말하자 코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머물면서 편하게 작업을 하세요.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선인세로 두 분께 각각 15억씩을 드리는 걸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카린이 말했다.

그러나 코야도, 정우도 거기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도입부부터 시작해서 각각의 장면을 어떻게 나눠 작업을 어떻게 분담할 건지에 대한 얘기를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

은호 형은 내가 왜 곧바로 형에게 가지 않은 건지 의아해했다.

아무리 은호 형이라고 하지만 내가 카린과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전부 다 털어놓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나는 그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은호 형은, 호텔 큰이 어떤 상황인지 알면서 내가 다른 곳에 먼저 들렀다는 건 나대로 방법과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믿는다면서 구체적인 것을 묻지 않고 그냥 믿어주었다.

이해되지 않는 게 많고 이것 저것 궁금했을 텐데도 그냥 덮어놓고 믿어주는 형이 고마웠다.

은호 형은, 호텔 큰과 리얼 그릴이 날아가 버릴 때를 대비해서 미리 또 백업 장치를 하느라고 부산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전경이 끝내주는 작은 해안을 찾아냈다며 그곳을 중심으로 관광지를 개발하고 싶다면서 형은 자기 생각을 말해주었다.

은호 형의 머릿속에서는 언제나 아이디어가 솟아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호텔 큰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을 더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을 나 역시 모르지 않았다.

“큰을 너무 일찍 포기하지는 말자고요. 잘 될 것 같아요, 형. 곧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당분간은 현상 유지랑 고객 이탈을 최소화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버텨내면 다시 좋아질 거예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말을 한다면."

내 말에 형은 희망을 가졌다.

나는 그 짧은 대화만을 나누고 다시 카린의 저택으로 돌아가 곧바로 코야와의 공동 작업에 돌입했다. 코야의 원고를 번역하면서 이미 코야의 문체에는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던 게 이럴 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우리가 가장 고민한 부분은 폴 콜드먼이 도베르만에게 박히는 장면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하는 거였다.

항마력으로는 세계 탑 10 안에 들어갈 코야 리코가 그 동영상을 보고 구역질을 했다는 것을 미루어보자면, 웬만한 독자들은 그 장면을 직접적으로 묘사했을 때 견뎌내지 못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 장면은 그 소설에서 꼭 필요했다.

그 장면을 넣기 위해서 쓰는 소설과도 마찬가지였다.

결말은 없더라도 그 장면은 꼭 있어야만 하는, 그런 존재의 의미를 갖고 태어난 녀석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 고민을 계속하면서 우리는 착착 분량을 만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카린은 연재 플랫폼 하나를 사 들였고 돈을 들여 엄청난 홍보를 했다.

코야 리코의 신작이 연재 플랫폼을 통해서 새롭게 선을 보인다는 광고가 각종 미디어를 통해 나갔다.

광고 집행비만 봐도 그 책을 팔아서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날 정도였다.

너무 많은 돈이 광고비로 들어간 걸 알고 코야는 인세를 포기했다.

그 돈을,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는 비용으로 썼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면서.

나?

나는 어차피 다른 필명을 썼고 그 이름으로 다른 책을 쓸 것도 아닌데 인지도를 높이는 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래서 꿋꿋이 다 받아냈다. 카린은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는 듯이 얼굴을 씰룩거렸다.

주겠다는 걸 거절해서 카린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고 차라리 그 돈으로 내 직원들의 복지 수준을 높이는데 쓰는 게 훨씬 나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나는 카린에게서 받은 돈을 은호 형에게 보냈다.

큰과 리얼 그릴의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도 끝까지 우리를 믿고 남아있어 주었던 직원들에게 보너스라도 지급해 주라면서.

은호 형은 기꺼이 내 말대로 해 주었다.

카린의 홍보와 광고로 인해 코야의 신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절정에 이른 그때.

코야 리코의 연재 소설 [화이트 스노우맨의 은밀한 밤]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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